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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리의 사색가 May 03. 2024

<거미여인의 키스>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새벽에 느낀 마법같은 순간

밤의 시간은 항상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다. 

나는 보통 일찍 자지만 새벽마다 잠에서 깼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때의 새벽공기는 나를 감상적이게 만들었고 그 분위기속에 매료되는 그때의 순간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했다. 새벽의 공기를 유리병에 담아둔다고 해서 그것을 영원히 보존하고 그 공기를 들이마신다고 해서 지금의 낮시간을 새벽의 감상으로 바꿀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밤의 시간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영감이고 글을 쓰라는 요구이기도 한다. 즉 밤의 시간은 내게 생각하라고 요구하며 그것을 글로 기록하라고 요구한다. 그 전날에 읽은 책의 내용이 꿈속에 까지 나온다면 그것에 대한 나의 감상을 글로써 기록하지 않으면 그 순간을 가장 확실하게 기억할 방법은 사라지게 된다. 

나는 한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장소와 상관없이 벌떡 일어나 글로 기록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성격이라 꼭 글로 기록해야만 한다. 그때 내가 꿨던 꿈은 <거미여인의 키스>에 나온 한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 -
 거미여인의 키스 영화 1985


이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마누엘 푸익의 소설로 동성애자인 몰리나와 정치범인 발렌틴사이에서 이루어진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친구로서의 우정과 연인으로서의 사랑이 공존하는 조금은 묘한 관계라고 생각될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에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이 작품이 현대의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몰리나의 부르주아적인 태도와 당시 게릴라 활동과 관련있는 좌익 마르크스주의의 입장(발렌틴)이 서로 만나 감옥속에서 서로의 편견과 시선을 거두고 진정한 의미로서의 자유와 시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사실 마지막 부분에 대한 해석은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난 이 책을 3번정도 읽었는데, 마지막으로 읽었을때의 느낌과 감상을 표현할려고 새벽의 어느 시간대에 일어나 글을 썼던 적이 있었다. 난 늘 펜이랑 노트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수 있으며 보석같은 순간을 여러 목격해 그것을 아주 잘 간직하고 있다. 핸드폰으로도 기록할때도 있지만, 난 펜을 잡고 직접 수기로 쓰는것에 일종의 매력을 느껴 지금도 글을 쓸때는 수기로 작성한다. 그때 꿈속에서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몰리나의 이미지는 반은 거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눈매는 부드럽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우아한 여성의 몸매를 가진 그런 모습이었다. 반대로 발렌틴은 영화속 발렌틴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발렌틴과는 그 모습이 살짝은 달랐다. 나의 상상속에서는 발렌틴은 턱수염이 없었으며, 눈썹이 더 진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썼던 일기를 한번 공유하고자 한다.








2024.1.14 (새벽1시)


거미여인의 키스. 이 소설은 20세기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면서 그 어떤 연인들의 이야기보다도 더 로맨틱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뜨거운 애정을 가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소설을 보고 난 그날 새벽에, 난 눈이 떠졌다. 새벽의 공기는 상쾌했고. 동시에 슬픔으로 가득차 방안은 적막함으로 가득했다. 몰리나(거미여인)의 그 슬픔과 해변에 누워 기운 빠진채 있는 발렌틴의 모습. 난 감동할수 밖에 없었고. 잠이 달아난 상태에서 나는 계속 몰리나를 생각했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밤의 잠자리로 조용히 눕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사랑이란 자신을 잊게 만들정도로 강력한 것이고 또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더 부드럽게 대할수 있으며, 미소 지을수 있는. 세상에 가장 고귀한 이성과 감성의 형태라는 것을, 새벽공기에서 피어난 그 아름다움의 향연과 소리없이 들리는 로맨틱한 울림을, 나는 계속 느끼고 싶다. 새벽의 달콤함이 다 지나가도록.






책을 보고 특정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으면 감동한 나머지

그 아름다움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 순간이 너무 좋은 것이다. 그때만이 진정으로 나를 알게되고. 명상하듯이 슬픔이든 분노든 상관없이 다 그저 지나가게 나둘수 있는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아름다움을 목격한 순간인 것이고 우리들이 그 찰나의 순간에 잠깐동안은 시인의 투명한 눈을 겸비하게 되면서 자연의 신비와 그 숭고한 어떤것을 마침내 알아볼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몰리나가 마리오 클라벨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마리오 클라벨의 모습>



마리오 클라벨은 아르헨티나의 배우이며 가수이다.

그가 작곡한 [내편지]는 스페인어로는 Mi Carta

(미 까르따)로 읽을수 있다.

나는 현재 이 곡을 스페인어로 외우면서 가끔씩 따라 부르고는 한다.


 


노래 가사를 외우게 된 계기가 조금은 특별하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정확히는 내가 2월쯤에 적은 시간 알바를 하면서 같이 학업도 병행할려는 목적으로

학교 인트라넷으로 근로를 신청하게 되었고, 그렇게 3월부터 학생식당에서 하루 1시반동안 (평일만) 일을 하게 되었다. 식당일은 생각보다 내게 맞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는 조금은 어색했다. 지금은 많이 친해지고 대화도 나누게 되었지만 처음 만났을때는 서로가 어색해서 간단한 인사정도만 했으며. 일하는 내내 별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직 내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인지 남자 동료들끼리는 서로 벌써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름 공감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며 친해지게 되었지만, 난 별로 공감할 수가 없어 그저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렇군요.'하며 대답만 했을 뿐이다.




그때 나는 심심한 나머지 노래 가사라도 하나 외워서 일하는 내내 따라 불러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몰리나가 부른 Mi carta라는 곡이었다.

전부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찾게 된것이고 지금도 현재 따라 부르고 있으며 어느정도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수업이 일찍 끝나면 한 1시간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긴다. 그때 나는 도서관에서 조금씩 노래 가사를 외우며 스페인어의 발음을 공부하고 마리오 클라벨이 부른 곡을 직접 들어보기도 해보면서 노래 가사를 천천히 외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현재 내가 부르고 싶다면 언제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Mi carta _mario clavell


querida vuelvo otravez

a comversar cotigo

la noche

taeun silencio que me invita a hablarte

Y pinoso si tu tambien estaras recordando

Cariño los sueños lindos este amor extraño

Tesoro aun que la vida no nos una nuca

Yi estemos proque espreciso

Siempre sevarados

Te digo todo este amor que siento solo toyo

Mis pensamientos yi mi vida toyas

Como es tan toyo mi corazon





가사에 대한 해석은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알아볼려고 도서관에서 스페인어 기초학습자를 위한 사전을 찾아봤지만

몇번 찾아보다가 스페인어에 대한 기초지식을 몰라 중간에 그만두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인생의 한번은 스페인어로 말할수 있다면 이것으로 된거 아닌가?내가 나중에 스페인어 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기면 <거미여인의 키스>를 원전으로 읽어볼려는 생각도 한번은 가져 본적이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모든 문학작품은 반드시 원어로만 읽어야지 그 진가를 알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옛 고전을 원어 그대로 읽는 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불충분할 수 밖에 없으리라. 왜냐하면 어느 고전도 현대어로 번역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월든_독서 158P>



시인들이 쓴 언어를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가 번역했다고 해서 원문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과정들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이 바로 '원래 쓰여진 언어'를 찾고 한 단어 한 단어를 찾아보고 그것을 심사숙고해 제대로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학작품이 아닌 처음에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느 문학작품을 선택해 그 작품의 원어를 찾아 읽어봐야 할 것이다. 내가 알고있는 어느 지인분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독일어 로 직접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어나간다고 하는데.(그는 영어실력이 뛰어났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냐고 물어보니 몇 개월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한권의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이었다. 난 그의 행동에서 존경심이 느껴졌다.




푸익의 고향땅인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내가 알고있는 것은 라틴계쪽 나라이며 현재는 물가가 매우 싸다는 정보밖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도 만약 훗날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게 된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한번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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