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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pr 25. 2024

전통을 넓히는 단어들

힙트레디션과 코리아 빈티지

전통이라는 단어 뒤에는 습관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라고 적고 싶다. 하지만, 전통(傳統)의 사전적 정의에는 미래에 대한 언급 없다. 전통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말한다. 우리가 전통에 미래를 기대한다면, 그건 우리가 만난 전통이 과거로부터 미래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났기 때문인 듯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전통은 공무원이 정책으로 이끌고, 전문가 집단의 의견으로 승인되고, 무형 문화재 전수자를 통해서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전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은 만큼, 전통의 흐름에서 다 함께 흘러가기에 좀 빡빡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함께 할 지점을 찾지 못하고, ‘한국적 전통’에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런 식이면 전통은 조만간 종료 예정이라는 느낌뿐이다. 오래되었기에 소중하다며 지키자는 구호는 이미 빛과 색이 바랬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의 전통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시간을 버텨 온 것들이 지금 여기에 자리 잡기 위해서 적절한 가공이 필요하다. ‘힙트래디션(hiptradition)'과 ‘코리아 빈티지(Korea vintage)’는 전통이 넓게 흘러가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힙트레디션은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힙(hip)과 전통(tradition)을 합친 신조어다.” 미니어처 반가사유상, 청자를 닮은 핸드폰 케이스, 나전칠기 스마트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부분 오래된 것을 닮았다. 트레디션이라는 단어 덕분에 긴 시간의 축을 가질 것 같지만, 힙트레디션에서 전통은 익숙하고 정형화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된다. 여기에서 트레디션은 접두사 K를 달았던 수많은 문화와 대열을 함께 한다. 파편화된 혼종 그 자체가 멋이다. 힙트레디션은 전통의 이미지를 지금의 삶에서 풀어내면서 문화산업 측면에서 성과를 보인다. 산업 안에서 ‘전통’이라는 코드가 얼마간의 지분을 차지는 일이 반갑다. 동시에, 문화산업 안에서 빠르게 소비를 촉진한다는 점에서는 경계를 세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다이소 달항아리를 갖게 됨으로써 학습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항아리라는 전통의 이미지를 확산하고 전파하는 것에는 효과적이지만, 달항아리는 팝업 매대에서 금세 사라지고 대체된다. 우리가 전통을 학습하는 접근이 ‘소비'로 좁혀진다면 전통은 이내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한국적 전통에 힘을 주고 싶다면, 소비처럼 빠르고 쉬운 접근이 아니라 더디고 복잡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진 제공, 1집구석(이기태)

‘코리아 빈티지’는 ‘북유럽 빈티지’ 아래에서 파생된 단어로, 동네 거리의 자개장과 붉은 옻칠을 한 좌탁 등으로 거리에서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고 만날 수도 있는 오래된 가구를 지칭한다. 일명 st(style)를 넘어서 나름의 독창성으로 갖추었으며, 리빙(living) 아래 위치한 취향이자 꾸밈 양식의 하나로 집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용어의 탄생 배경에는 ‘온라인 집들이'라는 콘텐츠가 있다. 많은 사람이 집을 꾸미고 자기 삶의 형태를 뽐내듯 공유하는 흐름은 ‘코리안 빈티지'의 저변을 넓힐 토대가 되었다. 코리아 빈티지로 불리는 과거의 가구는 오늘날 가성비 가구와 비교할 때 좋은 재료와 공임을 투자하여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지금은 고가로 취급되는 부자재와 마감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동일한 제품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취향과 ‘구별 짓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코리아 빈티지는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확장되는 추세이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의 구매 경험은 기존의 상품을 접하는 관점을 변화시킨다. 매대에서 뽑아 선택한 ‘내 물건’이라는 일방적이고 매끄러운 구매가 ‘타인, 물건, 나’라는 개체가 분리되면서 상황은 관계적으로 재구성된다. 같은 플랫폼에서도 매번 다른 인물을 만나고 물건을 교환한다. 또한 새것 같은 헌것, 미개봉 새 상품이 아니라 타인의 물건을 이어 사용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흔적과 흠결을 대하는 태도 역시 학습한다. 물건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개입과 흔적이 동반되며 나와 분리된 물건이 갖는 시간이 있음을 자각한다. 이 시점부터 나를 넘어선 시간 이후를 그려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전해진 ‘코리아 빈티지’는 ‘당신 근처'를 살피는 일을 통해 다음으로 갈 것이다.






비하인드 1. 이 글은 신여성에서 진행한 '문화 뜨개하기-문화의 틈새를 재매치하는 글쓰기'를 수강하며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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