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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Apr 29. 2024

나는 히키코모리다.

프롤로그

들어가며

  브런치를 하며 구체적으로 계획하여 글을 써본 적은 없다. 목차도 내용도 없이 그때그때 드는 감정과 생각들을 내 마음대로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주제도 없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이 50개나 넘었다. 이제 것 쓴 글들을 읽어보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용보다는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제 서른을 넘긴 인생을 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지만 내가 살아온 삶을 정리할 겸 뚜렷한 색깔도 개성도 없었던 지난날을 몇 자 적어볼까 한다. 특별하고 특출 난 재능과 이야기들은 책으로 영화로 SNS를 통해 유명해지지만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도 관심 가져 주지 않기에 내가 한 번 써내려 볼까 한다.


30년 간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에게 가장 친숙한 키워드는 '히키코모리'였다. MBTI로 따지면 나는  극 I 내성적인 성향을 가진 채 살아왔다. 고유의 성격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하고 정이 많아 혈액형 중엔 O형 mbti 상으로는 E 외향성으로 보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하나 나는 A형 INFP, TP를 오고 갔다.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유형이었다. 대화하고 관계하며 에너지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에너지를 빼앗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에너지를 빼앗기는 성격으로 그만큼 나를 주체적으로 드러내기보단 타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았다.


인간관계는 트러블 없이 대체적으로 좋았지만 단 한 번도 싸움을 하지 않을 만큼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싫어했다. 그만큼 누구누구가 뭐를 싫어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예민했다. 표면상은 밝고 활기찬 아이였지만 내면에서는 무수한 생각들과 곤두선 신경으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휴대폰이 뜨거워지면 전원을 끄고 당분간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와 같이 나의 에너지를 채우는 방식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만날 때는 과하게 에너지를 소비하고 에너지가 떨어지면 지나치게 사람들을 기피하는 이중적인 생활이 습관으로 굳어져갔다.


이 습관들이 굳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내가 히키코모리가 된 시점과 동일하다. 외적으론 평판이 좋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만큼이나 내적에선 가면을 쓰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지키려 고군분투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지는 시대 같다. IMF 경제위기를 겪은 어른들은 돈을 쓰지 못하고 모으기 급급했지만 요즘 세대는 돈을 소비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평생을 일해도 서울에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세상 속에 모으는 돈의 가치가 현저히 적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사치라 불리는 것들의 유행이 과해졌다. 좋은 차를 사고, 머리를 가꾸고 외모를 가꾸고 좋은 옷과 가방을 사는 것이 자기 관리라 불리는 시대가 왔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화려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늘어가지만 그만큼 배제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은 몇 배로 늘어간다. 남들보다 좋은 차를 가지지 못하고 외모가 떨어지고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소외됨은 스트레스를 넘어 정신적 질환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해도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열심히 살기를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도박을 하고 많은 양의 음식 섭취로 몸에 무리가 가도 본능적 욕구가 주는 유혹을 이길 자제력을 상실해 가는 시대가 왔다.


인간이란 어떤 방식으로라도 세상 속에 소속되려 애쓰는 존재라 생각한다. 세상과의 소속감이 사라지면 그때부턴 나와 같이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친구를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발을 담그게 되면 그 늪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외모가 못 봐줄 정도로 못나거나 찢어질 듯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온 사람은 아니다. 모든 게 보기 싫게 밉지는 않았지만 세상과의 연대를 끊어버렸다. 무엇이라 이유를 딱 정의할 수는 없다. 내가 느낀 고독의 시간 속에서 히키코모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해볼까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아는 상처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고유의 성향들도 있다. 평생을 살아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힘들다. 그만큼 나라고 믿고 있던 모습들이 내가 아닌 모습들일 때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나는 표면 상으로는 친절하고 배려 깊고 밝은 사람이었지만 혼자 오랜 시간을 지내보며 사실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란 것을 인정했다. 부정하는 갈등 속에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하고 수 십 개의 가면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결국 나와의 깊은 고립 속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진실을 찾게도 됐다. 그 여정과 나와 같은 이들을 한편으로는 응원하는 마음에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여름에는 패딩을 걸치고 겨울에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는 사람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만큼 정해져 있는 틀이나 상식을 벗어나 일반적이진 않지만 절대 그들이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다를 뿐이다.' 그 다름을 가진 이들을 괴물로 보고 배제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들도 세상 속 구성원으로서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왕성해지길 기대한다.




1. 사회적 편견에 가려진 상처


2. 고독과의 기나긴 사투


3. 사회적 부적응자라는 말 뒤에 숨은 진실


4. 수치심과 열등감


5. 세상에 안 좋은 감정이란 없다.


6.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만 있다면?(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7. 바쁜 일상에 감사하자


8. 80억 명이 살아가지만 단 한 명도 같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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