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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May 20. 2024

테레비

1972년에 흑백 TV로 방영된 드라마 '여로'

네 살 막냇동생이 또래인 옆 집 세진이와  한판의 결투를 벌였다.


막냇동생은 옆집 세진이와 같은 69년생 동갑내기였는데 어떤 날은 아주 절친으로 사이좋게 놀다가 또 어떤 날은 철천지 원수로 치고받고 싸웠다.

둘은 어제 각자 엄마와 눈을 맞추고 쳐다보며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 약속하였지만 날이 바뀌면 늘 같은 이유로 같은 장소에서 혈전(?)을 벌였다.


막냇동생과 세진이는 늘 네 살짜리가 싸울만한 이유로 싸웠는데 둘의 싸움은 항상 무승부로 끝났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 둘의 싸움을 말렸을 때 둘의 눈에는 정확히 같은 량의 눈물이, 코에는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다.


막냇동생과 세진이의 결전지(?)는 늘 집 앞 도로였는데 도로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절친 둘이 일순간 헐크로 변해 싸웠다.


동네사람들에 의해 서로에게서 떨어진 막냇동생과 세진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손을 잡은 둘은 조금 전보다 더 서럽고 더 크게 울었다.

둘은 또 어제 하였던 것과 같이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각자의 엄마와 약속하였다.


우리 집과 세진이 집은 동인로터리 밑 달동네에 있었는데 좁고 작은 대문하나를 두고 여섯 집이 살았다.

 

대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숫자만 마흔 명이 넘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시설들은 사람의 수에 비하여 턱없이 모자라고 부족하였는데도 시람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시설의 부족을 슬기롭게 잘 해결해 나갔다.

작은 빨래터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누구 집이, 또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누구 집에 써가며 하나밖에 없던 빨래터를 6개가 있는 듯 쓰며 살았다.


그중에서 여섯 가구, 마흔 명이 사는 곳에 화장실이 딱 두 개가 있었는데 이 두 개마저 얇은 판자하나로 가려진 하나같은 두 개였다.


어쩌다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신 시골 친인척들은 도무지 변소가 불편하다며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버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생모는 이런 화장실이 고마웠을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막냇동생과 세진이는 장난감 하나로 서로의 얼굴을 눈물, 콧물이 얼룩지게 싸울 때는 영락없는 4살 어린아이였지만 각자 엄마손에 연행(?)되어 집으로 들어갈 때는 마치 다 자란 청년과도 같은 짧은 행동을 하였다.


그들이 놀다 싸운 곳은 늘 차들이 다니던 차도 바로 옆 인도였는데 그곳에서 집으로 들어가려면 주인집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외통수 길

돌아갈 다른 길은 없었다.


막냇동생과 친구 세진이는 엄마손에 이끌려 대문까지 올 때는 꼭 나라를 잃은 듯 슬피 울다가도 주인집 앞을 지날 때는 울음을 뚝그쳤다.

아직 설움이 덜 풀린 울음은 고사리 손으로 입을 막고 꺽꺽 작은 소리를 내며 울음을 속으로 삼켰다.


아직 네 살밖에 되지 않았던 이 둘이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주인집 마당을 지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인집 아들과 딸이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바깥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시청에 방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고 주인집 마당을 지나친 날은 주인집 아들과 딸이 그 사실을 주인집 아주머니께 일러바쳤고 그날 저녁 세입자들은 주인아주머니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짧게 자른 머리에 파마를 하고 양팔과 다리는 건장한 남자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어떤 날 아주머니의 패악을 다른 곳 주민이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는데 출동한 경찰의 멱살을 잡고 집밖으로 끌어낸 적도 있는 여걸 중의 여걸이셨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당신의 아들과 딸들에게서 세입자 아이들의 울음 때문에 TV시청이 불편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날은 거의 꼬장주(고쟁이) 바람으로 세입자들의 방문을 두드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열어젖혔다.

"원이(막내동생 이름이 종원이다)애미 니는 대채 아들(애들)교육을 우애 시키노?

느그가 뭔데 우리 아들(애들) 테리비 보는거를 방해하노 이말이다.

셋방사는 주제에 뭐가 잘 나가 주디(입)을 있는대로 벌리가 울고 댕기노 어이?

느그 쫓기나 봐야 정신 차리겠나?"


주인집 아주머니는 생모를 당신의 면전에 세우고 삿대질을 해가며 야단을 쳤고 생모와 세진이 엄마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주머니의 호통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 집에서 쫓겨나면 길거리에 나 앉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음 날 생모와 세진이 엄마는 주인집 빨래를 해주거나 물김치를 담가주어야 했다.


바깥의 소란에 생부는 속옷 바람의 주인집 아주머니와 마주하기 불편해서 방 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어흠 어흠 헛기침을 하셨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돌아가면 누나 둘이 작은 소리로 생모께 말했다.

"엄마

우리도 테레비 한 대 사자."


그런 누나들의 제안에 생모의 대답은 늘 같았다.

"느그 엄마 팔아서 사라."


주인집 마당을 지나 칠 때 세입자들은 하나같이 주인집 안방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주인집은 남자아이 둘과 딸아이 하나를 두었는데 이들 셋 모두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들 모두를 종이나 머슴으로 알고 그렇게 취급하였다.


큰 딸은 자신의 어머니뻘인 세입자 아주머니들에게 잔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주인집 아이들이 방문을 열어놓고 테레비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전부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을 테레비를 보았다.

더 운이 좋은 날은 주인집 아이들이 테레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을 때이다.


손으로 과자를 쩝쩝거리며 테레비를 보는 주인집 아이들 머리 위로 보이는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기루와 같았고 우주에 온 듯 신기하고 행복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집 아이들은 방 안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테레비 속으로 들어가고 세입자 아이들은 방문 앞에서 선 채로 테레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바깥에서 인기척을 느낀 주인집 아이 중 하나가 방문을 닫아 버렸다.

아이들은 빠져 있던 테레비 밖으로 나와야 했다.


마당에 서서 도둑시청(?)을 하던 세입자 이이들은 일순간 얼음처럼 변해 옴짝달싹도 못하고 문 앞에 서서 두껍지 않은 문 하나가 만들어 내는 두 개의 세상이 보여주는 차이를 온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주인집 아이가 방문을 쾅 닫을 때는 늘 테레비에서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눕히기 일보직전

악덕 사또 앞에 나타난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 보이기 일보직전 같은...........


나와 두 동생들은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창문으로 어른거리는 테레비를 보았다.

아니다

문에 달린 유리를 보고 있었다.


주인집 방 유리창은 입체형 유리였는데 닫힌 방문 안으로 보이는 테레비는 어른거리며 형상이 다 망가진 모습을 바깥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바로 밑 동생이 문 앞에 선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극적인 다음 장면을 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닫힌 방문을 어쩔 수 없어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은 울었고 주인집 아이는 또 아주머니께 누구누구가 방 문 앞에서 울었다고 일러바치고 생모는 그날 저녁 주인집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주인집 식구들이 테레비를 가지고 일방적인 횡포(?)만을 일삼은 것은 또 아니었다.

어떤 날은 방문을 활짝 열고 테레비를 보라고 허락을 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날은 아예 방으로 들어와서 보라고 까지 한 적도 있었다.


방으로 초대된 세입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방 안에서 거의 무릎을 꿇은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렇게 3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두 칸 화장실 바로 옆에 살고 있던 병훈이네 집에서 테레비를 한 대샀다.

병훈이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마음씨 좋은 흥부부부 같은 분 들이었다.


그들은 늘 방문을 열어놓고 같은 세입자 아이들이 테레비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분들이 열어놓은 방문 안으로 바로 옆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와 파리가 날아들었다.


병훈이 집 안방과 부엌, 마당에 사람들이 꽉 차는 날이 있었다.

박치기왕 김일선수가 레슬링을 하는 날

주말 저녁에 방영하는 수사반장, 웃으면 복이 와요를 하는 날

일일드라마 여로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서로 바짝 붙어 앉아 어떤 장면에서는 어깨를 부딪히고 어떤 장면에서는 서로의 등을 때리며 포복절도하며 또 어떤 때에는 서로의 가슴에 기대어 울기도 하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서 살다가 방학 때 잠시 생모집으로 놀러 온 나는 그렇게라도 테레비를 볼 수 있음을 천운으로 알고 지냈다가 다시 돌아간 시골에서 아아들에게 김일 선수를 이야기하였다.

"느그 김일선수 아나?

잘 모르제?

내가 대구에서 테레비로 봤는데 아있나.

머리로 헤띵(박치기)을 해뿌니까 양푼이 만한 쇳덩어리가 박살이 나뿌더라."


내 말의 허풍만큼 시골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제 밤

TV를 켜 놓고 잠이 들었다가 밤늦게 혼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한참 동안 끄지 못하고 내가 어렸을 적 잠시 살았던 달동네 테레비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배우들 얼굴에 있는 모공까지 훤히 보이는 TV를 보면서 그래도 그때 테레비가 더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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