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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Apr 05. 2022

500원에 판 쑥

아홉 살의 나에게



매년 봄이 되면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유기방 가옥으로 남편과 함께 수선화 축제를 구경 간다. 유기방 가옥은 1900년대 초에 건립된 일제강점기의 가옥이다. 멀리서 보면 가옥을 제외하면 바탕색이 온통 노랑이다. 겨울의 삭막함을 지나 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예쁜 꽃구경이다. 유명해지기 전인 몇 년 전에는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지만, 요즈음은 SNS와 방송에서 홍보가 되어 사람이 수선화만큼 많이 필 때도 있다.


작년에는 사람들에 치여 입장은 하지 않고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산책 겸 걷고 있는데 마른 풀잎 사이로 연두색 연한 쑥이 자라 있는 게 보였다. 쑥을 본 남편이 쑥을 캐고 재래시장인 동부시장에 들러 도다리 한 마리 사서 도다리쑥국 끓여 먹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말만 들어봤지 도다리쑥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끓이는지도 모르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쑥을 캐고 싶지 않았다. 쑥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쑥을 보면 그날이 생각나 반갑지가 않았다.


내가 아홉 살이던 때 여느 시골 여자애들처럼 봄이 되면 집에서 쓸모없어진 바가지를 들고 나와 동네 단짝 친구와 달래, 냉이, 쑥 같은 봄나물을 캤다. 밭고랑을 누비며 놀이하듯 봄을 캐러 다녔다. 재미 삼아 캐기도 했지만, 밭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내가 캐 온 봄나물들을 어떤 건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이고 어떤 건 고추장을 넣고 무쳐 반찬을 만들어 저녁상을 채웠다.

그날도 친구와 구멍이 난 바가지를 바가지 모양으로 깎은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는 봄나물을 캐러 매일 보는 감나무 아래서 만났다.

"우리 쑥 캐서 시장에 나가 팔아 볼까? “

친구의 제안이었다. 나는 이 흔한 걸 돈을 주고 사는 사람도 있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말했다. 친구는 시내에 사는 이모가 며칠 전 집에 놀러 와서 말했는데 쑥을 사서 먹었다고 했단다. 그 말 뒤부터 경사진 논둑에 자란 쑥마저 우리의 바가지에 넣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봄나물을 캐다 개미가 나오면 개미를 손에 올리고 팔뚝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까르르 웃고 같이 나왔던 누렁이랑 달리기 시합도 하면서 바가지를 채웠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렇게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옆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귀찮게 하는 누렁이는 감나무에 묶어 놨다. 쑥에 올라가 있는 개미는 상품의 가치를 떨어지게 하는 존재가 되어 보이는 대로 털어냈다. 라면 봉지 5개 분량의 쑥을 캔 우리는 처음으로 벌기위해 손을 씻고 다시 만났다. 부모님께는 비밀이었다. 분명 쓸데없는 짓 한다고 혼날 게 뻔했기 때문에 둘만의 비밀로 했다. 하루 두 대 오는 시내버스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4km 거리를 1시간 정도를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 걸어서 갔다. 얼마에 팔면 될지 어디에서 자리를 잡고 팔지 몰랐지만 무엇을 할지는 쑥을 캐면서 이미 정해 두었다. 친구가 시내에 사는 이모네 집 근처에 짜장면 집이 생겼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고 했단다. 검은색 국물에 국수 같은 면을 넣어서 먹는다는 설명에 도통 상상이 안 갔지만 짜장면이란 것을 먹기로 했다. 터미널 근처 뒷골목에 어르신들이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채소와 곡물을 팔고 계신 게 보였다. 제일 구석에 둘이 나란히 봉지째 바닥에 놓고 쑥이 팔리기를 기다리면서 짜장면 가격인 500원만 받기로 정했다. 1시간이 지나는 동안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시들어가는 쑥만큼 우리들의 입술도 말라갔다.

"이건 얼마에 파니?"

파란색 시장바구니를 들은 아주머니가 내가 가지고 온 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500원이요"

쑥도 좋고 싸다면서 달라고 하셨다. 생전 처음 500원이란 돈을 스스로 번 순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거 우리 집까지 가져다줘"

시장바구니의 파란색만큼 차가운 명령이었다. 쑥 봉지를 들고 10분가량 걸어서 양옥집 대문 앞에 섰다. 그때 엄마를 마중 나온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보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어 쑥 파는 애야. 불쌍해서 사줬어. 너도 가난하면 이렇게 쑥 팔러 다니는 거야".

아주머니는 이런 말을 하면서 나에게 쑥을 건네받고 들어갔다. 순간 아홉 살 자존심이 지하로 곤두박질쳐서 내려가는 걸 느꼈다. 아주머니의 말은 뼛속까지 상처로 박혀 나를 눈물짓게 했다. 내가 다시 친구 있는 곳으로 갔을 때 친구도 500원을 주고 쑥을 팔았다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차마 난 친구에게 아주머니한테 들었던 말을 할 수 없었다. 친구 이모가 얘기했던 짜장면 파는 식당으로 가서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마주했다. 내 마음처럼 까만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모양에 잠깐 실망도 했지만, 짜장면은 아주머니 말을 잊게 할 정도로 맛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1시간 내내 쑥 판 돈 500원으로 사 먹은 짜장면 얘기를 하면서 왔다. 그날 이후 친구가 쑥 캐러 가자고 했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쑥만 보면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라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은 계속 도다리쑥국 얘기다. 된장 풀고 도다리 넣고 쑥만 넣으면 끝이라는 너무도 간단한 설명이다. 본인이 쑥은 캘 거니까 국을 끓여 달라고 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그냥 바라만 보다가  연한 쑥을 툭 하고 손으로 잘라봤다. 쑥 향이 아홉 살에 맡았던 그 향 그대로 주변으로 가득 번진다. 나도 모르게 쑥을 한 손 가득 캐고 있었다. 봉지가 없었던 우리는 차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 가득 담았다. 재래시장 안 수산코너에 들러 둘이 먹을 크기로 골라 도다리 한 마리를 손질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에서 도다리쑥국 레시피를 보면서 무와 대파, 멸치를 넣고 육수를 낸 뒤 된장을 풀고 도다리를 넣었다. 이것저것 양념을 더 하고 마지막에 연한 쑥을 넣었더니 모양과 맛이 그럴싸하게 완성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창피해서 어디든 쑥 들어가 숨고 싶었던 나의 쑥을 팔았던 날 얘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짜장면 값어치도 안 되는 가정교육관을 가졌으니 그 아주머니가 불쌍하지 않냐고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의 마음이 가난한 거라고 어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도톰한 도다리 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고 식탁 가득하게 쑥향이 번지면서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유기방 가옥 수선화만큼 마음이 화사해진다. 어른이 된 지금 혹시 그 아주머니같이 무심코 던진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나 되돌아본다.


이제 봄이 되면 수선화 축제 구경과 함께 도다리쑥국을 식탁에 올리며 봄을 캐러 다녔던 아홉 살의 나를 추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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