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유랑쓰 순례길 브이로그를 보고
요즘 최애로 즐겨보고 있는 여행유튜브 유랑쓰. 쌓여있는 영상들을 돌려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썸네일을 통해 순례길의 결말이 포기란 것을 미리 알아서인지, 단순히 재미만 있을 줄 알았던 브이로그인데 나에게 큰 생각거리를 던져주어서 그 생각을 이렇게 글로 남겨보기로 마음 먹었다.
워낙에 매력 있는 부부라 초입부터 쉬어가기, 틈만 나면 맥주나 와인 마시기, 버스 타고 다음 숙소로 이동하기와 같은 행동에 절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유쾌한 부부랄까.
순례길 브이로그 중에 타파스 생일 파티라는 제목이 있어서 순례길 걷는 도중에 생일이 끼어 있어서 소소하게(?) 타파스로 생일 파티를 했구나 생각을 하고 영상을 보았는데, 역시 그들이었다. 나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일주일간 에어비앤비에 숙박하면서 하루 타파트 투어를 하는 것이었다. 순례길 중간에 일주일 에어비앤비라니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순례길을 걷는다고 하면 왠지 그동안에는 절제하고 인내해야 할 것만 같고, 중간에 생일이 있더라도 딱 하루 정도 쉬어갈뿐이지 그 이상으로 긴장을 놓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시간에 쫓겨 생활하는 나만의 문제일뿐, 다음 일정이 정해져 있는 않은 세계여행자에게 순례길 걷기는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내야할 어떤 과업이 아닌 것이다. 체력적 한계가 느껴진다거나, 아니면 그냥 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에도 언제든지 원하는만큼 쉬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다시 시작한 그들의 순례길 여정은 당연하게도 순탄치 못했고, 며칠 뒤 중단을 선언하였다. 아내분은 '비우려고 시작한 순례길인데, 자꾸 채우려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아직 아닌가보다.'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 즐거워하는지와 같은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목적인 것이다. 순례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욕망과 같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길이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나와 친해지고 나를 알아가는 길이면 충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아내분은 절제하고 인내하는 삶보다는 좀더 편안하고 누리는 삶이 본인에게 잘 맞다는 사실을 한번 더 깨달으셨을 것 같다.
나였으면 800km가 되는 순례길을 완주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은 진정 800km를 완주하려고 시도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본모습을 좀더 발견하게 되신 듯하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과 시도는 해본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하물며 완주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들이 순례길 여정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 순례자들처럼 어떤 특정 구간만을 걷는다거나, 아니면 아무 목적지도 정해놓지 않고 나의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데에까지 걷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떤 이유에서는 800km를 완주할 수 있을거라고 믿고 시도를 하였다면, 중간에 절대 포기를 못 했을 것 같다. 어떻게해서든 800km를 완주하려고 하였을 거고, 만약 도중에 체력적 한계로 인해 포기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나를 자책하고 원망하였을 것 같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그러한 결심마저도 유쾌하다. 더이상 그 길을 걸어야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고 그것을 너무 무겁게 여기지만도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부부의 순례길 여정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포인트였다.
나는 너무 인생을 심각하고 무겁게 여기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돼도 저렇게 돼도 결국에는 다 별일 없이 넘어가지는 것인데, 한번 실패하거나 포기하면 인생이 무너지는 것마냥 너무 크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사실 별일 없이 넘어가지는지 여부는 나의 마음 먹기 나름이다. 내가 그 일을 별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not a big deal'의 자세를 가지는가.) 나이를 한살한살 먹을수록 가볍게 사는 연습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 즐겁게만 살기에도 짧은 인생, 나는 너무 많은 의무와 책임을 느끼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 혹은 그것에 영향을 받아 내가 나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에 짓눌려 진정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누리는 데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이 브이로그를 보기 전에 마지막편 썸네일을 보고 든 '아 이 순례길 여정의 결말은 중도포기이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여정은 여정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뇌인다.
"힘들고 지루해서 포기하려다가도 힘내라고 다시 예쁜 길이 펼쳐지는 곳"
나도 나의 몸과 마음이 이끄는대로 언젠가는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