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 리모컨 with 노원 (이인현 & 최만호)
“나를 호경이라고 불러요.”
오늘 처음 본 건데, 자신을 애칭으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주변인들에게 설명을 들어보니 원래는 잘 알려주지 않는 이름이라고 그랬는데 말이죠. 아마도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만남의 자리가 편안해서였을까요?
호경을 만난 건 ‘냉장고 안 리모컨’이라는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는 치매 당사자(치매 경험 전문가/초기 치매, 경도인지장애 당사자)와 예술 창작자가 함께 짝을 이뤄 예술 작품을 공동 창작하고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창작자는 경험전문가라고 불리는 치매 당사자가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결과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사 이름처럼 ‘냉장고 안에 리모컨’이 있는 낯선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으로 설명합니다. 상상도 안 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병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갖게 된다면, 막연한 두려움은 낮아질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동료인 인현 님이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발표 공유회에 참석했습니다. 인현 님의 짝꿍은 50세에 뇌출혈로 치매가 온 최만호 경험전문가 입니다. 작업의 제목인 「호경」은 만호 님이 일본에서 불리던 이름입니다. 노원 치매안심센터 선생님들은 이 이름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당일 저희에게 덥석 ‘호경’이라는 이름을 알려주는 것에 센터 선생님은 장난스럽게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사실 센터에서 신뢰를 쌓아주시고 게다가 인현 님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었으니, 덕분에 살가운 소개 인사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호경과 대화하는 건 어렵습니다. 대화 사이의 행간이 길기도 하고요. 어떤 대답은 들어도 무슨 이야기 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호경의 방식으로 말하는 과정에 꽤 집중해야 들리고 이해가 됩니다. 그건 호경의 기억이 끊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오랜 시간 지내온 호경의 언어를 듣는 이가 몰라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말이 언어가 되어도 듣는 이가 준비되지 않아서 닿지 않는 것이죠. 지난 기억의 공백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두 언어 사이를 건너가면서 자주 멈칫합니다. 발표회 자리에서 설명을 이어가다 호경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눈물과 멈춤 사이에는 못다 한 것이 있겠구나 싶습니다. 호경과 마주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유창한 설명이 없어도 삶은 분명 존재한다는 걸요.
인현과 호경, 두 사람은 ‘기억의 짝꿍’이 되어서 지난여름부터 여러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류의 흔적을 조각글 36편으로 엮었습니다. 이 조각글은 순서 없이 읽을 수 있으며, 무작위로 펼쳐보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와 시간이 흩어지고 이어집니다. 각 글의 뒷면에는 호경의 사진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조각 사진과 글을 읽는 경험이 묘했어요. 말의 빈자리가 있는 그대로 두고, 조각난 글과 사진을 읽는 경험은 마치 언어를 건너 손끝으로 기억을 더듬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억의 공백을 함께 바라보는 일로 작업은 완성했습니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의 교류가 저에게 결코 완벽히 재현되거나 전달되지 않겠지만, 드문드문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다시 이 경험이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말문이 턱 막힙니다. 이건 내 경험이고 말과 글은 이어가는데 답답해집니다.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이해한다는 건 뭘까, 또 자신을 소개한다는 건 뭘까, 이 경험을 기억한다는 건 뭘까. 머릿 속에 공이 생겨납니다. 진동하며 존재감을 나타내지만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어요. 이럴 때는 별수 없이 멈춰서서 한참 물어봐야 해요. 나에게, 타인에게 왜 그런 것 같은지, 어떻게 설명하고 싶은지, 어떤 마음인지 살펴봐야 해요. 떨림이 좀 나아질 때까지요. 그래서 「호경」을 같이 읽어볼 자리를 마련했어요.
놀러 오세요!
'호경'은 이인현이 초기 치매 당사자와 만나 작업한 사진과 글입니다. 결과물을 뜻깊게 봐주신 이연화님이 함께 읽는 시간을 제안해주셔서 자리를 마련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시 : 25년 11월 5일(수) 19:30
장소 : 무아레 서점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89길 9, 2층)
참여비 : 5천원
인원 : 최대 8명
� 함께하는 일
1. 프로그램 소개 (10분)
2. 참여자 자기소개 (10분)
3. 무작위로 「호경」의 조각글 낭독하기 (20분)
4. 각자 읽는 시간 & 워크시트 기록 (20분)
5. 질문을 중심으로 대화 (30분)
6. 이인현 작가와 대화 (20분)
7. 마무리 소감 나누기 (10분)
[워크시트]
하나. 자기소개
→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나요?
둘. 참여의 이유
→ 어떤 부분에서 프로그램에 끌렸나요?
→ 아직 만나보지 않은 ‘호경’이라는 글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 것 같나요?
셋. 무작위 낭독 + 글 읽기
→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엇이었나요?
→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장면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넷. 대화 나누기
→ 대화를 나누며 새롭게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 인상 깊었던 타인의 말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다섯. 장면 남기기
→ 오늘의 시간을 대표하는 ‘하나의 단어’를 남겨주세요. 그 단어가 왜 떠올랐는지도 함께 써보세요.
디엠과 댓글로 신청주세요
위의 링크를 따라가면 두 사람의 낭독을 들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