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이 깃든 너에게
무슬림 왕조가 꽃피운 찬란한 문명 위에 스페인 왕국이 국기를 꽂고 웅장함을 더해 다듬어진 도시, 그라나다. 이사벨 왕비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칭했다는 이곳. 그래서일까, 떠돌던 집시들마저 이 도시에 정착하게 된 것은.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엔 붉은 성 알함브라 궁전이 우뚝 솟아 있고 맞은편 그 궁전보다 높은 척박한 산비탈엔 집시들의 거처였던 혹은 거처인 동굴 집들이 있다.
넘치는 술과 떠들썩한 도시의 향연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고 고단한 삶을 담은 그들의 플라멩코가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빛을 보곤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많은 아이들은 밤마다 거리를 헤매고 있다. 흰 담장 너머로 샛노란 레몬과 오렌지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풍요로운 도시의 산비탈에서 만난 고단한 흔적. 푸르른 나무 대신 뾰족한 선인장이 즐비한 그곳에서 이방인이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꽤나 아련했더랬다. 삶과는 동떨어진, 아름다운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관광도시에서 그들의 인간적임은 조금 가련하고 잔인해 보였다.
골목마다 동화를 품고 있은 듯 아름답고 꽃들로 가득했던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그라나다. 밤에 만난 그곳은 후미진 골목을 방황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상념과 관광객의 들뜸이 뒤섞인 이중적인 어둠이 있었다. 이른 아침 아이들이 다녀간 곳에 남겨진 으스러진 맥주 캔만이 그 밤을 기억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