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도시
어떤 여행은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가득 남을 때가 있고, 또 어떤 여행은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기도 하다. 물론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던 여행도 적어도 한 순간만이라도 좋은 순간이 있다면 또다시 되돌아보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지만.
잔뜩 배가 부른 상태에서 쿠알라룸푸르 시티 센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이곳은 한국의 명동과 같은 페탈링 거리(Jalan Petaling)가 있는데, 곳곳에 먹거리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팔고 있던 옷 중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로고와 캐릭터들이 그려진 티셔츠도 보았는데,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이곳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페탈링 거리의 경우는 윗부분에 플라스틱 돔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바로 비를 맞지는 않지만 거리가 생각보다는 짧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에 있는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이곳의 1층은 다양한 기념품을 비롯해 공예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2층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전통 의상 등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비를 피해 들어온 곳이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만약 오래 머물렀다면 분명 가방 한가득 채워오고 싶은 만큼 눈에 들어오는 공예품과 기념품이 많았다.
페탈링 거리와 센트럴 마켓을 두 시간 남짓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앉아서 쉴 곳이 필요했다. 비가 내려서 다행히 더위는 조금 식혀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습도 때문에 우리는 땀을 식혀줄 수 있는 에어컨이 있는 카페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카페가 실내에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쿠알라룸푸르의 카페들은 실내에 있더라도 문을 전부 열고 선풍기 정도만을 틀어두거나 아니면 테이블 자체가 야외에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에어컨을 갖춘 실내 카페의 경우는 우리와 같은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 때문에 자리가 이미 만석인 곳들도 여럿 있었다.
몇 군데의 카페를 들어갔다 자리가 없어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하다 겨우 자리가 있는 leaf & co. cafe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곳을 입구에서 봤을 때는 다른 카페와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마치 길쭉하게 뻗은 나무만을 위한 공간처럼 1층의 천장이 사라지고 건물의 저 높이 건물의 유리 지붕이 보였다. 독특한 구조의 카페였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음료도 꽤나 독특했는데, 패션후루츠 모히또를 주문하니 모히또 안에 나무 스틱에 꽂힌 얼음스틱이 음료에 넣어져서 나왔다. 모히또의 맛이 묻어 있는 얼음스틱을 따로 꺼내서 빨아먹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한참을 카페에 앉아서 쉬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주변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시티 센터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호텔은 부킷 빈탕(Bukit Bintang)이 가까운 멜리아(Melia)로 결정했다. 스페인 호텔 체인 브랜드인 멜리아는 한국에는 없지만 작년에 치앙마이에서 이용해 보면서 그 서비스에 만족해서 이번에도 역시 같은 호텔을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에서 보는 뷰는 바로 건너편에 있는 베르자야 타임 스퀘어(Berjaya Time Square) 쇼핑몰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호텔에서 잘란 알로(Jalan Alor)라는 쿠알라룸푸르의 대표적인 야시장이 있는 거리는 5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잘란 알로로 향했다. 5년 전에 이곳은 주말만 되면 거리에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도저히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었는데, 아직은 그때의 분위기로 되돌아가지는 못한 듯했다. 하지만 덕분에 식당에서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부산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사실 저녁을 먹기 전까지도 점심에 시티 센터에서 먹은 것들이 모두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우리는 페트로나스 타워를 향해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페트로나스 타워는 잘란 알로에서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30분은 족히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지나가는 길에는 KL 타워도 보면서 지나갔는데, 사실 페트로나스 타워를 가장 잘 보기 위해서는 페트로나스 타워가 아닌 KL 타워의 전망대를 가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같은 높이에서 보는 페트로나스 타워의 모습이기 때문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서 느껴지는 그 웅장함을 느낄 수는 없는 곳이다.
페트로나스 타워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하늘도 건물에 뿜어내는 빛 때문에 괜스레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건물 사이로 조금씩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 쿠알라룸푸르에 돌아온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5년 전 처음 페트로나스 타워를 보러 왔을 때의 그 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처음 쿠알라룸푸르에 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아 페트로나스를 처음 보러 갔을 때, 건물 앞 공원에 가만히 앉아서 해가 지기 전부터 밤이 되어 수많은 조명들이 건물을 감쌀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가 필요한 날이면 봉사활동이 끝나고 저녁에 혼자 터덜터덜 이곳까지 걸어와 야경을 보곤 했었다. 그렇게 학생 때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던 곳을 다시 찾아오니,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쿠알라룸푸르를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물론 이곳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바로 과거의 나를 잠시나마 위로해 주었던 페트로나스 타워를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페트로나스 타워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쿠알라룸푸르를 다시 오게 만든 이유가 되었고, 덕분에 기억의 저편에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던 이곳에서의 5년 전 추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