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는 모두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의 첫 번째 관현악을 동반한 대형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클라라를 향한 청년 브람스의 강렬하고도 뜨거운 마음과 애절한 심정을 담아낸 곡이라면, 브람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 된 2번은 어느듯 장년에 다다른 그의 사랑에 대한 추억과 동경, 그리고 회한의 깊은 내면적 정서가 녹아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브람스의 이 두 가지 피아노 협주곡의 느린 악장들은 작곡가의 가장 은밀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선, 피아노 협주곡 1번(Op.15)의 2악장은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당신의 초상화’라고 고백한 악장입니다. 브람스가 1번 협주곡의 2악장의 악보에 기재한 라틴어 미사 기도문 “축복있으라(Benedictus)!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문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남편 슈만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클라라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로 해석하기도 한다는 점은 아래 글에서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 안단테 악장에 담긴 정서를 구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근거로는 충분하지 않겠지요.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단초가 더 주어져 있는 것일까요?
제가 다른 글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곡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브람스의 경우도 드물게나마 그의 작품에 담긴 정서에 대한 더 구체적인 단서들을 그의 가곡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3악장이 그 이례적인 경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안단테 악장에는 브람스가 자신의 가곡에 차용한 여러 선율들이 등장합니다.
이하에서는 최근 (이 곡 연주로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캉토로프가 쿠렌치스와 협연한 아래 연주를 기준으로 하여 이 안단테에 담긴 브람스의 내면 세계와 짙게 드리워진 클라라의 그림자의 실체를 브람스의 관련 가곡들과 함께 추적해보고자 합니다(아래 3악장의 내용에 관한 설명에 표기된 시간은 이 유튜브 실황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3악장은 크게 안단테 - 피우 아다지오 - 안단테 - 피우아다지오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하에서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안단테(Andante)
우선, 브람스는 이 안단테 악장을 시작하는 첼로의 선율(위의 캉토로프 연주의 유튜브 영상 39:49, 이하 표시 시간은 이 유튜브 실황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을 나중에 그의 가곡 Immer leiser wird mein Schlummer(Op.105, No.2)에서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아래 가곡 참조).
꿈을 꾸는 듯한 위의 가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묘사하듯 조용히(mp) 레가토로 노래되는 몽환적인 첼로의 선율은 곧 전체 오케스트라로 조용히 번져나갑니다(40:53).
그 후 곧 첼로와 오보에가 이 주제 선율을 이어 유니슨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며(41:42)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듯 우아하게 노래를 주고 받습니다.
이 때, 피아노가 아주 조심스럽게(rit.) 위를 향하여 부상하며 등장한 후(42:46) 주제 선율의 가락을 변주하며 마음을 조용히 토로하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감정이 고조되면서 이번에는 오케스트라가 주제 선율을 (나는 깨어나 비통하게 웁니다라는 위의 가곡의 가사와도 같이) 아주 비통한 심정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fp에 의한 트레몰로로 격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배경으로 피아노는 꿈틀거리는 트릴과 함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 후 다시 분위기가 잦아드는 듯하다가 다시 오케스트라의 탄식에 피아노가 요동치며 반응하기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피아노가 아래로 깊이 침잠하고(46:35) 이 때 다시 현악기가 조용히 쓸쓸한 주제 가락을 연주하는 그 위로 피아노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와 같이) 위를 향하여 다시 부상하지만 곡은 전혀 다른 세계로 접어 들듯이 분위기가 바뀌며 Piu Adagio의 국면으로 넘어갑니다.
피우 아다지오(Piu Adagio)
이 Piu Adagio에서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여린(ppp) 소리로 숨죽여 연주되는 두 대의 클라리넷 및 이어지는 현악기의 울림을 배경으로 피아노가 바닥을 모를 심연으로 침잠하여 매우 우아하고도(dolcissimo) 더욱 깊은 감정으로(molto espressivo) 노래를 합니다(47:20).
꿈과 죽음의 경계에서 깊이 사념하는 느낌이 드는 이 Piu Adagio의 피아노 솔로의 베이스 음형은 브람스의 가곡 O wüsst’ ich doch den Weg zurück(Op.63, no.8)의 반주 음형과 흡사하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아래 가곡 참조).
이 Piu Adagio의 정서가 단순한 꿈과 회상에 머무르지 않고 죽음과 하늘의 세계의 경계에까지 나아간다는 점은 그 음악적 분위기가 브람스가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아래의 또 다른 가곡 Todessehnen(죽음에 대한 갈망: Op. 86, No.6)와 흡사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가곡의 내용들과 이를 담아내기 위하여 사용한 브람스의 음악적 표현들은 브람스가 이 3악장의 Piu Adagio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단테(Andante)
이처럼 죽음과 천상의 세계에 닿은 듯한 깊은 내면의 심정이 간절하게 토로된 이후 곡은 다시 첼로 솔로에 의해 처음의 안단테로 돌아옵니다(49:15). 그리고 처음처럼 첼로가 주도하는 쓸쓸한 가락이 한 동안 이어지다가 피아노가 처음에서와 같이 아래에서 서서히 부상하며 등장하여 오케스트라와 교감을 나누는데, 이번에는 피아노에 트릴이 간간히 섞이면서 간절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으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려는 듯이 노래됩니다.
피우 아다지오(Piu Adagio)
그러나 이도 잠깐이고 다시 처음처럼 피아노가 밑바닥에서 위로 다시 부상하는데(52:14), 이제는 안단테가 아니라 피우 아다지오의 느린 템포로 마치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긴 트릴과 함께 아쉬움을 간절히 표현하면서 곡은 마무리됩니다.
템포의 문제
특이하게도 브람스가 이 안단테 악장에 지시한 템포는 메트로놈 표기로 [4분음표=84]입니다. 이는 다수의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연주에 비해 그 템포가 상당히 빠릅니다(연주의 내용면은 다소 미흡한 점이 있어 보이지만 우선 작곡가가 지정한 대략의 빠르기를 가늠하기 위하여 아래 Mrazek 연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템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피아노 협주곡의 다른 악장들에 대한 브람스의 템포 지시들을 함께 살펴보면, 1악장은 Allegro non tropo [4분음표=92], 2악장은 Allegro appassionato [점2분음표=76], 4악장은 Allegro grazioso [4분음표=104] 등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주를 보면 대부분의 지휘자들에 의해 작곡가가 악보에 지정한 템포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작곡가의 속도에 근접한 빠른 연주로는 아래 호로비츠나 루빈슈타인 등의 연주를 꼽을 수 있고, 근자에는 소콜로프나 임현정 등도 제법 빠른 템포로 이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박하우스나 길렐스 등 과거의 거장들은 (협연한 지휘자의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느린 템포로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2악장이나 4악장과는 달리 유독 1악장과 3악장은 작곡가의 템포 지시에서 크게 벗어나 매우 느리게 연주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1악장의 경우 단번에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그 유명한 도입부의 호른의 경우 (아마도 여리게 연주하라는 작곡가의 지시를 템포마저 늘이라는 지시로 받아들인 결과이거나 울림에 좀 더 고즈넉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알레그로의 느낌을 가지고 연주되는 경우보다는 아주 느리게 안단테로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입부를 느리게 연주하다가도 도중에 템포를 더 빠르게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 역시 특이합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피아니스트라도 요훔의 경우와 라이너의 경우 아래와 같이 템포의 처리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1악장에서는 작곡가의 템포 지시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 연주에서도 이상하게도 3악장만큼은 브람스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악보에 기재된 것보다 훨씬 더 느리게 연주하고 만다는 점 역시 특이한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렌보임과 협연한 첼리비다케의 경우는 워낙 느린 템포로 유명하니 그렇다고 치더라도(실제로 첼리비다케의 연주는 전체 악장의 템포가 고르게 느린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악장간의 상대적 템포 비율은 브람스의 지시에 비교적 가까운 예라 하겠습니다), 박하우스와 협연한 뵘 또는 길렐스와 협연한 요훔 등은 다른 악장에 비해 3악장 안단테는 유독 더 느리게 연주합니다. 위에서 느끼셨겠지만 캉토로프와 협연한 쿠렌치스 역시 다른 악장과 달리 이 3악장에서는 오히려 첼리비다케보다도 더 느린 템포를 적용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쿠렌치스가 베토벤 교향곡 연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작곡가의 템포 지시를 가급적 준수하는 방향으로 연주하리가 기대하였는데, 그의 이번 연주는 저의 그러한 예상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갔습니다.
쿠렌치스가 이처럼 유독 3악장을 (느리기로 소문난) 첼리비다케보다도 더 느리게 연주한 이유는 그가 피아노 협주곡 2번 공연에 앞서 진행한 공개 리허설(아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리허설 중 내내 이 3악장이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라고 하면서, 곡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몽환적인 느낌을 담으려고 연주자들에게 템포를 늦출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또 첼로나 클라리넷 등 악기의 뒤나믹스도 극한적으로 제한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위의 유튜브 리허설 영상은 (취향이나 해석의 호불호를 떠나) 쿠렌치스가 음악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오케스트라를 통해 섬세하게 구현시켜나가는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매우 놀라운 음향과 함께 담겨 있으므로, 이 곡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꼭 한 번 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 리허설 영상을 보면 그렇게 느린 템포에 의한 안단테 연주도 참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템포를 통해 곡을 접할 경우 빠르게 연주되었을 때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곡의 디테일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음악적 공간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고, 저 역시 과거 명상적인 템포에 의한 첼리비다케의 피우 아다지오 부분 연주를 그런 관점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들었던 1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템포는 작곡가가 지정한 템포와는 거리가 멀고 더구나 이 3악장만 유독 더 느리게 연주하는 것은 작곡가가 염두에 둔 악장간 상대적 템포의 균형을 허무는 것이라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듭니다.
물론 위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이 안단테 악장은 꿈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랑의 동경과 회한을 노래하는 곡이라는 점에서 많은 애호가들이 느린 연주를 선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연주가들이 안단테가 아다지오처럼 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도 작곡가가 지시한 템포에까지는 이르지 않고 중간에서 절충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안단테 악장에 담긴 정서가 매우 몽환적이고 사색적이라 할지라도 작곡가 스스로가 지시한 템포를, 특히 쿠렌치스의 경우와 같이 다른 악장과의 비례적 템포의 상관관계까지 무시하면서까지 지나치게 늘이는 것은 아무래도 다소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안단테를 아다지오처럼 연주해버릴 경우 브람스가 3악장 안단테에 정밀하게 담은 브람스 특유의 헤미올라 리듬이 잘 살려지지 않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전체 악장 사이의 밸런스는 물론 (3악장의 내부에서도) 안단테에 이어지는 더욱 느린 피우 아다지오의 템포와의 균형 문제도 뒤따르게 됩니다.
저는 사실 쿠렌치스가 이번에 작곡가의 템포 지시를 가급적 준수하면서도 그 특유의 섬세한 뒤나믹스나 아티큘레이션 처리를 통해 이 3악장 안단테에 담긴 몽환적이고도 사색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주기를 내심 기대하였는데, 이번에 쿠렌치스는 다른 방향의 극단으로 나아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작곡가의 템포 지시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오히려 작곡가의 템포 지시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곡에 담긴 위와 같은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그런 연주도 앞으로 좀 나와주어서 우리 애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이 명작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