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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우 Feb 25. 2022

슈베르트의 음표에 담긴 고통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그 고통은 사랑이 되었습니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의 표현입니다.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세상을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슬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합니다."


"나는 매일같이 아프고 힘들지만, 내 음악으로 인해 사람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20대 중반이었던 1822년 절친 프란츠 쇼버를 따라 사창가에 갔다가 당시 유럽에 창궐하고 있던 매독에 감염됩니다. 그 후 전신에 발진이 생기고 극심한 관절통을 수반한 통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생활을 해야 했는데, 당시는 아직 뾰족한 치료방법이 없이 수은연고를 온 몸에 바르는 치료 등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투병의 과정이 요즈음 말기 암환자의 투병 과정 이상으로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다는 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탈모로 인해 결국 가발을 써야 했고. 팔의 통증으로 피아노조차도 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치료행위에 수반된 수은 중독의 부작용으로 인해 슈베르트는 우울증은 물론 간헐적 환각증세와 함께 신경이 극도로 쇄약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격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1827년부터 수많은 걸작들을 작곡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해인 1828년에 작곡된 노래 가운데는 예상 밖으로 따스하고 희망가득한 느낌의 노래도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바위 위의 목동

https://youtu.be/XmPeoEvSXWc



그러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포함하여 그의 말년에 작곡된 작품들은 당시의 그의 심경을 투영한듯 대체로 슬프고 암울한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러한 곡들에서는 그저 단순한 슬픔이나 애상의 정서를 넘어 육체적 통증을 그대로 음표로 표현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겨울나그네> 제10곡의 휴식(Rast)에서 슈베르트는 나그네의 몸을 찌르는 통증을 왼손의 스타카토(아래 악보의 파란색 부분)와 오른 손의 악센트(아래 악보의 적색 부분)의 아티큘레이션 조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흠칫! 하는 느낌으로 짧게 끊어 치는 그 스타카토에서는 마치 주사바늘이 들어오는 순간과도 같은 예리한 아픔, 슈베르트가 진통제도 없이 견뎌야 했던 그 고통의 순간들이 전해져 옵니다.

https://youtu.be/6au8D3KCPaE


왼손 피아노의 (약박에 붙은) 스타카토는 슈베르트가 죽은 해인 1828년도에 작곡된 즉흥곡 제4번 A플랫장조에도 사용되었습니다(아래 악보 참조).

https://youtu.be/SSpoP0LRpuc



이러한 (약박에 붙은) 스타카토와 악센트의 조합은 역시 1828년에 작곡된 슈베르트의 제20번 피아노 소나타 D 959의 2악장 안단티노에서도 거듭 사용됩니다.

이 악장은 그 소나타의 다른 악장은 물론 그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의 모든 악장 가운데서도 마치 홀로 저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외로운 섬과 같이 낯선 느낌마저 주는 특이한 곡입니다.

이 악장의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거의 발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표현들, 이어지는 (즉흥곡 D899 3번의 선율에 의한) 마음의 추스림과 체념도 슈베르트의 당시 심리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만, 곡의 처음부터 내내 이어지는 (약박에 붙은) 여린 스타카토와 악센트는 음표에 새긴 그의 육체적 고통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아래 악보).


이 안단티노를 연주하는 적지 않은 피아니스트들이 페달의 과잉 사용으로 인해 이 왼손의 (약박에 붙은) 스타카토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만(여러분들이 즐겨 듣는 연주도 한 번 주의 깊게 다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악보에 표기된 이 스타카토를 무시하고서는 곡에 담긴 정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Lonquich

https://youtu.be/k7TH4O9w2T4



Zimmerman

https://youtu.be/fubKC4TNi2g



죽음에 대한 공포와 체념, 서러움과 고독이 고통스럽게 뒤범벅되어 있는 이 안단티노의 우울한 느낌은 <겨울나그네>의 마지막 곡인 'Leierman'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두 곡의 정서가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사실 슈베르트는 'Leierman'에서도 아래와 같은 쉼표 및 악센트의 사용에 의해 (약박에 붙은) 스타카토와 유사한 느낌을 표현했었지요.

Mauser

https://youtu.be/D2ZdZhaf5XI



슈베르트는 수년에 걸친 고통스런 투병생활 끝에 1828년 말에 제3기 매독의 대표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합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병상에서도 <겨울 나그네> 2부의 악보를 계속 손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죽기 며칠 전에는 베토벤이 평소 가장 아꼈다는 현악사중주 올림다(C#)단조(op. 131)를 친구들에게 연주해달라고 했다고도 합니다.

베토벤 op.131 아다지오

https://youtu.be/vzhEU4MR4RY



결국 그에게 결국 따스한 봄날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같이 아프고 힘들지만, 내 음악으로 인해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라는 슈베르트의 말처럼, 그 혹독한 겨울의 차디찬 땅에 그가 묻어놓은 방랑의 노래에서는 해마다 꽃이 피어 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토록 짧았던 삶에서 스스로는 평화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보내 준 슈베르트에게 그가 듣고 싶어했던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대신 그의 노래 〈연도(Litanaie)(D343)를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습니다.


터펠

https://youtu.be/broaaYfjimw


Ruhn in Frieden alle Seelen,

평화 가운데 쉬어라, 모든 영혼이여

Die vollbracht ein banges Quälen,

두려운 고통 다 마치고

Die vollendet süssen Traum,

달콤한 꿈도 끝낸 영혼들

Lebenssatt, geboren kaum,

삶에 지치고, 거의 태어났었다고 할 수도 없이

Aus der Welt hinüber schieden:

이 세상에서 떠나간 사람들

Alle Seelen ruhn in Frieden!

모든 영혼이여 평화로이 쉬어라


Und die nie der Sonne lachten,

태양을 향해 웃지 못하고

Unterm Mond auf Dornen wachten,

달이 뜨면 가시덤불 위에서 잠 못 이루었던 사람들

Gott, im reinen Himmelslicht,

언젠가 순수한 천국 빛 속에서

Einst zu sehn von Angesicht:

하나님을 대면하리니

Alle, die von hinnen schieden,

이 땅에서 떠나간 모든 사람들

Alle Seelen ruhn in Frieden!

모든 영혼은 평화로이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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