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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이 바라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전통의 힘으로 세계를 사로잡다

by 조인선


지난 6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공개 4주가 지나도록 열기가 식지 않고 있으며, 40여개국에서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영화에 삽입된 OST ‘Golden’, ‘Soda Pop’, ‘Your Idol’, ‘How It’s Done’ 등은 글로벌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음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단순한 K-POP 배경이 아닌 영화

국악인으로서 이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단순히 K-POP을 배경으로 한 상업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 전통문화가 깊이 있게 작품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공예, 신앙, 패션, 음식 등 다양한 요소가 이야기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콘서트 전에 컵라면을 먹는 모습 @넷플릭스
중국, 일본 등 혼합적 컬처를 배제하다

특히 이 영화는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흔히 서양에서 동아시아 문화를 다룰 때 사용하던 ‘아시안 컬처’식 혼합적 묘사를 철저히 배제했다. 한국의 인사동, 한양도성, 대중목욕탕, 골목길, 매듭 장식과 같은 디테일이 제대로 고증돼 표현됐다. 이는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과 다수의 한국인 제작진의 참여 덕분이지만, 동시에 K-컬처가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소파에서 내려와 식사하는 한국인만의 문화도 같이 넣었다 @넷플릭스


작품의 줄거리는 악마 대장 귀마와 그의 부하들로부터 사람들의 영혼을 지키는 K-POP 걸그룹 ‘헌트릭스’의 이야기다. 귀마의 부하들은 저승사자를 형상화한 다섯 명의 존재로,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결성해 팬들을 홀리며 힘을 키운다. 주인공 루미는 이들과 맞서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우리만의 요소

한국적인 요소는 작품 전반에 촘촘하게 배치됐다. 특히 민화 호작도의 호랑이와 까치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 더피와 서씨는 전통 상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다. 호랑이는 악귀를 막는 수호령으로,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여겨졌다. 작품 속에서 더피와 서씨는 메시지 전달자 역할을 하며 이야기의 핵심을 잇는다.

민화 속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더피와 주인공 루미@넷플릭스
저승사자와 사자보이즈

또한 남자아이돌 그룹 ‘사자보이즈’는 전통 민간신앙의 저승사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저승사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전령자로, 영화는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국악인으로서 이런 전통 상징들이 낯설게 소비되지 않고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는 것을 보며 큰 의미를 느꼈다.



저승사자 모습의 사자보이즈@넷플릭스
사인검의 상징성과 깊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루미가 사인검(四寅劍)을 꺼내는 장면이었다. 사인검은 인년·인월·인일·인시에 맞춰 제작해 호랑이의 기운을 담는 왕실의 칼로, 절대적 권위를 상징한다. 검에는 하늘 전체를 의미하는 동양 전통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영화에서 루미가 이 칼을 꺼낼 때, 그것은 단순한 전투 행위가 아니라 ‘나라와 사람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전통의 깊은 의미를 현대적 맥락에 연결해낸 대목이었다.

주인공 루미의 사인검 @넷플릭스
걸그룹의 역사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한국 걸그룹이 역사가 그대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저고리시스터즈부터 김시스터즈,SES까지 지금까지 이룬 것이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닌 서사가 있다는 내용을 전달한 것이다.


한국 걸그룹의 역사를 보여준 모습 @넷플릭스

전통문화와 문화적 주권에 대한 메시지

중국 일부 누리꾼들은 영화 속 전통 건축, 한약, 매듭 장식 등이 중국 전통을 도용했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넷플릭스가 중국에서 서비스되지 않음에도 불법 스트리밍으로 시청한 뒤 비판 글을 올리며 논란을 키웠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고 밝혔다. 국악인으로서 이 논란을 보며, 우리 전통의 맥락을 세계에 정확히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해외의 어린이들이 열광한다는 의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는 실제 K-POP 아이돌 그룹들이 참여해 제작된 만큼,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캐릭터 서사와 맞닿은 가사로 글로벌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SNS에서는 OST를 따라 부르는 챌린지가 유행했고, 해외 팬들은 영화 속에 등장한 전통적 요소들을 공유하며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더피와 서씨 같은 전통 모티브 캐릭터는 해외에서 밈(meme)으로 확산되며 한국의 신화와 민화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다. 국악인의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세계인의 생활 속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는 것은 특별한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해외의 어린이들까지 열광한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한국 문화가 이렇게 자리 잡는다면, 이들이 성장한 뒤 우리 문화는 그들에게 더욱 빛나는 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안 할 수가 없다.


전통은 미래로 이어지는 다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순한 K-POP 팬을 위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한국적인 것의 힘과 매력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국 전통문화가 얼마나 세련되고 풍성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악을 하는 입장에서, 이 작품은 전통을 과거에 묶어두지 않았다. 전통을 현재의 이야기로 끌어내어 세계와 연결했다. 앞으로 더 많은 콘텐츠가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 무대에 올려주길 기대한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이어지는 다리라는 사실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다시 한번 증명해주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시청하시기를 추천해 본다.


주인공인 조이, 루미, 미라 @넷플릭스

PS: 이전에 한국 트로트 및 저고리 시스터즈 관련된 글도 기록했습니다. 같이 보시면 더욱 풍성한 내용으로 전달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관련 브런치 글>국악 출신이 트로트계를 휩쓰는 이유


<방송링크>

https://youtu.be/1t4ImPdACYc?si=SKGMzl58RdVaoX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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