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니 Dec 22. 2023

쉬운 것만 할래요

오늘의 영감: 책 <꿰맨 눈의 마을>



    '3시간 영화 20분 요약', '16부작 드라마 3시간 요약', '300쪽 책 10분 요약' 


    요즘은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썸네일이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극장에 3시간 동안 앉아 있지 않아도 영화를 간략히 요약하여 즐길 수 있고,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드라마를 즐길 수 있으며, 책의 300페이지를 10분만에 요약하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이 밈으로 사용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nn분 요약'은 귀중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트렌드가 머지않은 미래에, 혹은 당장 내일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모든 것을 빠르고 쉽게 하려는 현상은 이해할 만하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럴 시간은 없다'는 합리화로 모든 것을 빠르게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 구성원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나랑 다르게 생겼고 견해가 다르다면 저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즉각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해하려 들지 않고 일단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려 버린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바쁜데 다른 이들까지 공감하고 이해할 시간 따위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탐구하고 고민하며, 그것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반해 무언가를 배제하고 마음을 닫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좋은 점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하지만, 나쁜 점을 찾기는 비교적 쉽다. 우리는 자꾸만 이런 쉬운 방향으로 기울어지곤 한다. 이것은 사회 전반에서 혐오가 증가하는 양상과 유사해 보인다. 혐오의 대상을 배제하고 무시해 버리면 모든 것이 쉽다.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조차도 위 같은 측면에서 떳떳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내게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읽고 또 읽는다. 책 10분 요약을 읽을 게 아니라, 몇 시간씩 진득하게 앉아, 글을 곱씹으며 깊이 생각하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타인과 나 사이에 반듯이 그어진 선이 조금이나마 흐릿해질 수 있게, 아주 잠시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조예은 작가의 신간 <꿰맨 눈의 마을>은 ‘타운’이라는 작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목 뒤에 세 번째 눈이 생기고,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두 개인 저주를 받는, 일명 ‘저주병’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이다. 그러나 타운에서 이유 없이 저주병이 발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즉시 타운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이들이 말하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바깥세상으로 말이다. 타운 밖은 정말 지옥일까. 타운을 벗어나 닿은 곳에서 이들은 '신인류'로 존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곳의 사람들은 저주병이 아닌 '진화'로 인식한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견뎌내어 이를 진화로 칭하는 세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생이라는 선택지 없이) 이들을 마을에서 내쫓는 타운 사람들. 우리 사회와 꼭 닮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