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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r 08. 2024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병난 김에 생각해보는 네버엔딩스토리

서울*병원에서는 입원 날짜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병원 김* 선생님 외래를 잡았다. 

심전도도 해야 하고, 넉넉하게 2시간 전에는 도착할 요량으로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문자가 왔다. 가족상으로 오늘 외래는 대진이라고.


네이버의 심혈관질환 관련 까페에서 검색을 하다

김* 선생님이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에게 "죽는 병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는 글을 봤다.

아마,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을게다.

김* 선생님 외래를 보고팠던 이유다. 

"시술 안해도 괜찮다. 불편할 뿐 죽는 건 아니다?" 

 

개흉하지 않고 대퇴부정맥에 구멍을 뚫어(이것 역시 무섭다) 하는 시술이라지만

심장을 건드리는 건 마찬가지이고, 

쫄보인 나는 무섭기만 했다. (아는 사람들은 나더러 "덩치값 좀 하라"지만 강건한 와꾸에 솜털같은 가슴을 가진 나는 여전히 무섭다)


생각해보니 40년 넘게 살면서 

뭔가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아부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예쁜 새끼들을 낳은 것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 하며 신나게 살았다지만, 

그것 말고는 내게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 토대는 만들지 못했다. 

애써 둥근척 했지만 뾰족뾰족한 성격도 한몫 했을테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목적지 없이 부유하는 통나무배처럼

이리 저리 휘둘렸을 뿐.


언제나 마음이 강해지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와꾸가 아니라 내면이 강한 사람이고 싶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씩씩했다.

살아가는 중 가끔 우울하기도 했지만

근 10년 간 나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시시각각 일상을 침범하는 병을 만난후

약간의 우울감이 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뭐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까도 까도 끝도없이 까지는 나의 후진 부분들이 드러나

따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놓치고 있던 나,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10년간 다져온 오지랖의 내공은

인생의 끝, 

내 마지막까지 생각하게 했다.

사느라 바빠서 미처 사는동안에는 생각하지 못했을 나의 마지막. 

천년만년 당연히 건강하게 살듯 

술과 커피 음식을 양껏 마시고 씹어온 나의 행동들에 대해서도 ... 복기하게 된다. 

(살을 빼겠다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결과는 모두 살이 빠지는 것이라도)


어디선가 들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한다고. 

모든 것이 열려있는 세상이라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라지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그것을 열리게 하는 것도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

모든 게 가능하다는 세상에서 느끼는 이 막막함은 대체 뭘까. 

잘 살아가는 건 뭘까.  


...



대진으로 만난 의사선생님은 다정하셨다.

"이거 꼭 해야 하나요? 약으로는 안될까요?" 라는 질문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게 나을까요?" 답이 돌아왔다. 


"제 아이들이 어린데 아무리 시술이라도 걱정이 되어서요. 1000명 중 한두명은 심장에 빵꾸 난다는데......"

...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응급실과 외래를 다니면서 들었던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바보처럼 눈물이 줄줄 나왔다. 


"저는 아이가 셋인데, 저라면 시술 받을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날짜 잡아주세요. 선생님."


밖으로 나와 간호사 선생님과 입원날짜를 잡고,

심장초음파와 혈액검사, 엑스레이를 찍었다. 

증상이 있을 때 먹으라는 약이 적힌 처방전도 받았는데

5시간 일정에 지쳐 까먹었다.

 

먼길에서 돌아온 집은 편안했다.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느라 엄마는 아는 척도 안하는 새끼들을 보니 안심이 됐다.

반복되는 지리한 일상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지루해서 몸서리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나는 나의 마지막이 내 집 침실이면 좋겠다. 

하루나 이틀전쯤 아이들과 남편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며 잠을 자다 가고 싶다.

 

그러려면 얼마나 잘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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