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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Feb 25. 2022

스톡홀름에서 만난 바흐

마태수난곡

"어린 소년 시절 이따금, 이를테면 수난의 금요일 같은 때, 아버지가 수난 이야기를 낭독해준 다음이면 나는 마음 깊이 감동받아 이 고통스럽게 아름답고 창백하고 유령 같은, 그러면서도 섬뜩하게 생생한 세계, 저 겟세마네와 골고다 언덕에 살았다. 그리고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을 때면, 그 온갖 신비로운 전율을 간직한 비밀스러운 세계의 어둡고도 강렬한 수난의 광채가 나를 가득 채우곤 했다. 오늘날에도 나는 이 <마태수난곡>과 <Actus tragicus>를 모든 시와 예술적 표현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가끔씩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음악을 듣다보면 오래 전 아직 바람에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사순절 기간에 저 북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추억이 기억의 수면 위로 슬며시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 마음이 급하였던 것일까요? 숨 돌릴 틈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간 며칠간의 출장 일정으로 인한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마지막 날 아침, 몽롱한 몸을 이끌고 스톡홀름의 고풍스런 구시가지 감라스탄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이미 시간은 아침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시가지는 마치 전쟁을 피해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듯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광장을 지키는 군인 두 사람 이외에 도무지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겨울 끝자락에 남은 북구의 찬바람만 이리저리 뒹구는 좁은 골목길을 배회하던 차에 허름한 벽보에 쓰인 두 글자가 마치 화살처럼 눈에 확 들어와 꽂혔습니다.

“Matteuspassionen”

“Nils-Erik Sparf"

이렇게 스톡홀름에서 바흐와의 우연한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닐스-에릭 스파르프(Nils-Erik Sparf)


사실 스톡홀름에 도착하면서부터 반드시 스웨덴 교회의 예배당에서 울리는 합창만큼은 들어보고야 말리라고 굳게 마음먹은 터였습니다. 그랬기에 평소 좋아하던 스웨덴 시대악기 연주단체인 드로트닝홀름 바로크 앙상블(Drottningholm Baroque Ensemble)이 구스타프 바사 교회에서 일요일 오후 4시에 바흐의 《마니피카트(Magnificat)》를 연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뜻밖에 찾아온 행운에 쾌재를 불렀습니다. 아래와 같이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던 그들의 분위기 넘치는 합주 장면을 속으로 그리며 꿈에 부풀어 있었지요.

https://youtu.be/f2Y4YWmji64


특히 드로트닝홀름 바로크 앙상블의 제1바이올린을 담당하는 닐스-에릭 스파르프(앙상블에서 흰머리의 덩치 큰 아저씨)의 연주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더욱 컸습니다. 스파르프가 이 앙상블을 이끌고 연주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연주(BIS CD-506)나 비발디의 《사계》 연주(BIS CD-275) 등은 북구의 찬바람만큼이나 청량한 최고의 명연들이지요.

https://youtu.be/Xee0gtw0g8k


https://youtu.be/0k_fRvMOZEU


그런데 오후 4시에 구스타프 바사 교회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스파르프의 이름을 감라스탄의 벽보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찬찬히 포스터를 읽어보니 그 날 스파르프는 드로트닝홀름 바로크 앙상블과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악장으로 있는 웁살라 챔버 오케스트라(Uppsala Kammarorkester)를 이끌고 스토르키르칸 교회당에서 오후 3시에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연주공간


감라스탄의 스토르키르칸 교회당은 스웨덴의 공주가 수년 전에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https://youtu.be/JNx7iL9wi5I



https://youtu.be/eFx3H8TKPtU



https://youtu.be/JLaz2siWaF4



바로 그 스토르키르칸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를, 그것도 스파르프가 리드하는 오케스트라와 성야곱(St. Jacobs) 실내합창단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니...

그날 오후 4시에 관람하려고 했던 드로트닝홀름 바로크 앙상블의 《마니피카트》을 주저 없이 포기하고 《마태수난곡》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하여 부랴부랴 스토르키르칸 교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늦게 찾아간 까닭인지 좋은 자리는 이미 매진되어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남아 있던 좀 더 저렴한 가격의 티켓을 한 장 구입하였습니다. 티켓을 구할 때 나름 교회당 앞쪽, 그러니까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선택하였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싸서 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무대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무대 중심에서 오른편으로 비켜 배치된 자리라서 교회당 기둥에 가려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은 속속 예배에 참석하듯 교회당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는데, 거의 시작 무렵에 무대 앞쪽을 보니 빈자리가 가운데에 하나 보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자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자리로 안내하는 할머니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서 무대 바로 앞의 빈자리로 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조금 고민하던 그 할머니가 따라오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차지한 자리는 무대 바로 앞! 손을 내밀면 스파르프가 바로 잡힐 듯한 최고의 자리였습니다(바로 위의 스토르키르칸 공연 동영상에 나오는 맨 앞자리 바로 거기입니다^^).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찾아오는구나 하고 감격에 잠기기도 전에 드디어 《마태수난곡》의 시작을 알리는 대합창이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합창단


스웨덴의 합창음악은 깊으면서도 맑고, 또 투명하면서도 따뜻한 매우 독특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데 평소 녹음기술이 출중한 스웨덴의 음반사들의 음반(Proprius, BIS, Opus3, Caprice 등)을 통해 스웨덴 합창단의 수준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https://youtu.be/7530YQeEtEk



그런데 예수의 어깨에 놓인 십자가처럼 묵직하게 끌리듯 움직이며 연주되는 더블베이스 위로 합창단이 “오라 너 딸들아, 함께 슬퍼하자(Kommt ihr Töchter, helft mir klagen)”라고 외치는 첫 순간부터 오늘의 연주가 범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바로 들 정도로 스웨덴의 합창단은 각별하였습니다.

예컨대, 서곡 합창에서 바흐는 “보라(Seht)“는 단어를 반복으로 사용하면서 계속 무죄한 예수의 인내와 십자가에 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다가, 중간에 “보라(Seht)-어디를(Wohin)-우리의 죄를(auf usere Schuld)”이라고 외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처음으로 사람의 죄악에 빛을 비추지요. 여기서 마치 순결한 어린 양 예수와 죄악으로 물든 우리 인간을 극명히 대조라도 시키듯 곡의 분위기와 리듬이 돌변하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래 유튜브 동영상 6:23 이하)

https://youtu.be/A4vA3XF3aLc?t=396


그런데 성야곱 실내합창단은 이 부분에 이르러 특히 ”어디를(Wohin)"이라는 단어의 hin 부분을 짧게 끊어 처리했는데, 교회당의 높은 천장으로 반사되어 흩어지는 그 날카로운 합창단의 외침은 합창을 반주하는 바이올린 등의 섬세한 프레이징과 함께 다른 연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참으로 미묘하고도 독특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롯유다의 배반에 분노하는 합창은 정말 지옥의 불길처럼 뜨겁게 타올랐으며, 지옥의 문을 열라고 절규하는 외침이 뿜어 나오기 직전의 짧은 휴지(General Pause)때 교회당에 메아리쳐 남은 잔향은 때론 음악보다는 쉼표나 여백의 공간이 더욱 강열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했습니다. (아래 유튜브 동영상 0:37)

https://youtu.be/6K7-cl7Ynf0?t=39



https://youtu.be/wV3JZ6ycHVc



예수의 십자가 사망 이후 자연의 반응을 보며 회중들이 “진실로, 진실로 이는 하나님 아들이었도다(Wahrlich, dieser ist Gottes Sohn gewesen)”라고 하는 짧은 합창에서는 정말 신적인 권위에 걸맞는 무게로 불렀고, 또 바라바와 예수가운데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군중들이 외치는 외마디의 “바라바”라는 외침은 온 교회당을 집어 삼킬 듯 강열하고 매정하였습니다. (아래 동영상 1:37:27 이하)

https://youtu.be/QrrdWYh9Hwc?t=5846



합창단이 부르는 코랄의 경우 균형 면에서 알토의 그림자 짙은 음영이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교회당이라고 하는 연주 공간에서의 울림인지라 오히려 가볍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깊으면서도 맑고, 아울러 따스하고 부드럽기까지 한 스웨덴 합창의 독특한 음색을 처음부터 끝까지 음미할 수 있는 열락의 시간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이날 공연은 성야곱 실내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그라덴(Gary Graden)이라는 지휘자의 지휘로 진행이 되었지만, 전체 곡의 해석에 관하여는 악장인 스파르프의 스타일에 크게 반영된 연주로 보였습니다. 특히 지휘자가 연주 내내 악장 스파르프를 계속 응시하면서 그에게 호흡을 맞추어 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주의 곳곳에서 기존의 다른 음반이나 연주에서 찾기 힘든, 스파르프 식의 참신함과 즉흥성이 두드러졌습니다. 예를 들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둔 예수의 번민에 바로 이어지는 테너의 서창 〈오! 고통(O! Schmerz)〉을 반주하는 오케스트라의 리듬은 같이 연주되는 류트의 그것과 어울려 탄력 있게 뛰며 마치 고통으로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을 참으로 절묘하게 묘사하였습니다.

https://youtu.be/uY7Es_rM9Ag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의 잔을 피하고 싶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는 예수의 기도(아래 유튜브 동영상 42:59)에 이어지는 베이스의 서창을 반주하는 오케스트라의 하향하는 음계를 스파르프가 이끄는 웁살라 챔버 오케스트라는 매우 짧게 스타카토로 강렬하게 연주하였는데 이 역시 지금까지 음반이나 실연으로 들어온 다른 많은 연주들이 너무 밋밋하게 연주하여 불만스러웠던 부분을 완전히 해소시키는 탁월한 해석이었습니다. (아래 같은 동영상 43:29)

https://youtu.be/QrrdWYh9Hwc?t=2611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등 많은 바흐 연구가들은 이 하향음계를 복종하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음형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고 이러한 내용이 연주의 전통에도 은연중에 반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하향음형이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핏방울 같은 떨어진 땀방울”을 바흐가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마태복음이 아닌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너무 힘을 써 기도를 하니 땀이 피처럼 쏟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따라서 이 하향음계는 핏방울처럼 강렬하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생각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날의 연주에서는 정말로 핏방울이 튀는 듯 했습니다.

그밖에 베드로의 세 번에 걸친 배신의 부인 이후 이어지는 아름다운 아리아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를 반주하는 스파르프의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는 이 연주자가 장기로 하는 자연스런 즉흥연주가 매우 돋보였습니다.

https://youtu.be/BBeXF_lnj_M



그리고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은 은전을 성소에 던지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는 부분에 이어지는 베이스의 아리아 〈예수를 돌려다오(Gebt mir meinen Jesum wieder)〉를 반주하는 또 다른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 주자인 헬그렌(Klara Hellgren)에 의하여 연주되었는데, 은화가 성소에서 쏟아지면서 나뒹구는 모습이 적절한 인템포의 연주와 함께 한편의 성화처럼 리얼하게 묘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XagCBWA_60c



또한, 예수를 발가벗기고 조롱하는 장면에 이어지는 베이스의 아리아 〈오라, 달콤한 십자가여(Komm, süßes Kreuz)〉를 반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 역시 절창이었는데, 특히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 듯, 참으로 힘겨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즐겁게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율배반적인 간절한 기도가 연주에 스며있었습니다.

https://youtu.be/HMdDHqfjCTg



관악기 주자들도 정말 탁월하였는데, 빌라도가 도대체 이 사람 예수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 하고 묻는 장면에 바로 끼어들어 무죄한 예수를 변론한 후 통곡하며 부르는 소프라노의 아리아 〈사랑으로(Aus liebe)〉를 마치 하늘 위를 배회하는 천사처럼 반주하는 플루트 주자의 곡에 몰입된 몸동작 자체가 하나의 춤사위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그날 연주에서는 이렇게 독주자들이 반주를 할 때, 다감바와 같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일어서서 연주하였는데 참 이채롭더군요.

https://youtu.be/HkFAh6aE2QU



https://youtu.be/37oXhfxNNl0




복음사가


티만데르(Conny Thimander)라는 복음사가야말로 이날 연주의 꽃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말 탁월하였습니다. 좀 과장을 하자면, 절제하며 내면으로 끓어오르듯 기도하는 목소리의 전설적 복음사가 회플리거(Ernst Haefliger), 그와 정반대로 마치 오페라처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 슈라이어(Peter, Schreier), 이지적인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균형 감각이 탁월한 프레가르디엔(Christoph Pregardien) 등 당대의 모든 복음사가들의 장점을 모두 합한 듯 했습니다. 때로는 피아니시모로, 또 때로는 포효하는 격렬한 음으로, 한 손으로는 악보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적절한 제스처를 보이며, 기록된 성서의 내용을 마치 한편의 모노드라마처럼 눈앞에서 생생하게 풀어내는 신묘한 가창에 거의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마태수난곡》에서 복음사가의 역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지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중간에 위치하여 서창을 낭독하면서 때로는 뼈가 녹을 정도로 통한을 쏟아내고 때로는 제자들과 군중들의 배신에 치를 떠는가 하면 거의 연기하듯 가사에 몰입하며 심지어 낭송 후 가끔씩 합창단을 응시하는 독특한 제스처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참신하였는데, 일반 무대였더라면 좀 튀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으나, 예배당에서는 오히려 예배당 특유의 일견 무겁게 누르는 듯한 분위기를 일신하는 큰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솔리스트


이날 연주에서 더욱 놀란 점은 솔리스트들의 고른 실력이었습니다. 맑고 청아한 소프라노, 음영이 풍부하고 처절하리만큼 표정이 풍부한 알토, 간절하고도 호소력이 있는 테너, 충분히 무거우면서도 민첩하기까지 한 베이스가 수놓는 아리아는 정말 세계 최고의 음반에 등장하는 유명한 가수들 못지않았습니다. 심지어 베드로 등 다른 등장인물들을 노래한 합창단원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정말 성악에 관한 한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저력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역할을 맡은 브로르손(Brorson)이라는 가수는 다소간 깊이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조차도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체 연주의 맥락에 동화되어 녹아들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부르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외침에 대하여 고 함석헌 선생은 예수가 (많은 순교자들이 오히려 겁 없이 달게 받은) 죽음 앞에 겁을 내고 고통스러워 한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의 시편의 구절을 암송하는 것이고, 그 시편 구절의 끝은 탄식이 아니라 승리와 구원의 메시지로 마무리된다고 갈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날 표현된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육신의 고통의 가장 극한을 맛보고 절규하는 예수의 나약한 인간적인 모습이었고 따라서 그 목소리와 노래는 영웅적이고 초자연적인 깊이감은 결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예수의 시체를 돌려받은 다음에 베이스가 나지막히 “오 아름다운 순간, 오 저녁시간(O Schoene Zeit, O Abendstunde)”을 읊조리며 비둘기가 평화를 물고 왔다고 고요한 저녁 시간을 찬양할 때 실제로 스토르키르칸 교회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사이로 정말 석양이 잦아들었습니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찾아든 황혼의 황홀함이란 현장에서 느낀 사람만이 알 듯합니다. (아래 유튜브 동영상 0:40 이하)

https://youtu.be/yYHLLliQl6s



그 후 마치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에서 아이들이 하나씩 노래로 인사하며 잠자리에 들듯 4명의 솔리스트들이 조용히 예수에게 밤 인사를(Gute nacht) 하였습니다.

https://youtu.be/HC3qR_PEOCE



예수에 대한 작별의 인사가 끝나자 드디어 이 위대한 인류 유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합창곡 〈눈물로써 주를 지키고 슬퍼하며 기도하오니 주여 편히 편히 쉬소서(Wir setzen uns mit Tränen nieder)〉가 성당에 장엄한 통곡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https://youtu.be/iTN_hOuqLqI



https://youtu.be/w7X41SUO5-o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절제하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최종 피날레에 이르러 커다란 rallentando(점점 느리게)로 곡을 마치자 순간 깊은 정적이 교회당을 뒤덮었습니다. 그렇게 정적이 얼마간 이어졌을까요, 지휘자가 팔을 내리자 조용히 교회당 저 끝에서부터 조금씩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당을 차지한 수백 명 정도의 청중들은 브라보를 외치지도 격렬한 환호성을 바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악보를 보면서 나누어준 프로그램 북의 가사 해설을 참조하면서 연주를 감상하고서는 또 그저 담담한 박수로 연주자들을 격려할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연주회에 온 것이라기보다는 매일 하듯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러 온 것일 뿐인 듯하였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 아니 어떤 명반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을 이렇듯 당연한 듯 마치 교회의 성가대가 찬양을 하듯 담담히 연주하고 또 감상하는 스웨덴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을 내심 되뇌며 감정을 추스렸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악기를 정리하는 악장 스파르프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멀리 한국에서 왔는데 정말 좋은 연주에 감명 받았고 또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자 마치 큰 형처럼 따뜻하게 손을 꽉 잡으면서 “음악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더군요. 3시간 반 이상의 긴 공연이 끝나고 스톡홀름의 감라스탄의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고풍스런 건물들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별 두개만 마치 손잡은 언니와 동생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북구인 까닭일까요? 태어나서 그렇게 별이 크게 맑게 반짝이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한 동안 서서 별을 쳐다보는데, 눈가에 별빛이 흔들리며 망막에 번지더군요.


에필로그


그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가기 전에 미련이 남아 다시 교회당의 기념품 가게를 찾았더니, 한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나더러 자기가 누군지 기억나느냐고 하기에 어디서 본 듯하다는 생각에 대답을 주저하였더니 어제 오후 공연장에서 저에게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해준 사람이더군요. 기념으로 CD 몇 장을 구입하였더니 특별히 20% 할인을 해주었습니다.

감라스탄에서 스토르키르칸 교회당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면서 북한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던 어떤 전도자, 교회당의 안내를 맡은 할머니, 이들 모두의 눈망울이 얼마나 선하고 맑던지요...

이래저래 스웨덴에서 좋은 만남과 추억을 가슴에 담고 귀국하였습니다.


사람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

ㅡ 이기철

달걀이 아직 따뜻할 동안만이라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는 세상엔 때로 살구꽃 같은 만남도 있고

단풍잎 같은 이별도 있다

지붕이 기다린 만큼 너는 기다려 보았느냐

사람 나 죽으면 하늘에 별 하나 더 뜬다고 믿는

사람들의 동네에

나는 새로 사온 호미로 박꽃 한 포기 심겠다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내 아는 사람이여

햇볕이 데워놓은 이 세상에

하루만이라도 더 아름답게 머물다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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