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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Oct 02. 2024

알바에 임하는 아줌마의 태도

감사합니다


나는 아들둘을 키우는 아줌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스무살에 꿈꾸던 그대로 차에 지도와 장비를 싣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지도에 점도 찍었다. 한달에 반 정도는 출장, 나머지는 캐내온 콘텐츠들을 마감하며 살았다.원하는 일을 하며 (박봉이지만) 돈을 벌고 산다는 포만감에 취해 행복하 게 살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은, 살아있는 한 계속 하고 싶다던 일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길 위에서 보내던 나이브한 시간들은 

아이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걱정의 시간들로 바뀌었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돌 혹은 두돌 무렵까지 키우고 복직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랴.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아이를 낳고 5개월만에 현장으로 돌아갔다.  

나는 평생을 주부로 살아낸 엄마의 뒤를 따르기 싫었다.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탁하는 삶.

시부모님 봉양과 병수발, 남편과 자식새끼(나 포함)들 키우느라 고생고생하고 살면서도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못하던 모습은 멋져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자라며

결혼 생각없고 적게 벌어도 이 내한몸 책임질 수 있다면, 살아있는 한 일하자 라고 다짐했던 나는

21세기에도 20세기에 결혼을 하고 새끼를 키우던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여자의 숙명인가.

아이를 낳은 자의 숙명인가.

그렇다고 남편이 그리 자유로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인 그 자 역시

새끼들 먹이고 입히고 키우느라

눈이오나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돈을 벌러 나간다. 

빡치고 눈물 훔치던 날들도 있었을거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말없이 일터로 나간다.

"아빠 오늘도 AI와 싸우고 올게"라고 올망졸망 출근길에 매달리는 새끼들을 부비고 나간다. 

짠하다.

한때는 말이다. 

그자의 점심시간이 부러웠다.

그 한시간의 자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며 성인들과 대화하는 그 자체가.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우리는 늙어간다. 

몇번의 가을바람일까.

함께 맞는.

곧 칼바람으로 변하는 이 겨울 바람을 우리는 얼마나 더 함께 맞을 수 있을까.

첫 아이를 낳고 복직했던 직장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출장이 없는 곳으로 이직했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애는 아침마다 울어대고

맨날 아프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가기에는 어린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나가는 출근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하는 생각에

그리고 새끼를 키우기로 했다. 

육아는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하루는 너무나 길었지만, 

바빴다. 나는 로봇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인데

로봇같은 일처리(육아, 살림 등등)와 인간적인-엄마의 모성애- 애정까지 듬뿍 쏟아야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은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남의 사정을 봐주기는 어렵다. 물론 간혹 성자(?) 같은 분들도 있다고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들은 적은 있다. 

나는 곧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죽고 싶었던 것도 같다. 

분수처럼 샘솟으리라 믿었던 모유도 안나왔다. 피에 유구염 유선염에 아주 난리 브루스였다.(브루스 춰본 적도 없구만, 이런거라면 싫다.퉤)

아이는 나만 보고 있는데

젖병을 8개, 10개는 산것 같은데 끝도없이 사라졌다. 

먹이고 씻고 먹이고 씻고... 젖병소독기까지 (추억의 유팡, 아직도 살아있니?)

....

도망치듯 복직했다. 

복직한 날 너무 행복했다.

자유.

내 한몸만 건사하면 된다!

출산후 복직한 애엄마에게 사회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게 10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 출산율 폭락(?)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새끼도 잘 키우고 싶다. 당연하다. 새끼를 낳은 부모라면.

근데 내 인생도 놓기는 싫다. 완전히 놓기는 싫다고.

10년 넘게 해온 내 일을 버리고 육아에만 올인하겠다고 자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풀타임은 아니더라도 짧게라도 내 일..... 사회와 나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낱같은 뭐라도 

잡고 있고 싶은 마음... 이 있다. 

그런데 세상은 그냥 둘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출산 전처럼 일을 하던가(물론 애도 키워야지, 당근), 아니면 그냥 새끼나 키워.

친정엄마찬스를 쓰면서 일을 하던 나는 결국 포기했다. 아니 다른 선택을 했다.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선택. 

 

첫 아이가 네살이 되었을때 처음 어린이집에 갔다. 

야호!

걱정은 되었지만 좋기도 했다.

이제 좀 살만해졌나부다.... 할 때 둘째가 생겼다. 

둘째는 큰아이 4살 12월에 세상에 나왔다. 

다시 시작. 

...

그리고 지금 나는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를 뽑아준 세상에 감사하고, 무럭무럭 자라준 아들들에게 고맙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돈벌러 나가는 남편에게 고맙고

뭐라도 하겠다고 끊임없이 거대한 삽을 들고 여전히 삽질을 멈추지 않는 내게 고맙다.

그러니까, 좀 잘 하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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