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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Jan 23. 2022

위태롭게 떠날 것 같은 사람과 하는 연애

구스타포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연애 초반에 내가 더 좋아해! 내가 더 사랑해! 해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요. 연애는 둘이 하는 관계인 만큼 마음이 더 큰 쪽으로 관계가 기울게 되잖아요. 누가 더 많이 좋아하는지가 극명하게 보이는 연애는 빨리 끝나거나, 오래 지속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대부분 전자였습니다. 늘 누군가 저를 많이 좋아해 주면 관계가 시작돼서, 그 마음에 제가 지치고 빨리 끝내버리는 연애를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오래 두고 보는 연애를 지향합니다.


한쪽이 극명하게 사랑했던 관계에서 탄생한 명화가 있습니다. 정말 유명한! 원제는 '연인'인 구스타포 클림트의 '키스'인데요! 이 작품, 저는 너무너무너무 좋아합니다.


키스 - 구스타프 클림트 (1907)

스무 살에 유럽 여행을 했어요.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보고 좋아서,  시간 정도를 감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클림트 나무를 그린적 있는 저로서는  조각으로 면을 채우고 황금을 두른  작품이 너무 화려해서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던  같아요. 계속 보다가,  황금 드레스를 입고 뽀뽀를 받는 여자는 누굴까! 궁금했어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밀리 플뤼게

그녀는 '에밀리 플뤼게'입니다. 에밀리는 당시 빈에서 유명 부티크를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였어요. 사진  입은 옷에서도 특별함이 보이지 않나요? 왼쪽에 서있는  시대.. 거북목의 남자가 구스타프 클림트입니다. 사실 둘은 한국으로 따지면 친척 관계였어요. 클림트의 동생이 죽자, 클림트는 조카의 후견인이 됩니다. 조카가 세례를 받을  이모가 옆에  있었는데  이모가 에밀리예요. 굳이 따지면 처제의 여동생!  되겠네요.


클림트는 20대 초반 크게 성공한 화가입니다. 작품 활동 초기 돈을 벌기 위해 전통적인 예술을 했고, 황실 천장화를 그려요. 두 차례 가족의 죽음을 겪은 뒤 검열이 심한 전통미술에서 벗어나 '빈 분리파'를 결성합니다. '빈 분리파'에 속해있는 화가로는 알퐁스 무하, 에곤 실레 등이 있어요. 이 ‘빈 분리파'의 수장이 클림트였을 만큼 그는 성공한 화가였고, 부유했으며 여자관계도 복잡했어요.


빈의 카사노바라고 불렸다고 해요.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사생아가 열네 명이었어요.



클림트가 에밀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화분이 꽃 모양의 하트로 가득 차있죠. 글씨를 보면 분명 알파벳이긴 한데 하나도 모르겠지 않나요? 그는 정말 악필이었고 편지를 잘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밀리에게는 400여 통의 편지를 남겨요. 클림트가 에밀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죠. 둘은 섹스 없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합니다.


아터 호수 - 구스타프 클림트 (1900)

저는 클림트의 풍경화도 좋아해요. 황금이 둘러져있진 않지만 은근한 평온함이 좋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모두 정사각형인데, 그는 "그림은 정사각형에 담길 때 우주의 한 부분이 된다."라고 했어요. 클림트는 에밀리와 함께 1900년부터 여름마다 아터 호수로 떠납니다. 아터 호수, 오스트리아 잘츠캄머쿳에 있는데 정말 여행 가고 싶네요.


18년이 지난 1918년 클림트는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해요. 마지막으로 그가 했던 말은 "에밀리를 불러!"였습니다.




클림트의 키스를 보지 못했다면
비엔나를 떠나지 말라


비엔나 국제공항에 쓰여있는 문구입니다. 클림트의 삶을 알고 나니, 이 문구가 '클림트가 애타게 지켜낸 사랑을 보지 못했다면 비엔나를 떠나지 말라'로 읽히기도 해요. 자신의 목을 두른 에밀리의 손가락을 그리고, 반짝거리는 하트를 금으로 칠해내면서 클림트는 얼마나 에밀리를 생각했을까요?


클림트의 아름다운 작품과 부유한 삶을 보고 그에게 구애한 많은 여성들이 있었지만 에밀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오히려 애타게 좋아했던 쪽은 클림트였어요. 에밀리를 모델로 한 작품을 네 개나 남깁니다.


내가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보이는 연애. 상대가 위태롭게 떠날 것 같은 연애는 힘들죠. 늘 애타고 연인임에도 사랑을 측정하는 기분이 들면 그것만큼 비참해질 때가 없잖아요. 하지만 사람은 복잡해서, 가끔 사랑하는 게 뭔지 모르는 체 사랑하기도 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 모습을 사랑했던 걸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랑에서 얻거나 남은 것이 있다면 그건 자기 자신만의 것이니 모두 비참해지지 말자고요.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언어를 공부하고 운동을 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매일 커피를 내려주는 삶은 비참보다 행복에 가깝지 않나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삶이기도 하잖아요. 클림트는 애타게! 에밀리를 평생 사랑했고 그녀와 하룻밤조차 보내지 못했지만 세기가 지나도 사랑받는 작품을 남겼어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친구나 가족 포함) 정말 축하할 일이 생기면 쓰려고 클림트 엽서집을 비엔나에서 사 왔습니다.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은 클림트 키스를 같이 보는 건 어떨까요? 이제 보니 저희 집에는 키스가 그려진 컵도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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