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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Feb 03. 2022

서른 살의 파도는 어떻게 지나가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와 마리아 라이너 릴케

저는 학교 다닐  3월이 설레면서도 싫었어요. 새롭고 설레지만  새로움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서른 살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막막함은 누구에게나 있을  같아요. 20대에는 여기까지 연습이고! 서른부터 제대로 살면 된다! 하는 보류가 가능했다면, 뭔가 서른은 그런 보류가 어색해진달까요? 연습 아닌 실전으로 커리어를 쌓을 직업과 평생 함께  사람을 찾고 싶은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것도 같고요.


여기 서른 살에 변곡점을 찾으려 했던 화가가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에게 영향을 준 독일의 여성 피카소! 파울라 모더존 베커예요. 저는 사실 파울라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독일의 시인인 마리아 라이너 릴케를 좋아해서, 그의 자화상을 그린 여성 화가로 알고 있었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초상 - 파울라 모더존 베커 (1906)

1906년 서른 살의 파울라는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합니다. 그녀는 귀족 부르주아 출신으로 예술, 문학, 음악을 공부하며 자랐어요. 영국과 독일의 예술학교에서 수학하고, 스물둘에 브레멘 예술 단체에서 미래 남편이 될 오토 모토 존을 처음 만납니다. 2년 후에 그와 결혼하죠.


이 예술단체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과 썸도 타는데요, 독일의 위대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입니다. 사각관계 느낌으로 그녀의 절친한 친구 클라라는 릴케를 좋아해요. 릴케와 파울라는 통하는 면이 있었지만 서로 마음을 숨깁니다. 둘이 썸 타는 방식이 조금 로맨틱해요. 릴케가 어느 날 여행을 떠나면서 파울라에게 수첩 하나를 줍니다. 


"내가 없는 동안 이걸 좀 보관해 줄래요?" 하고, 돌아올 때까지 그 수첩을 가까이 두고 만지고 혼자 조용히 쉴 때마다 그 안에 적힌 시를 읽어달라고 부탁해요.


붉은 장미가 이렇게 붉은 적이 없었다네
온통 비가 오던 그 저녁처럼
나는 그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생각했다네
붉은 장미가 이렇게 붉은 적이 없었다네


시가 약간 설레지 않나요? 이런 마음을 파울라가 모를 리 없었겠죠. 그래서인지 그녀는 미래 남편이 될 오토와의 약혼 사실을 릴케에게 숨깁니다.


파란 유리병 속에 노란 꽃을 든 소녀 - 파울라 모더존 베커 (1902)

오토는 파울라를 사랑했고 그녀의 작품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요. 스물넷 결혼한 그녀는 5년간 예술활동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고전주의의 미술이 열풍이었고, 여성의 벗은 몸을 그리는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요. 오토와의 결혼생활에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걸 이 일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면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정이 배가 된다. 결혼 이전의 삶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환상 없이 그렇게 위대하고 쓸쓸한 진실과 일대일로 마주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1902년 부활절 일요일에 송아지 고기를 굽는 동안 식탁에 앉아 가계부에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녀는 오토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작품세계도 정체되었다고 느끼자 네 차례 파리를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타히티를 그려낸 고갱과 야수파의 시초인 마티즈의 작품을 봐요. 세잔, 폴 고갱,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보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고전 · 고딕 · 이집트 미술을 공부합니다. 그들의 색채의 영향을 받고 그녀만의 작품세계를 확립하죠.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 - 파울라 모더존 베커 (1905)

서른 살이 된 파울라는 떠나고 싶었고, 습관이나 규칙이 되어버린 것들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었고, 진정한 화가이고 싶었어요. 그녀는 이혼을 결심하고 릴케에게로 향합니다. 하지만 릴케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던 클라라와 결혼한 상태였어요. 파울라는 파리에서의 첫날 메모를 남깁니다.


"이제 나는 오토 모더존을 떠났고 옛 삶과 새로운 삶 사이에 서 있다. 앞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질까?
나는 어떻게 될까?"


오토는 파울라를 잡기 위해 파리로 오고, 파울라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지 18일 후 그녀는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해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 아쉬워라!'였습니다. 폭풍 같은 서른을 보낸 후, 그녀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어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무릎을 꿇은 어머니 - 파울라 모더존 베커 (1906)




서른 살의 파도는
어떻게 지나가는가?


친구들끼리 놀면서 지목 게임을 하면, 저는 늘 먼저 결혼할 것 같은 사람 1등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뭐, 그냥 내가 그런가 보다! 했는데 교환학생을 가서 친해진 외국 친구들이랑 게임을 해도 결과가 같은 거예요. 당시 친구들 국적이 프랑스, 말레이시아, 독일, 일본, 체코였어서 뭔가 내가 이상한 게 있나? 싶었어요. 철학을 공부하던 (나름 이성적이었던) 독일 친구에게 조용히 내가 왜 먼저 결혼할 것 같아? 하고 물어보니까 '민디는 결정적일 때 옳은 결정을 하니까! 그러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야.'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해가 안돼서, 마지막 날 내가 옳은 결정을 언제 했었어? 물어보니 교환학생이 시작됐던 9월에 블타바 강에서 혼자 보트를 탄 거나, 백조한테 빵 준다고 강에 들어간 거나, 여행지에서 갑자기 좋아진 캐러멜 차를 한가득 사고 후회하지 않는 옳은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그게 결혼이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파울라에 관한 책을 읽다가 아 이게, 그 말이구나 싶었어요.


저는 불안한 상상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에요. 머뭇거리다 아무것도 안 할 거면 확 결정하고! 후회하지 말자! 대신 긍정적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자! 하면서요. 그래서 서른이 돼도 그냥 매일 저한테 찾아오는 깨알 같이 많은 날 중 하나일 것 같아요. 하루의 일을 결정해야 하는 아무것도 아닌 날이요. 파울라의 작품은 너무 좋지만, 그녀처럼 아쉬움이 남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아요. 좋으면 좋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깊게 생각하다 쉽게 말해버리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읽고 있던 책에 서른 살의 파도는 어떻게 지나가는가? 적혀있었는데 굳이 서른이 파도인가 싶어요.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너무 커서 그렇지 그게 뭐 별거인가 싶네요. 나는 매일매일이 파도 같은데, 그냥 앞에 주어진 선택을 잘하고 몸 건강히!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삶을 살다 언젠가 죽으면 그것 나름대로 행복할 것 같아요. 책 많이 읽고, 멋진 문장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많은 추억을 쌓는 삶이요!


긴 연휴가 끝났는데 오늘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서 제가 좋아하는 가수 앨범을 통으로 틀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한 하루였어요. 혹시라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을 읽어보신 적이 없으신 분들에게 제가 요즘 좋아하는 문장을 나누고 싶어요.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결합을 행복이라 부르고 자신들의 미래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각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다른 사람까지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구역질과 실망, 빈곤뿐입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멋진 문장이에요.

한주가 목요일에 시작되는 것도 멋진 일 (긍정킹)이니, 좋아하는 사람과 릴케의 문장, 그리고 파울라의 그림을 함께 보는 것 어떨까요?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을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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