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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리의 사색가 May 27. 2024

<노인과 바다> 가장 값진 투쟁

투쟁하는 인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책을 읽고 있으며 마치 바닷가에서  화려한 크리스털 유리컵에 담긴 진한 주황색의 위스키를 마시며 바닷바람과 소금기 가득한 향기를 맡으며 휴가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문장은 칼같이 날카로우며 남자답고 담배처럼 담백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다. 특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나온 문장 중 하나는 그런 경우중 하나다.



브렛이란 그런 여자였다. 조금 전에 내가 떠올리면서 울고 싶었던 바로 그 여자 말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마지막에 본 그 여자의 모습, 길거리 위쪽으로 걸어가 자동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생각했다........ 대낮이라면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감정을 억누르기가 아주 쉬운 법인데 밤에는 정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60>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난 옆에 재떨이와 그 위에 비스듬히 눕혀놓은 반쯤 탄 시가의 향기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술이 담긴 잔에 비추어 자연스럽게 탁자 위에 바다 물결을 만드는 영상을 보았다. 내가 문학적 상상력이 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아름다운 문장을 원어로 읽는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생각해 본다.



헤밍웨이의 책을 많이 읽어본 적은 없지만 노인과 바다는 이번으로 4번 정도 읽는 책이다. 내용자체가 복잡하거나 길지도 않기에 하루라는 시간을 투자한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을 가진 중단편의 소설이다. 이렇게 글로 기록하는 이유는 읽으면 읽을수록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이다. 그의 예술적 경지와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미국문학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것 같다. 인간의 가능성.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끝을 알기 전에는 예측할 수 없는 그 현실. 삶을 그저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투지를 보여주며, 실패에 대한 좌절이 아닌 그마저도 포용할 수 있으며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영원히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투쟁하는 인간을 보여주며 삶을 대하는 인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와 마놀린의 모습_setanta books 핀터레스트 >



이 소설의 줄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소개하며, 한 노인이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는데. 그만 상어 떼들한테 살점이 뜯겨나가면서 거대한 몸집에 맞게 뼈만 남기고 끝이 났다는 내용이다. 어떤가?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위대한 작품이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그 관점에서부터 생겨난다고 한다.

노인인 산티아고는 소설 곳곳에서 독백으로 교훈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낚시라는 행위자체를 글로써 자연과 함께 자세히 묘사하고 헤밍웨이의 시적인 감각을 더해 이야기는 더 생생하면 하나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상어와 맞서 싸우는 산티아고의 모습_setanta books 핀터레스트 >



마지막 부분은 독자들의 견해에 따라 해석하는 정도가 달라질 것 같다. 마침내 청새치를 잡아 배 옆에 묶어두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지겹도록 오는 상어 떼에 의해서 머리 부분과 뼈만 남긴 모습을 끌고 와 노인은 힘없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드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의 놀라움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나는데.... 결과적으로 이 소설에서 보고 내가 느낀 것은 인간이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분명 투쟁하는 방향대로 목표의 근처까지는 겠지만 결국 그 앞날은 알 수 없다는 것과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실패했지만 그것이 결국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청새치는 어떤 강한 의지에 의해서 우리 인간이 저마다 가진 다양한 목표이거나 이룰 수 없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굳은 지조와 포부를 이끌어낼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란. 쉽게 말해 직관적으로 내 눈앞에 보인 어떤 활동이나 행동 속에서 호기심이 발동해 그것을 해보자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고 작가로서의 어떤 목표를 가졌다면 그것은 결코 내 인식과정 속에 어떤 논리나 세상이 바라보는 나의 평가는 사라진. 말 그대로 생각을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글을 쓰며(행위)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작품(행위를 통해 얻고자 하거나 만들고자 하는 결과)을 만들고자 생긴 동기를 준 해당 문구나 작품 또는 내 오감을 통해서 전달된 내용들이 내게 자극으로 다가와 행동하고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게 할 동기를 주는 것을 바로 '어떤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어떤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논리적인 것은 중요치 않다는 점을 가지고 있다. 꿈을 가지는데 논리가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 낼수 있는지 보여줘야겠어 (67)



투쟁하기 위해서는 넓게 보고 깊이 있게 나를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과정을 사랑하고 오는 것과 지나간 것을 당연하게 여길 줄도 알아야 하며. 자신만이 가진 낭만과 사랑을 유지하고 보통의 인식을 가지며 인간다운 면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이것이 삶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네 할 일은 오직 행동에만 있지 결코 그 결과에 있지 않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마라.
그러나 또 행동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결과가 좋고 나쁨을 동일하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라.                     

<바가바드 기타_ 2장 47절 48절>



목적이 없는 인간이 행동할 의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처럼 주변에는 새우나 해파리 같은 작은 목표나 경험들이 둥실 떠있을 것이다. 그러다 한번 무서운 굉음과 함께 어떤 거대한 무엇이 나를 향해 다가왔을 때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나 또는 불확실하지만 그것의 존재를 알고 싶어 갑자기 어떤 모험정신이 발동해 한번 이루어보겠다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듯이 어떤 확신에 찬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것에 제대로 부딪쳐보려고 하는 몇몇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우리들의 인생도 한 번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선택에는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진짜 인생이 바뀌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과거 학창 시절 나는 몸무게 90킬로그램에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는 시간이 힘들고 늘 무기력했으며 잠을 자고 싶다는 욕구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는 욕구 이외에는 딱히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꿈이 생겼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으며 극단적인 변화까지는 가지 않았다. 매일 운동하기. 4kg 아령 두 개로 집에서 몇 가지 운동을 배우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들어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처음 시작인 만큼 흥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난 어떤 일들이든 그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익숙해지려고 또는 친숙해지려고 그 분야의 재미난 부분 하나를 어떻게든 찾거나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그 일들을 수행한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아령을 들어 올리고 내리면서 숨 쉬는 방법과 내 숨소리의 편안함과 작은 변화들에 집중했으며 개수와 세트수를 채워 나감으로써 근육에 자극을 가하다 보니 점점 이마 땀이 생기면서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선택과 자유의지에 의해서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건강을 위해서 또는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떨쳐버리려고 신체에 자극을 주는 일이 나름 즐거웠고 새로운 자극에 기쁨을 느꼈다. 몇 달 정도하고 나니 조금은 진보적으로 운동방법과 순서를 새롭게 결정하고 한번 시도해보았다.



처음에는 아령을 들어 올리고 내렸는데. 이제는 '해머컬'이라는 아령운동을 추가시키면서 새로운 동작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해머컬이라는 운동이 정말 근육을 너무 자극하다 못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한 세트에 12개를 하는데 꽤나 힘이 들었다. 그래도 한번 꾸준히 해보기로 했다. 여기에 추가로 푸시업 100개. 달리기  등의 유산소운동을 하면서 체력도 길렀다.



특히 달리기만큼은 열정적으로 했던 것 같다. 달리기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땀을 흘리면서 고통보다는 내 생각에 집중하면서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달리는 상태자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편안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이다. 잘 달리다가 어느 순간 멍해질 정도로 땀을 흘리고 온갖 잡생각과 헐떡되는 숨소리를 듣다 보면 갑자기 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든데. 아무튼 한마디로 표현하면 달리기를 하면서 땀으로 목욕하듯이 흘리고 다리의 감각은 아일체처럼 내 리듬감에 맞추어 강도를 적당하게 정하고 뛰다 보면 명상하는 상태처럼 고요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단 이런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 경험에 의해서 설명하면 몸이 있는 곳. 즉 육체와 마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마저 그 행동에 열정을 다해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명상하는 상태에서 달리기를 하게 된다.

일단은 그 상태를 만들기까지 긴 시간 달리기를 해야 하며 중간에 쉬지 말아야 하며 내 기억으로는 감각의 여러 부분을 집중적으로 느끼며 하나의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이동하고 또 느끼고 그 감각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다시 내 숨소리에 집중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처음에는 매우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점차 의식적인 생각을 요구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운동하며 평소처럼 달리기를 하다. 멈추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 무릎을 다치게 되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전단지를 붙이는데. (당시는 여름이었고 매우 더웠다.) 전단지를 가방에 잔뜩 넣고 위에서부터 밑으로 내려가다가 전단지의 무게와 내 몸무게가 합해지면서 무릎이 회전된 상태로 착지를 해버린 것이다. 아마 그때 다치고 바로 쉬었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픈 상태로 어떻게든 일을 하게 되었고 (순전히 내 의지대로) 외측측대 인대손상이라는 말을 의사한테 듣게 되면서 일도 그만두고 운동도 그만두게 되었다. 팔운동정도는 분명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의사는 웬만하면 신체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며 운동하는 것을 권하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한 달 넘게 운동을 하지 못했다. 몸무게 75킬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제는 정말 운동이 내 삶의 일부처럼 여겨졌는데. 그마저도 그만두게 되니 평소보다 더 우울해졌고 하루가 느리게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식단관리도 안 하게 되었고 그저 책을 보며 몇 달을 지냈다. 그러다 한번 산책을 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어째서인지 뛰고 싶다는 맘에서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때는 가을이었다. 그러다 무릎쪽 부분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걷기 시작했다. 그 통증이 2.3일은 더 지속되었다. 이제는 뛸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당시에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그때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집을 이사하게 되었고 새로운 곳으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집 근처에는 체육관과 선수들이 대회준비를 하기 위해 뛰는 넓은 공간. 달리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있었다. 나는 이미 몇 개월 동안이나 뛰지 못했고 다리부상에 대한 걱정 때문에 뛰는 것을 망설이게 되었다. '이런 넓은 공간에서 뛰어본다면 공기자체 달콤하게 느껴질 텐데' 하고 생각하며 그저 서있었다. 그렇게 망설이다 '그래. 좀 뛰어보고 한번 결정해 보자' 하고 마음먹고 뛰기 시작했다. 뛰다 보니 즐거워서 계속 뛰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평온함을 느꼈고 그저 계속 뛰었다. 그러다 내 다리에서 통증을  느껴지기도 전에 몸이 지쳐 뛰기를 멈추었다. 정말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나는 한 주에 3일 정도는 달리기를 한다. 내게는 투쟁했던 날들이 별로 없지만, 물론 투쟁의 의미나 그 행동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도전하고 싶은것은 굉장히 많다. 아직 내가 20대초반이여서 그런지 하고싶은 것들은 많다. 더 늦기전 한번 도전해볼려고 한다. 이제 3개월후면 나는 곧 군대에 입대한다. 입대하기전에 내가 도전해보고싶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든말든 꾸준히 해나갈 것이며 새로운 일에 한번 도전해볼려고 한다.



어느날 문득 들어보면 투쟁했던 나날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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