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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Aug 04. 2023

무서운 여름 비

<우중괴담(미스다 신죠)을 읽고>

 비가 오는 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자. 아주 간단한 심리 테스트다. 공신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재미도 종종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에 종이가 있다면 3분 정도를 들여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뭐 댓글에 그림을 올릴 수도 없거니와 혹시 그러한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당신의 그림을 볼 수는 없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도 괜찮다. 이다음 문단에 그림의 해석법을 적어놓으려고 한다. 한 문단 만에 스포일러가 예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자 다 그렸는가? 그럼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이 테스트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판단할 수 있다. 비의 양을 보면 현재 닥쳐있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알 수 있고, 그림 속 자신이 얼마나 젖었는지 보면 스트레스 대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우산을 쓰고 있거나 우비를 입고 있다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 속 자신의 모습보다 풍경 그림이 더 자세하거나 크다면 스트레스의 외부 요인을 생각해 봄직하다. 만약 물웅덩이가 있다면 고정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나. 창밖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풍경으로 책을 읽는 모습이다. 나의 스트레스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위를 식히지 못했던 주말의 폭우 속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에 대해 꺼내보고자 한다.


 여름은 도대체 왜 괴담과 어울릴까? 어린 시절 나의 주말 저녁을 책임져주었던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해 보면 공포스러운 콘텐츠는 우리의 몸의 열을 오르도록 만드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여름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뭇잎과 벌레, 하다못해 코로나 바이러스마저 활동성이 늘어나는 이 여름에도 지나야 하는 어둠의 시간은 짧디 짧다. 더울 때 더욱 더운 걸 먹듯 어두운 밤에 접하는 어둠이 우리의 여름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스다 신죠의 우중 괴담이라는 단편소설집의 서술 방식은 탁월하다. 일본의 공포 소설가로 유명한 저자가 주변인이나 독자에게서 들은 괴담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묘한 현실감이 깃든다. 마지막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중 괴담이라는 소설은 앞서 잡지사에 투고했던 네 가지의 괴담을 읽은 과거의 직장 동료가 비가 올 때마다 들었던 괴담과 저자의 앞선 괴담을 연관 지으며 섬뜩함을 선사한다. 전혀 달라 보이는 단편소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잇는 재능은 이 작가의 특별한 장점이다. 대만, 홍콩 작가들과의 앤솔로지 작품을 마무리 짓던 실력 덕에 뇌리에 박혔던 작가의 이름이 여름마다 선명해질 것만 같다.


 여름이 그러하듯 비가 오고 나면 세상이 더욱 선명해진다.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서이기도 하고, 금이 가 있던 뚝이 무너져 가장 취약한 사회의 어딘가가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비는 스스로의 마음을 비춰볼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만든다. 어쩌면 공포란 창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즐기는 운치에 우산도 우비도 없이 창밖에 서있는 이를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사실 얼마 전에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단 한 문장이 나를 공포에 떨도록 만들었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있을까?"


 그는 이미 빗물에 홀딱 젖어 있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표정 속 눈시울부터 시작된 폭우에 목소리까지 눈물로 잠겼다. 순간 창백해졌을 나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안심하며 목소리를 다잡았다. 내 눈가에는 빗방울 하나랍시고 무겁게 드리웠지만 무너진 댐 앞에서 나는 다만 지금껏 몰랐던 그의 스트레스를 받아내고 싶었다. 알량한 죄책감일 뿐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 했다. 그것은 다만 창문을 열고 그의 사정을 살펴보는 정도밖에 되지 못했음을 안다. 내게 있어서 가장 공포스러운 상상은 지금껏 마르지 않는다. 한번 빠진 생각이 깊어지면 잠기게 되고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겨우 빠져나왔다고 하더라도 여름은 원래 습하다. 비가 자주 오다 보니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원래 그런 때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 척척한 옷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리석어 보일 생각이나마 밝힌다. 이 여름에 세상이 이토록 선명할 때 나의 시아가 여전히 흐린 것은 다행일 수도 있다. 천장의 곰팡이도, 징그러운 벌레도 지평좌표를 용케 고정하고 있을 귀신도 볼 일이 없으니 무섭지 않다. 흐린 것이 있다면,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그만이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생존본능에 각인된 공포가 유희의 한 종류가 된 이 시대에서 바람이 우리의 젖은 몸을 말려줄 것이다. 부디 더 이상 폭우가 없기를 혹여 있을 비라도 우산 없이 맞을 그 비마저 시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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