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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Jun 05. 2022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비인 심포니 내한 공연 후기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돌을 기념하여 비인 심포니가 2022년 6월 1일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 공연은 원래 비인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과 함께 방한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휘자 에스트라다의 갑작스런 사임, 피아니스트의 건강 악화 등으로 지휘자는 필립 조르당,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마지막에는 지휘자 필립 조르당이 코로나 확진이 되는 바람에 대타로 장한나가 긴급 투입이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연을 앞두고 '이제는 대타 오케스트라가 투입될 타이밍'이라고 하는 푸념이 애호가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비인 심포니와 독주자가 협연할 곡도 바뀌었습니다. 즉 원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으나 협연자가 브론프만에서 길 샤함으로 바뀌면서 브람스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의 전개가 내심 반가웠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길 샤함이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음반을 듣고 그의 이 곡에 대한 그의 접근방법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었거든요.





종래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방식은 특히 1악장의 템포와 관련하여 크게 둘로 나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멘델스존의 지휘로 협연하였던 요하임의 제자 후베르만이나 야샤 하이페츠와 같이 1악장의 분위기를 빠른 템포로 생동감 있고 밝게 가져가는 연주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예후디 메뉴인이나 오이스트라흐와 같이 다소 느긋한 템포로 매우 장중하고 엄숙하게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의 후배 바이올린 주자의 경우 대체로 후자의 접근 방법을 택하여 왔는데, 최근에는 시대악기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전자 혹은 그 보다 더 빠른 템포를 택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베라 베스의 연주는 1악장 연주 시간대가 19분대로 채 20분이 되지 않는데, (선택된 카덴자의 길이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종래 25~6분을 달하는 장중한 연주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Anton Steck

https://youtu.be/0CHCQEHK5oE




Vera Beths

https://youtu.be/SYYHDwauTiY




사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가 남긴 이 1악장의 메트로놈 표기는 4분음표=120으로, 그대로 연주할 때 20분이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의 베라 베스의 연주가 체르니의 메트로놈 지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템포는 곡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역시 베토벤에 씌워진 악성(음악의 성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의 작품을 너무 철학적이고 심오하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에 따라 불필요할 정도로 느리게 연주되어 온 곡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베토벤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를 두 곡이나 작곡하기도 하였지만, 특히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가 불멸의 연인의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인 요제피네와의 결혼이라는 희망의 불을 지피고 있을 당시에 만들어진 곡으로 상당히 로맨틱한 정서가 담긴 곡입니다.



따라서 이 곡을 무겁고 근엄하게만 연주하는 종래의 관행에 좀 불만이 있었는데, 길 샤함의 경우는 최근 발매된 아래 연주처럼 시대악기 연주자가 아니면서도 이 협주곡의 1악장을 하이페츠 등의 선배들과 같이 빠르고 활기차게 연주하여 참 흥미로웠습니다.



Gil Shaham

https://youtu.be/TLvV7Iwx6tU



그래서 언젠가 그의 실연으로 이 곡을 한 번 들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던 차였는데, 마침 이번에 우여곡절 끝에 비인 심포니의 내한 연주의 협연자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에 내심 큰 기대를 가지고 연주회장을 찾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단체로 한꺼번에 무대로 나오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달리 외국에서는 대체로 공연 시작전에 단원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따로 무대에 나와 연습도 하고 들락날락 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날 비인 심포니의 단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점점 단원들이 하나 둘씩 나와 무대가 차자 드디어 장한나와 길 샤함이 등장하여 자리를 잡는데, 특이하게도 길 샤함은 (통상 바이올린 협연자들이 하는 것처럼) 무대 전면에 따로 나서지 않고 지휘자 장한나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더군요.



첫 팀파니의 4번의 울림! 저는 이 울림이 (마치 발트슈타인 소나타의 도입부처럼) 마치 어떤 미지의 것을 향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닮았다고 생각해왔는데, 아주 가볍고 따스하게 울리는 이 첫울림부터 아! 장한나가 길 샤함의 템포와 연주 스타일에 철저히 서포트를 하려고 작심하였구나 하는 감이 오더군요.



예상대로 무겁고 근엄한 철학 교수가 아닌 사랑에 빠진 사람의 기대와 설레임이 느껴지는 템포로 멋지게 곡이 시작되였고, 다소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 내내 길 샤함은 장한나의 옆에서 마치 연인처럼 흐뭇한 미소로 응시하며 곡에 서서히 몰입하여 들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따스하고 아릅답던지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있는) 브람스 협주곡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뻘쭘히 무대에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를 거절한 일화로 유명한데, 길 샤함이 지휘자 장한나 옆에 다정히 섰던 것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장한나의 지휘에 의한 오케스트라의 서주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길 샤함은 독주의 순간이 다가오자 역시 시종 극도로 섬세한 보우잉으로 자신만만하게 자기만의 음악을 차분하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아마도 지휘자가 머리 희끗한 노대가였다면 주류적 해석과는 다소 다른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조금은 굽혀야 하는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날 장한나와는 마치 서로 이중주를 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호흡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근자에 발매된 길 샤함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에서는 길 샤함과 협연한 Jacobsen 및 그가 이끄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The Knight의 기량과 음색이 다소간 아쉬웠는데, 이 날 비인 심포니는 한 단계 높은 기량과 순도 높은 음향으로 길 샤함의 해석을 멋지게 뒷받침하였습니다.



더구나 (오직 실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중요한 음악적 대목에서의 발을 구르는 듯한 지휘자의 과감한 몸 동작과 거친 호흡까지 마치 하나의 음악처럼 생생히 객석에 전달되었는데, 지휘자 장한나와 길 샤함이 마치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이라도 된 듯 이들에 의해 순간순간 빚어지는 황홀한 음악적 교감의 순간들에는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더군요.



요컨대, 이번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은 (i) 작곡가의 의표를 찌르는 정확한 음악적 해석과 이를 구현하는 노련한 솔리스트의 완벽한 기량, (ii)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정확히 파악하여 독주자의 음악 세계를 완벽히 서포트 하는 젊은 지휘자의 감각과 열정, 그리고 (iii) 본토 비엔나의 향취를 그윽하게 담은 순도 높은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안정감 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흔치 않은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앙콜곡

https://youtu.be/sewD65RGkjM



아래에서는 (이 날의 공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지만 음반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길 샤함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나머지 악장 연주 및 제가 즐겨 듣는 두 가지 시대 악기 연주의 나머지 악장 유튜브 음원 등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악장 (길 샤함) https://youtu.be/4VRxzMscdZQ



3악장 (길 샤함) https://youtu.be/PRdED7Zi4i0





2악장 (베라 베스) https://youtu.be/Rp1YmnvILEI



3악장 (베라 베스) https://youtu.be/EVy4Rxo90qA





2악장(안톤 슈텍) https://youtu.be/3fK2OydMqAc



3악장 (안톤 슈텍) https://youtu.be/ymYAA_UL-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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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Bernstein이 언젠가 말했어요. '왜 우리는 베토벤이 항상 정확하게 올바른 음표만 넣었을거라고 생각할까?'" 그가 말합니다. "그 이유는 베토벤이 분명히 완벽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같아요. 전 항상 그의 천재성에 깊은 감명을 받곤하거든요."



베토벤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 61



I.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베토벤은 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엄청난 드라마가 이 악장에서 펼쳐져요. 팀파니가 갑작스럽게 음표 4개를 연주하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모든 악기의 소리가 커지죠. 여기에는 장조와 단조가 혼합되어 있어요. 과연 어두운 느낌의 D단조가 밝은느낌의 D장조를 이길 수 있을까요? 중반쯤 나오는 패시지를 주의 깊게 들어보세요. G단조의 아름다운 부분이 나오는데, 아마도 베토벤은 이 음악의 많은 신비로움을 여기서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II. 라르게토



"2악장은 정말 놀랍습니다. 시작은 바이올린 솔로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아주 단순한 느낌의 변주로 나타나요. 중반쯤되면 오케스트라가 '포르테'로 선언하듯이 웅장하게 등장하고, 뒤이어 바이올린이 '기다려봐. 나도 할 말이 있어'라고 말하듯 등장합니다. 이 선율이 등장할 때 오케스트라는 거의 안 나오죠. 결국 악장이 끝나갈 때 바이올린 솔로 아래 제1, 2 바이올린만 반주를 하면서 끝이나요. 제 생각에 모든 베토벤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말랑말랑한 끝맺음이 아닌가 싶어요."



III. 론도. 알레그로



"마지막 악장은 그저 행복합니다. 25분동안 2박자 계통으로 연주하다가, 3박자 계통의 D장조로바뀌죠. D장조는 베토벤 '9번교향곡'의 '환희의 송가'와 같은 조성입니다. '론도'는 장조에서 단조로 넘어가다가 다시 장조로 돌아와요. 마지막엔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끝나죠."



- Gil Shaham (from APPLE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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