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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레포트 Jan 15. 2022

비교역사 경찰에서 깡패가된 남자 이야기-

대한민국의 이정재와 펠릭스 가야르도

오늘은 조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어보겠습니다. 바로 경찰에서 깡패가 된 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들의 삶을 비교해보고 이를 통해 공권력과 범죄 조직들간의 공생관계에 대한 역사를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비현실적이고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삶을 살았던 두 인물들은 대한민국의 깡패 이정재 그리고 멕시코의 마약왕 펠릭스 앙헬 미구엘 가야르도(Miguel Ángel Félix Gallardo) 입니다.   

(좌)멕시코의 마약왕 펠릭스 가야르도 (우) 이정재 

멕시코의 가야르도의 경우 넷플릭스의 인기 미드 나르코스(Narcos Mexico)시리즈에서 다루어지며, 대한민국의 이정재도 과거 SBS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졌을 만큼 두 인물의 삶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좌) 넷플릭스 나르코스 멕시코에서 멕시코의 마약왕 펠릭스 가야르도를 다루었고 그리고 (우)야인시대에서는  정치깡패 이정재가 다뤄진다..   

두 인물 모두 국가로부터 부여된 공권력으로 치안을 지키는 “경찰”에서 “암흑가의 제왕”으로 탈바꿈한 인물들인데요. “양지”에서 법을 집행하는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했던 두 남자들이 어떻게 법 따위는 개나 줘버리며 “음지”의 제왕이 되었는지 비교분석을 해보겠습니다.  

※성장과정

이정재는 1917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렷을 적부터 힘이 장사였던 그는 이천마을 씨름 대회에서 걸린 황소를 전부를 탓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천에서 이미 유명했다고 합니다. 또한 단순히 힘만 쎈 게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가방끈?도 길었다고 합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 졸업했다고 전해질만큼 일제시대 당시의 교육 수준으로 보면 나름 고학력자였다고 합니다. 이후 태평양전쟁(1942~1945)이 발발했을 때 일제의 강제징용장을 받고 경성으로 상경하여 근로보국대를 이끄는 김두한 조직 밑에 들어갔고,  그의 추천을 받아 특채로 경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알카포네 닮은 꼴 덕분에 동카포네로 불리우기도 했다.  

일제 패망 이후 찾아온 해방시기 대한민국은 공권력과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연속이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일제시기 경찰 복무를 했던 이정재는 계속 경찰로 근무를 했고 이전에 모시던 보스였던 김두한과 친구가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에 반민특위의 특경대 요원으로 활동했다고도 합니다. 반민특위 해체이후 경찰을 사직하고 동대문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구엘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는 1946년 1월 멕시코 시나올라 벨라비스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전문대에서 비즈니스 전공으로 졸업 후, 멕시코 경찰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특이할 점은 경찰로 근무하면서 시나올라 주지사 레오팔도 산체스 셀리스( Leopoldo Sánchez Celis)의 경호업무도 겸업했다고 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가야르도가 해당지역의 정치권력과 접촉할 수 있었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야르도는 경찰로 근무하면서 부패경찰들과 마약 판매상들을 중개해주는 일도 맡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후에 가야르도와 과달라라 카르텔(Guadalajara Cartel)이라는 마약 제국을 새우는 개국 공신들 라파엘 카로 퀸타로(Rafael Caro Quintero) 그리고 에르네스토 카릴로(Ernesto Fonseca Carrillo)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가야르도는 경찰시절 시나올라 주지사의 비호아래 마약상과 협력관계를 가졌다.

가야르도는 이때 미국-멕시코 국경을 오고 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유통 규모와 현금흐름을 보면서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는 경찰 직을 벗어 던지고 본격적으로 어둠의 세계에 입문을 하게 됩니다. 

* 조직설립과 세력확장

전후, 1953년 이정재는 임화수, 조열승의 도움으로 동대문 상인연합회라는 조직을 세우고 회장에 취임합니다.  이정재의 조직이 이전 김두한의 조직과는 다르게 세력확장을 한 점이 눈에 띄는데요. 6.25 전쟁 이후로 파괴된 시장의 중심지 일대 3,000평을 광장주식회사로부터 매입하여 점포를 짓고 상인들을 입주시키는 한편으로 상인들을 모두 '가족회'의 회원으로 가입시켰고 합니다.  이정재는 상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하여 과거 건달들이 폭력 행위, 협박, 공갈로 상인들에게 금품을 뜯는 폐단을 없애고 상인들의 애로사항이 있으면 해결해주면서 한번도 상인들의 원망을 산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인들의 원망을 사지 않는 한편으로 실은 절대 밖으로 노출되지 않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었는데 광장주식회사로부터 헐값에 거둬들인 땅을 상인들에게는 고가에 판매하여 폭리를 취한 것을 비롯하여 시장의 전기·전화 관리세에 자가 발전을 구실삼아 당시 가구당 300환에 불과하던 관영 요금을 2,000환~2,500환까지 거출하고 전화기 교환을 핑계로 7,000환을 부과하는 등의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막을 모르는 상인들에게서 이정재의 평판은 좋을 수밖에 없었는데 학력이 전무한 일반 조직폭력배들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삥을 뜯었다면 이정재는 학식이 있는 인물답게 돌아서 삥을 뜯어온 것입니다. 이정재의 세력은 날로 거대해지면서 경마장에까지 미쳤는데 그가 체포되기 직전 시장의 규모는 종로 4가에서 종로 6가까지 이르는 7만평 규모에 2,900여 점포를 아우르며 이정재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상인의 수는 12,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정재와 동대문 사단   

이러한 거대한 규모 뿐만 아니라 당시 혼란한 시대상 으로 인하여 상당수의 총기 또한 보유하고 있었으며 거대한 이권을 쥐게 된 이정재는 동대문 광장 입구에 1억환(현 시가 50~100억원)에 달하는 3층 건물을 짓고 옥상에 도장을 설치하여 부하들을 육성했다고 합니다. 

펠릭스 가야르도는 멕시코의 마리화나 재배를 넘어서 점점 남미와 북미를 아우르는 거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장악해가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는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마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코카인을 생산하는 콜롬비아의 남미 카르텔은 거대한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멕시코를 중간기점지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콜롬비아의 마약이 멕시코를 중간 기점지로 북미에 유통이 된다.  

이 과정에서 남미와 북미의 중간에 위치한 중남미 니카과라의 마약상 주안 마타-발레스테로스(Juan Matta-Bellesteros)는 콜롬비아 코카인 판매상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그리고 칼리 카르텔(Cali Cartel)과 펠릭스 가야르도 조직을 연결시켜 줌으로 서 콜롬비아에서 유통되는 코카인을 멕시코 국경에서 미국으로 전달 시키는 총책을 맡게 도와줍니다.   

콜롬비아 코카인 유통을 장악했던 (좌) 파블로 에스코바르 (우) 칼리카르텔은 북미로 판로 개척을 위해 가야르도와 협력한다. 

이 과정에서 50%에 이르는 통관 수수료를 챙김으로서 가야르도의 조직은 멕시코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마약 조직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며, 50억달러의 이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펠릭스 가야르도는 시나올라, 티후아나, 후아레즈 그리고 파시피코 지역을 아우루는 과달라라(Guadalajar Cartle)을 설립하고 그곳의 보스로 등극을 하는데, 1980년대 후반까지 멕시코의 마약사업을 주름잡았다고 합니다.  

*공권력과의 유착

 동대문 상인 연합회의 사업적인 수완과 더불어 이정재의 조직이 더욱 강해질 수 있던데 에는 공권력과의 확실한 유착관계가 커다란 역학을 했으며, 그 중심에는 이정재의 고향후배인 곽영주가 있었습니다.이정재가 경찰시절의 영향력을 통해 고향의 후배인 곽영주를 수도경찰학교에 입교시켜 경찰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며, 이후 곽영주가 경무대 경찰서장으로 승승장구하며 이승만 정권의 최측근이 되자 곽영주는 이정재 조직이 세력을 확장하는데 확실한 뒷배가 되어줍니다.  당시 곽영주의 위세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별명이 '부부통령'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정재와 곽영주의 커넥션  

이정재는 이후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야당 인사 및 기타 조직의 방해자들로 지목된 이른바 제3세력의 동시 다발적 암살 기도를 획책하기도 하였음이 혁명 재판 당시 밝혀졌는데 당시 암살 대상이 되었던 인물로는 김태선, 이순용, 신익희, 조병옥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 공원에서 발생한 ‘5.25’장충단 민주당 시국 강연회 방해 사건’같은 경우 이승만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시국 강연회를 듣기 위해 모인 관중들을 향회 이정재가 이끄는 1000여명의 폭력배들이 각목을 들고 테러 행위를 획책한 것은 초기 해방한국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1960년 4.19혁명이 터지기 바로 전 이승만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고려대 생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5.25 장충단 집회 방해사건 

정치세력을 위해서 이렇게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 이정재는 정계진출을 꿈을 꾸게 됩니다.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민의원 출마를 계획했습니다. 이정재는 오래 전부터 이천을 기반으로 정계 진출을 꿈꾸었는지 부하들에게 "길가다가 이천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으면 발 벗고 도와줘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시 내 지지율이 바닥이었던 이기붕이 수도권이면서 만만한 지역구를 물색하던 도중 하필 이천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런 이기붕에게 이정재는 이천 지역구를 반강제적으로 빼앗겼습니다. 이 때 이기붕과의 마찰로 말미암아 이정재는 이기붕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기세등등했던 이정재의 권력도 이 때를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펠릭스 가야르도의 과달라야 카르텔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공권력과의 유착이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카르멘 부올로스(Carmen Boullos)와 마이크 월러스 (Mike Wallace)가 쓴 책 “나르코의 역사”에서는 가야르도의 조직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데에는 멕시코 정보국 DFS의 비호가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DFS와 미국 마약단속국의 협력사항을 사전에 미리 파악한 가야르도의 조직은 미국요원들을 따돌려 지속적으로 미국시장에 마약을 유통했으며 DFS로부터 가짜 라이선스를 받아서 조직원들이 DFS요원처럼 위장 한 뒤 미국 국경지대에 코카인을 유통하기 까지 했다고 적습니다. 정도가 심할때는 DFS요원이 코카인을 운반하는 마약상을 경호하는 업무에 까지 투입됬다고 할 정도 였습니다. 

펠릭스 가야르도는 멕시코 정부로부터 뿐 아니라 미국정보로부터도 비공식적인 협력관계를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정부에서는 니카과라 내 좌파계열의 산디니스트 민족해방운동 세력에 대항하는 우익민병대 “콘트라스”를 비밀리에 지원했는데 지리적으로 항공편을 통해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송하는 펠릭스 가야르도는 본인이 장악하는 항공활주로를 통해서 CIA가 지원하는 니카과라 내 콘트라스에게 무기와 자금 및 기타 보급 물품을 공급해서 비공식적으로 미국 CIA와 협력관계를 가지기도 했으며, CIA는 가야르도의 협조에 대한 대가로 그가 미국시장에 남미로 들여오는 코카인 유통을 눈감아주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미국내 마약단속국과 CIA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었죠. 

가야르도는 국내적으로는 DFS라는 기관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CIA의 간접적인 비호를 받으며 마약유통 비즈니스를 성장시킨다.  

이렇듯 국내적으로 뿐 아니라 CIA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장악한 펠릭스 가야르도의 막강한 영향력이 그의 판단력을 흐트려 놓아서 일까요? 그는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리게 되는데 바로 멕시코 내에 잠입했던 천조국 “미국” 요원을 건드리게 됩니다. 

당시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미국은 그 싹을 잘라내기 위해서 마약단속국 요원들을 멕시코에 잠입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 조직의 눈에 안띄게 하기 위해서 멕시코 계 미국 요원 키키 카마레나를 전면에 내세워 언더커버(잠입수사)를 지시합니다.

키키 카마레나(Enrique "Kiki" Camarena Salazar )  

이 과정에서 키키 카마레나는 가야르도 조직이 운영하는 1000핵타르 가량의 마리화나 밭을 발견하고, 미국 DEA요원과 멕시코 군대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이 마리화나 밭은 소실되고 80만달러가량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빡친 가야르도는 키키 카마레나라는 미국요원이 마리화나 밭에서 일하는 농부로 위장한 사실을 알아내고, 멕시코 지역경찰과 공모해 그를 납치해서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고문을 자행합니다. 

고문을 한 내용이 매우 살벌한데 일단 드릴로 두개골을 쪼갰으며, 카마레나가 고통을 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잠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매 시간마다 아드레날린을 주입해서 항상 깨어있게 끔 만들었다고 합니다.  쇼크사 한 키키 카마레나의 시신은 유기가 되고, 그의 시신은 멕시코에 잠입했던 미국 요원들에 의해 발견되고 미국은 정부는 본국 요원을 처참하게 살해한 가야르도의 마약카르텔에 딥빡치게되고 레엔다 작전( Leyendea Operation)을 지시하며 철저한 응징을 약속합니다. 건드려서는 안될 미국요원을 건드린 가야르도는 이때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최후

이정재는 이후 이승만 정권 하야 이후 박정희가 주도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군사 정부의 조직폭력배 척결 사업 대상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군사 정부는 시라소니 린치 사건, 단성사 저격 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 등 이정재가 관여한 수많은 범죄를 재수사해서 혁명재판에 넘겼졌습니다. 

결국 1961년 5월 21일 혁명재판부에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7조 1항(단체적 폭력 행위) 외 11개 범죄 행위로 기소되어 범죄 단체 수괴로 인정되면서 사형 판결을 받습니다. 판결 이후 공수특전단 대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를 쓴 플래카드를 다른 깡패들과 함께 백주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는 치욕을 당해야 했으며, 향년 44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5.16 군사혁명 이후 깡패척결사업의 일환으로 이정재와 이정재의 조직이 숙청당한다.  

국내적으로는 멕시코 경찰과 부패정치인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미국 CIA의 암묵적인 협조까지 받고 있었던 가야르도의 위상은 그야말로 막강했습니다. 멕시코뿐 아니라 CIA라는 뒷배까지 있었던 가야르도는 어떻게 몰락을 했을까요? 

미국 DEA요원 키키 카마레나를 납치해서 잔혹하게 고문한 사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행위였으며 이는 미국정가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마약사범의 잔혹함과 사악함이 미국 사회에 명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요원 키키 카마레나의 죽음은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시대적인 변화 또한 가야르도의 마약제국 몰락을 앞당겼습니다.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구권이 점차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냉전시기 그 동안 대적해온 공산주의이데올로기라는 주적에서 당장 자기 내 미국 남부국경을 위협하고 있는 마약사범에 대한 위협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하고 레이건은 중간선거에서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어조에서 당장 미국 사회와 미국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마약사범에 대한 위협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는 조지부시 Senior 또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의 위협론을 강조하면서, 멕시코 측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키키 카마레나 요원 죽음 이후 미국정치권(레이건정부와 조지부시 Senior 정부도 마약소탕작전에 힘쓰게 된다. 

당시 멕시코 국유산업들의 민영화 이행 과정을 겪으면서 멕시코 경제는 수렁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IMF와 국제기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미국은 멕시코 살리나스Salinas 정부에게 가야르도의 마약사범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시에 멕시코가 요구하는 경제적인 원조 더 나아가서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NAFTA 체제에서 배제를 할 것이라고 위협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리나스Salinas 집권정부는 가야르도Gallardo 체포작전을 칼데로니 Callderoni 부사령관에게 지시하고 칼데로니의 통제하에 군,경찰들이 Gallardo의 과달라나 카르텔을 압박해가기 시작합니다. 

가야르도 체포를 지휘했던 칼데로니 부사령관   

그리고 1989 년 4월 가야르도는 칼데로니의 요원들에 의해서 체포를 당하고, 미국요원 키키 카마레나 납치 및 살해혐의 이하 마약유통과 폭력 등의 혐으로 멕시코 및 미국 양측 정부로부터 재판을 받습니다. 

가야르도는 체포직후 인터뷰에서 “자신을 체포했던 경찰들이 과거 가야르도가 주최했던 저녁만찬에 초대되었던 친구들이었다”라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가야르도 체포 이후, 그 동안 가야르도의 마약카르텔들을 비호했던 지역경찰과 부패관리 및 정치인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가야르도는 자신이 CIA가 지원하는 니카과라의 콘트라스를 지원해주는 일을 보조해주었기에 미국 측이 묵인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냉전국면이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CIA측에서는 더 이상 공산주의 위협을 막기 위해 콘트라스에 대한 지원을 줄이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배달”을 해주었던 가야르도의 마약 카르텔도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미국 요원 카마레나를 건드린 그의 오판과 냉전종식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서 가야르도의 마약제국은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결론

사회학자들은 국가와 폭력 집단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조직 범죄집단이 활동하려면 기본적으로 경찰과 정치적 기관으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수입을 세탁해 합법적 경제체제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수단들도 필요하기에, 범죄집단은 공권력 집단에 잠입해 뇌물을 주고 그들로부터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가 발전하지 못한 국가들일수록 비 합법적인 조직 폭력 집단과 공권력과의 유착관계가 더욱 공고하고 두드러진다는 사실입니다.  

존슨 너서니얼 펄트가 쓴 “대한민국 무력정치사: 민족주의와 경찰, 조폭으로 본 한국근현대사”에 흥미로운 대목이 적혀있는데, 정치기구와 시민사회간의 상호작용이 발전된 선진국에서는 공권력과 통치시스템(거버넌스)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공공집행기관의 공권력 사용에 대한 확신이 자리잡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후진국 수준의 국가에서는 민간 무력의 합법시장과 불법시장의 경계가 모호하고 교차하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즉, 공권력의 권위와 신뢰가 약해진 틈새에 이러한 합법과 불법을 가장한 자경단, 깡패, 용역보안업체 같은 폭력집단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인데, 과거 해방 이후 정국이 불안하고, 이념의 갈등으로 사회가 혼란했을 때 정치깡패집단들이 태동할 수 있던 것도 너서니얼 펕트가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특히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두 사람 모두 경찰이라는 공권력 기관에 근무를 한 이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경찰 근무라는 커리어 이후 이들이 국가 공권력의 비호아래 불법조직 세력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국가권력과 접촉을 하는데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정재는 경찰 근무 당시 본인의 영향력으로 경찰학교에 곽영주를 입학시켜줌으로 인해, 본인이 조직생활을 하는데 있어 의도하든 그러지 않았든 든든한 뒷배를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후 곽영주는 알려진 대로 이승만 정권의 최측근이 되어 실세 중의 실세가 되고 이정재의 조직이 확장되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펠릭스 가야르도 또한 경찰근무시절 알게 된 주지사 그리고 마약상들과의 커넥션을 통해서 이후 멕시코 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를 있는 거대 마약제국을 세우는데 있어서 멕시코 내 공권력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핵심인맥들을 포섭하는 밑바탕을 깔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지는 못한 사법-행정 시스템 그리고 권력기관의 부패는 이러한 범죄집단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케이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념의 역할”도 이들이 성장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너서니얼 펄트는 책에서 “ 해방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좌익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군의 주둔과 지지에 힘을 얻은 우파들은 수도 많고 조직도 잘된 좌파 집단들과 경쟁하고자 불법 무장 청년집단들을 동원하고 공고화 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권력이 미 군정에서 이승만에게로 이양되었을 때, 공산주의와의 철저한 투쟁이라는 국가보안법을 공식화해서 경찰조직과 좌익진영에 맡섰던 우파 청년협회를 대한청년단이라는 단일 전국집단으로 흡수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 하려 했다고 지적합니다.

냉전이라는 이념의 갈등도 이러한 범죄조직이 성행하는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 당시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명목으로 경찰과 폭력집단 연합의 크로스가 오늘 컨텐츠의 주인공 이정재 그리고 그의 경무대 인맥인 곽영주를 통해서 공권력의 비호아래 조직을 키운 사례입니다.    

펠릭스 가야르도의 경우에도 너서니얼 펄트가 주장한 바와 맥을 같이하는데요. 당시 정치 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했던 멕시코에서도 공권력과 불법무력집단 사이에서의 경계가 모호했고 이들이 상호작용이 빈번한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경계선이 모호한 상황에서 경찰인 펠릭스 가야르도는 경찰에서 쉽게 마약조직범으로 전환을 할 수 있었고, 또한 중남미에서 콘트라스라는 우익 민병대를 키우려는 CIA의 요구에 부합해서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라는 명분아래 CIA는 가야르도 조직의 마약유통을 눈감아주고 중남미 대륙의 좌익-우익이라는 냉전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CIA의 간접적인 지원으로 가야르도의 마약조직 또한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상 활동했던 시기와 지역이 다르지만 경찰에서 범죄조직의 두목이 된 두 역사적 인물인 이정재와 펠릭스 가야르도라는 유사한 길을 걸어온 두 남자의 생애를 비교분석 해보면서 범죄조직과 국가공권력의 유착관계라는 주제에서 유의미한 역사적 교훈을 옅 볼 수 있었습니다. 

 “공권력기관과 범죄집단의 상호작용”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이 컨텐츠 하나로 깊이 있게 다루기는 옅부족이지만 현대사회 “시민”으로 살아가는 시청자분들이 이번 글을 통해서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사색하는 계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참고문헌

Hwang, K. M. (2021). A history of Korea. Bloomsbury Publishing.

Boullosa, C., & Wallace, M. (2015). A Narco History: How the United States and Mexico Jointly Created the" Mexican Drug War". or Books.

Grillo, I. (2011). El narco: the bloody rise of Mexican drug cartels. Bloomsbury Publishing.

방성수 (2003) 조폭의 계보 살림출판사

존슨너서니얼 펄트(2016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민족주의자와 경찰 조폭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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