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리의 첫 공예 단체전
지난 6월 21일부터 7월 22일까지, 서울시 공공한옥 ‘홍건익 가옥’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 <삶의 품위>는 작년부터 진행된 ‘집의 사물들’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이전에 <삶의 품격>, <삶의 품성>에 이은 전시였다.
전통의복과 장신구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 혹은 ‘문양’을 주제로, 주변 공간을 정리하고 가꾸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오브제를 모은 단체전이었다.
처음 전시 제안 메일을 받고, 한편으로 들뜨고 반가우면서도 ‘우리가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술 전공이라 전시 형식에 익숙하지만, 마마리는 ‘사업’으로 포지셔닝해온 일이었다. ‘우리에게 뭘 기대하신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어떻게 우리를 찾아서 연락이 온 건지 더 신기했다.
아무래도 리는 사업을 해온 사람이라, 큰돈이 되는 대량 주문에 익숙했다. 그건 침구류를 취급하는 대기업의 주문이기도 했고 지역 시장의 도매 거래처의 주문이기도 했다. 나는 이미지 소비자의 입장이라, 인스타그램으로 브랜드를 만나는 일이 많았고 시장이나 대기업 제품을 오프라인에서 구매해본 경험은 근 10년 간 없었다. 다른 브랜드의 수익 구조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온라인에 보이는 이미지도 중요했고 브랜드의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난 텀블벅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처럼, ‘이런 거 언제 해보냐, 해보자!’ 하고는 걱정과 고민을 넣어두고 계약서에 서명해버렸다.
샘플 작업에 들어갔을 때, ‘전통 의복과 장신구의 형태 혹은 문양’이라는 주제 때문에 한동안 레퍼런스 이미지만 잔뜩 찾아봤다. 여러 전통 장신구들을 검색하다가, 영친왕비 족두리를 발견했다.
https://www.gogung.go.kr/searchView.do?cultureSeq=926LJE
흔히 족두리 하면 떠오르는 형광빛의 화려한 장식이 아니었다. 간결하고 적당한, 단아한 형태와 색감이었다. 이 후로 다른 장신구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족두리에서 출발한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다.
보자기에 폭신한 목화솜을 넣어 족두리의 양감을 만들었다. 적당한 솜의 양을 찾느라, 리는 몇 번이나 박았다 뜯었다를 반복했다. 접었을 때의 부피감과 접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긴 형태를 선택했다.
용도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 같긴 했지만, 완결된 형태가 중요했다. 보자기를 말다시피 접어서 버클 끈으로 만든 매듭으로 묶었다. 끈 끝에 미색의 진주 장식을 달아 족두리의 앞 장식을 더했다.
작품명은 ‘화관 솜 보자기’로 결정했다.
용도는 ‘소품 보관 데스크 웨어’.
책상이나 선반 위에 깔아 두고 그 위에 액세서리나 작은 장식품을 올려두는 용도라고 생각했다. 장신구들을 사이에 넣어 매듭 끈으로 묶어서 보관할 수도 있다.
새로 만든, 듣도 보도 못한 사물의 용도를 상상하자니 오래된 유물의 사용 용도를 상상해보는 기분이었다.
이번 전시는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통한 색다른 작업을 이어가는 12명의 공예가, 공예 브랜드가 '전통의복과 장신구의 형태나 문양'을 재해석하여 자신을 둘러싼 주위를 장식하는 생활 속 공예품을 제작하여 전시하며, 동시에 관람하는 것을 넘어 직접 만져보고, 사용하고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는 전통 소재 및 패브릭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2인의 공예가와 공예 브랜드와 함께 합니다. (강미나/스튜디오 M, 김남경/단하, 김보람/뵤량, 김수연/스튜디오 연, 김현주/김현주 스튜디오, 류종대/크레아포트, 명수기/명썸, 엄윤나/니스터, 이영진/마마리, 이해인&이희승/이감각, 조영아/프로젝트 보물, 최성미/샘물)
가옥 안채의 대청과 방에 작품을 전시하여 편하게 앉아 직접 만져 보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집의 사물들> 프로젝트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고 있는 공예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소개하기 위해, 작년에는 ‘품격, 품성’ 전시가 진행되었으며, 하반기에는 ‘품행’ 전시까지 총 4가지 맥락을 따라 연속적인 전시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출처: 홍건익 가옥 인스타그램
7월, 전시가 끝나기 2주 전 <삶의 품위> 전시가 진행 중인 홍건익 가옥에 다녀왔다. 경복궁역 근처의 한적한 골목, 가옥의 작은 대문이 보였다. 낮고 아담한 가옥이 주변 동네에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예약제 전시로, 담당자 선생님들께서 전시 장소를 안내해주셨다. 장소는 그리 넓지 않은 곳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고, 에어컨이 가동되어있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오랜만에 맨발로 나무 가옥을 밟았다. 느낌이 참 좋았다. 전시는 사진으로 볼 때 보다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안쪽 방에 만져볼 수 있게 전시해주셔서,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사용해보면서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작가님들 인터뷰는 비치용 책자와 아이패드를 통해 읽을 수 있었고, 따로 QR 코드를 통해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한옥에서 진행되는 공예전시에 참여할 수 있어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항상 구매 가능성이 있는 익명의 누군가를 상상하며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오랜만에 판매 목적이 아닌, 디자인에만 신경 쓴 어떤 것을 만들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이런 기회들이 종종 있을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