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이를 먹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십대의 어느 날엔가, '스트릿 패션지'라 불리는 부류의 잡지를 보고 있었다. 정직하게 사등분 된 종이 위에 길거리에서 찍어온 날것의 옷차림과 두세줄의 짧은 인터뷰만 담아낸 담백한 잡지였다. 그 책에서 이제 서른이 되었다는 어떤 남자의 사진을 보았다. 노란 워커에 롤업진, 맨투맨 티셔츠에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생각했다.
'서른에도 이렇게 입는다고?'
지금 떠올려보면 웃기지만 그 때는 그랬다. 서른쯤이면 대개 하얀 셔츠를 입고 회사를 다니며, 조금 이르면 결혼도 해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온실속 화초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상물정은 하나도 모르는 철딱서니였다. 서른이면 주말에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 정도는 아니더라도, 캐주얼한 구두 정도는 신고다녀야할 줄 알았다. 법적 성인으로 인정받는 이십대를 지나서 진짜 어른이 되는 나이라고 오해했다.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이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인생인 줄 알았다. 우습게도,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나 뭔가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나이를 먹은
가끔 나이 서른에 옥탑방에 살면 인생 막장인 줄로만 알았던 나의 이십대를 돌이켜보면, 다섯평 옥탑방에 들어오기 위해서 보증금을 빌리고 월세에 허덕이는 오늘에 웃음이 난다. 아주 가끔씩은 친구들보다 일찍 복학을 해서 수업이 마치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했던 복학생 시절처럼,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나만 배회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글프지는 않다. '서른에 어울리는 옷차림' 따위가 없었던 것처럼, 서른의 인생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