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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부꾸미 Feb 05. 2022

시댁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주는 거예요

시댁 근처 카페에서 겪은 일

나는 정녕 프로불편러인 것인가.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불편을 느꼈다. 명절에 시댁에서 아침을 먹고, 큰맘 먹고 시어른들 허락 하에(커피를 즐기지 않으시는 어른들이라 돈 주고 커피를 밖에서 사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하셨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러 나온 카페에서였다. 카누가 아닌 커피가 간절히 먹고 싶었던 나는 비교적 비싸지 않은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를 찾아내고는 다녀오겠다 마음을 먹고 나섰다.


그렇게 찾아간 근처 카페에 들어서자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사장님이 친절히 맞아주셨다. 난 무조건 커피파라 커피를 먼저 주문하고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쇼케이스 냉장고를 보니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듯한 각종 청들이 있었다. 직접 담그신 건지  묻는 것을 시작으로 사장님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카페 안 곳곳에 사장님의 애정이 담긴 소품들이 가득하였다. 직접 손뜨개로 만든 인형에서부터 프랑스 자수를 둔 식탁보, 따님이 어렸을 적 만들었다는 도자기 장식품까지.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자 사장님이 먼저 친근하게 물어보셨다.

"여기 근처 사시나 봐요~"

"아뇨 그건 아니고, 명절이라 시댁에 왔다가 들렀어요."

"아이고, 그렇구나. 새댁이 고생이 많겠네."                                                                                                                                               

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쿠키 하나를 내미셨다.

"시댁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주는 거예요. 호호."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하고 내 귀를 의심하였다. 시댁에서 열심히 일하라니?

"네?"

"시댁에서 일 열~심히 하시라고. 전도 부치고 해야 할 일 많을 거 아니야."

다시 한번 '열심히'라는 단어에 강조를 주며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아, 예. 잘 먹을게요."


휴. 왜 며느리는 명절에 시댁에 가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한 것일까. 나는 왜 돈을 내고 소비를 하면서 같은 여성에게 이런 불쾌한 말을 듣고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는가.(쿠키를 서비스로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사장님이 절대로 나를 불쾌하게 하고자 하셨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장님은 앞으로 시댁에서 힘들게 전을 부쳐야 할 나(그렇지만 나의 시댁에서는 차례를 지내지 않아 전을 부치지 않는다.)를 위해 오히려 힘을 실어주고자 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그 나이대의 중년 여성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사고이다.



나부터도 그러하고 요즘 시대에 결혼하는 젊은 여성들은 결혼 후 마주하는 현실에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는 남자 형제가 있다면 남자 형제와 동일하게, 없다고 하더라도 남자 또래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자라왔을 것이다.(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의 경우) 집에서의 경제적 또는 비경제적 지원을 비롯하여, 사회에서도 '남녀평등'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들어왔을 터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는 조금 달랐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인데, 이를 책으로도, 영화로도 접한 나로서는 콘텐츠에 공감하는 부분이 꽤나 있었다. 82년도쯤 출생한 여성들이 어릴 적부터, 사회인이 되어서도 겪어온, 게다가 육아를 도맡는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는 심화 버전으로 겪게 되는 사회의 편견.

나의 경우는 82년도보다 조금 뒤에 태어나서인지 그나마 어릴 때 가정에서 겪었던 편견은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겪은 편견은 별론으로 하고.) 그런데 이것이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180도 달라졌다. 일례로 상견례 자리에서 나의 친정어머니가 하신 말씀.

"우리 딸이 아직 김치도 담가본 적이 없어서요. 많이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아니, 왜 여자는 김장을 안 해봤으면 결혼할 때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것인지. 아마 친정어머니는 옛날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겸손과 예의의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시리라. 결혼 이후부터 35년간 제사와 차례를 지낸 친정어머니를 보며 자라온지라 어머니의 생각과 의도는 백번 이해를 하지만, 나로서는 상견례 자리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 나의 어머니 또래이신 카페 사장님도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리라 생각하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사장님 시대에는 그랬겠죠.
요즘 시대에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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