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오늘아침 1 라디오 예술로 떠나는 여행
지난 붓, 먹, 벼루 이야기
https://brunch.co.kr/magazine/artandtravel
붓과 먹, 그리고 벼루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는데요. 오늘은 종이의 세계로 안내해 주신다고요?
지난주 방송에서 먹이야기를 들으시고 먹을 그렇게 힘들게 만드시는지 몰랐다는 분부터 먹장님의 먹을 개인 소장용으로 구매하고 싶어다는 분까지 나름 반응이 굉장히 핫 했던 것 같습니다. 또 한 지인분께서는 그럼 종이는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라고 물어보셔서 내친김에 청취자분들께 문방사우를 모두 소개해드리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한국 전통의 멋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불리어지는 ‘선비의 멋’ 문방사우의 세계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방사우가 붓, 먹, 벼루, 종이라는 의미인가요?
조금 다릅니다. 많은 분들께서 문방사우를 종이는 문, 먹은 방, 붓은 사, 벼루는 우,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정확한 의미의 문방사우를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장소를 ‘문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되는 도구를 문방구라고 불렀는데요. 저희가 학창 시절에 자주 다니던 그 문방구의 기원이 되기도 했고요. 그 문방구들 중에서도 가장쓰임이 요긴했던 네 개의 필기구가 붓, 먹, 벼루, 종이였겠지요?
그래서 가장 쓰임이 요긴했던 이 네 가지의 필기구들을 지필묵연! 그러니까 종이 지, 붓 필, 먹 묵, 벼루 연이라고 불렀습니다.
학용품을 부르는 명칭이 있었나요?
그런데 필기구 중에서는 가위도 있고 자도 있고 지우개 같은 것도 있고 다른 필기구들도 있는데, 다른 학용품들도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었나요?
굉장히 재밌는 것이 옛날에는 학용품을 종류별로 나눈 것이 아니고 성별로 분류를 했다고 합니다. 남성들의 학용품과 여성들의 학용품이 따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죠. 방금 지필묵연이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이것은 남성들이 쓰는 학용품이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그럼 여성들이 쓰는 학용품을 뭐라고 했을까요?
여성들이 쓰는 학용품이 어떻게 불렀을까요?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공예 문화중 하나인 규방문화 즉 우리의 옛 바느질 도구를 여인들의 문구라고 했다고 합니다. 선비들의 학용품이 문방사우였다면 여인들의 학용품은 바늘, 실, 자, 골무, 가위, 인두, 다리미까지 이렇게 7가지를 규중칠우(閨中七友)라고 불렀다고 해요.
특히 옛 여인들에게 있어서 바느질은 부덕, 용모, 말씨, 길쌈과 더불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범절이자 덕목이었는데요. 그래서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정성과 사랑과 염원이 담았기 때문에 바느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규중칠우 또한 정성스럽고 귀중하게 간직해 왔다고 합니다.
와 남녀가 쓰는 학용품이 전혀 달랐다니 정말 놀라운데요
다음번에는 여인들의 규중칠우에 대해서도 여행을 떠나보는 시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던 문방사우에 대해 계속 이어가 볼까 하는데요. 대표적인 문방사우가 붓과 먹 종이와 벼루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종이, 바로 한지였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좋은 붓과 먹이 있어도 쓸 종이가 없으면 나머지 필기구가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종이의 중요성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우리의 한지가 수출 효자 상품이었기 때문인데요.
섬유가 질기고 변색이 적은 닥나무로 만든 질 좋은 한지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가차원에서 종이를 함부로 낭비하지 못하도록 했고, 버드나무나 마 줄기를 섞어서 만든 상대적으로 원가가 저렴한 B급 한지를 국내에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한지를 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해요.
좋은 종이, 좋은 한지의 기준이 따로 있나요?
좋은 종이가 되려면 3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하는데요 치수 안정성과 장력, 복원성이 좋은 순으로 좋은 종이와 나쁜 종이가 구분됩니다. 치수 같은 경우는 가공 처리를 할 때 가로·세로 줄어듦의 비율을 말하는 것이고, 장력은 잘 찢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복원성은 날씨가 건조할 때나 습할 때 늘어나고 수축하는 종이 자체의 유연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충족돼야만 최상급 품질의 종이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노트나 A4 용지 수준의 종이가 아니었군요. 그러면 이렇게 귀한 한지는 어떻게 만들어지죠?
네 크게 7가지 공정을 거쳐서 완성이 되는데요, 첫 번째로 우선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를 채취한 뒤 껍질을 벗깁니다. 벗기기 첫 번째는 '닥 원료' 만들기입니다. 두 번째로는 잿물로 닥나무 껍질을 삶습니다. 삶기 전에 물에서 하루 정도 불리고 4시간 정도 삶은 후에 7~8시간 정도 뜸을 들이고 다시 찬물에 3~4일을 담가두어 남은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물에 젖은 닥섬유는 두드리면서 섬유끼리 잘 붙고 유연성이 커지게 되는데요 돌판 등 도마 같은 평평한 판 위에 닥섬유를 오려 놓고 방망이로 2~3시간 두드려 뭉친 닥섬유를 풀어줍니다. 이것을 '고해'와 '해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 종이와 가장 큰 차이점을 지니고 한지의 치트키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지통에 넣고 막대기로 저어 섬유의 엉킴을 풀어준 뒤 대나무발로 닥섬유를 건져 전후좌우 흘려보내 한지를 완성하는데 이것을 물을 흘려보낸다고 해서 ‘흘림 뜨기’, 위에서 내려오는 실이 하나라서 ‘외발 뜨기’라고 부릅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 종이는 보통 한 방향으로 종이를 뜨는데 우리나라는 좌우로 흘려가며 종이를 뜨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이렇게 뜬 종이는 켜켜이 쌓아 무거운 돌을 올려놓거나 지렛대로 눌러 하룻밤 동안 물기를 빼줍니다. 반건조 상태인 한지를 햇볕이나 열을'가한 철판에 말리면 비로소 종이의 형태에 가까워지고 마지막으로 도침을 진행합니다. 도침이 뭐냐 하면 搗(찧을 도) 砧(다듬잇돌 침)으로 다듬잇돌에 다듬어서 종이를 반듯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섬유와 섬유 사이를 두드리는 방식으로 종이의 강도를 높이며 다지는 효과로 이렇게 7개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한지가 완성이 됩니다. 평균적으로 99번 이상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고 하니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한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99번의 손길이 거친 한지라고 볼 수 있죠.
(* 잿물: 주로 콩대, 메밀대, 짚 등을 태운 재를 따뜻한 물에 우려 걸러서 사용한다. 이때 잿물은 알칼리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한지가 산화되어 섬유소가 파괴되는 것을 막습니다.)
한번 만져보고 싶은데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바로 아탈리아의 로마와 프랑스 파리에 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네? 로마랑 파리요?)
네 K-한지의 우수성은 유럽에서 먼저 인정받기 시작했는데요 글씨를 쓰는 용도가 아닌 바로 지류문화재 즉 오래된 책이나 지도 등의 복원에 사용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게 됩니다.
바야흐로 2016년! 경남 의령의 신현세 명인의 전통 한지 공방에서 제작한 한지 2종이 유럽문화유산 복원 재료로 공식 인증을 받게 되었는데요. 인증 절차 이후, 현장에 투입된 한지는 성 프란체스코의 친필기도문인 카르툴라(chartula) 등의 이탈리아의 문화재 5점 복원에 활용되었습니다. 1224년에 쓰인 카르툴라 기도문이 얼마나 중요한 문화재냐면 그냥 문화재정도가 아니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보이기 때문에 국보의 복원작업에 쓰일 종이를 얼마나 오랜 시간 검증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인증 절차만 해도 몇 년이 걸렸다고 해요
그래서 최종 채택된 신현세 명인의 전통 한지는 카르툴라 기도문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로사노 복음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새의 비행 등을 복원하는데 쓰이게 됩니다. 한국의 한지가 세월의 흔적으로 훼손된 책의 페이지와 책등의 연결부 보강에 쓰이게 되면서 한국의 한지가 국보급 문화재의 원형을 보존하는 재료로 처음 사용되게 된 것이죠.
<카르툴라 관련 기사>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7105
엄청 감동적인데요!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포인트 맞죠? 네. 정말 감동을 하셔도 되는 것이 그전까지 세계 박물관에서 미술품·문화재·유물 복원에 사용하는 종이는 99% 이상이 일본 화지(和紙)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인 2014년 밀라노에서 진행된 한지 워크숍을 기점으로 우리의 "한지가 문화재 복원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슈퍼스타 되기 시작한 것이죠.
아까 프랑스 파리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파리에는 또 어떤 한지를 볼 수 있죠?
그래서 이 소식을 들은 유네스코의 도시 로마도 쓰는데 프랑스도 우리도 한번 사용해 봐야겠는데? 했겠죠?
근데 그냥 좋다더라 입소문 정도로만 국보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확한 수치나 프랑스만의 검증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프랑스도 한국의 한지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그때 운명과 같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미술품 복원을 전공한 한 한국인이 루브르박물관 복원실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 그 인턴분이 마침 논문 주제를 한·중·일 전통 종이 비교로 쓰고 있었는데 그걸 또 때마침 루브르에서 복원용 소재를 연구하는 아리안느 드 라 샤펠이라는 연구원이 읽게 된 거예요.
그래서 2015년에 쓴 논문을 보니까 한국 한지와 일본 화지, 중국 선지(宣紙)의 수축·팽창률이나 노후화 등을 분석해서 수치로 통계를 낸 내용이었던 거죠. 그래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에 한지를 쓰게 됩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 이 논문을 쓰신 건가요?
이 논문을 쓴 분이 김민중 씨라는 분인데요 이분의 공로를 인정해서 루브르박물관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정규직원으로 채용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지 장인들과 루브르박물관을 이어주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루브르 측에서 우리 덕분에 한국의 한지를 세계에 알리게 된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봤다고 해요 근데 김민중 씨가 인턴 출신이기도 했고 나이도 어리고 하니 네 감사합니다~ 그럴 거라고 모두 예상을 했겠죠? 근데 이분이 어떤 말을 했냐면 너희가 한지를 복원 작업에 사용해 줘서 뿌듯한 게 아니라, 우리의 한지가 명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프랑스 너희의 국보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면서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프랑스를 돕는 일입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한지를 만져보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나요?
네 아무래도 한지가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받다 보니 국내에 몇몇 한지박물관이 있는데요 제가 오늘 추천해 드리고 싶은 곳은 2011년 개관한 원주한지테마파크입니다.
보통 한 지를 하얀색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특이하게 원주한지의 특징은 오색한지이며, 글을 쓰는 용도뿐만 아니라 공예 작품 제작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원주 한지 테마파크에 가시면 260여 개의 오 색 한 지들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원주 한지 테마파크>
원래는 일본의 전통종이인 화지가 사용 됐다고 하는데, 일본의 화지와 한국의 한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까 한지를 만드는 과정 중에 잠깐 언급을 드렸었는데요 일본의 “화지는 세로로만 뜨기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 잘 찢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발뜨기 방식으로 제조한 전통 한지는 가로·세로 동시에 뜨기 때문에 양쪽 방향이 모두 질기고 잘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화재복원에 있어서 영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견고한 한지가 최근에 적합한 소재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죠.” 한지는 온도와 습도만 잘 유지를 해주면 8000년까지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고 하니 한지의 견고함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이 되실 겁니다.
그럼 서양에서는 언제 처음 종이를 만들어서 사용하게 됐을까요?
서양에선 이집트 나일강 주변과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파피루스’ 속을 말려 사용한 것에서부터 종이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요 동양에서는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면 서양에서는 파피루스라는 풀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영어로 종이를 ‘페이퍼’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 페이퍼라는 단어가 바로 이 파피루스로부터 기원이 된 거예요.
<26분 정도부터 나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j8YrZ3ujk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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