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매일 새벽 김밥 싸는 요리사


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얼마 전, 실신을 했다. 그때 두개골이 골절되며 후각과 미각의 신경세포가 끊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냄새도 맡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눈과 귀는 아직 싱싱하니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내가 요리사라는 거다. 하루 3번의 밥을 해야 하는 요리사. 

그렇다, 난 엄마다. 이것이 문제다. 

   



몸 곳곳 각기 다른 전문 병원을 다니는 와중에도 매일 2번은 요리를 해야 한다.

된장국을 끓일 때도 1시간 이상 멸치육수를 내야 하는, 요리에 진심인 나였기에 간을 못 맞춘다는 것은 

전시 상황과 같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나의 단골 고객은 세 명이다.  

맵고 짠 음식을 안 먹는 남편님과 매운 걸 못 먹지만 매운 음식을 찾는 첫째님, 탄수화물만 선호하는 둘째님. 이렇게 세 명이다. 지금까지는 이들의 주문에 맞춰 각기 다른 음식을 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럴 수는 없다. 

방법을 바꿔야 한다. 일단, 나를 위해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간을 못 봐도 만들 수 있이어야 한다. 또, 각기 다른 입맛의 세 명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 아침 어떤 요리를 해야 할까.      




“따라라라~” 갑작스러운 벨소리에 깜짝 놀라 핸드폰을 보니, 동생이다. 

“언니, 몸은 좀 어때?” 안부를 묻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말했다.

“우리 가게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게 됐어. 그래서 내일 박하선 씨가 온다는 거야.” 

“와~ 너 내일 이쁘게 하고 가. 혹시 엑스트라로 나올지 모르잖아. 그리고, 박하선 씨랑 사진 찍으면 나한테도 보내주기다~” 동생네 가게에서 드라마 촬영을 한다는 소식에 괜스레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보통 예쁜 카페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겠지만, 동생네 김밥천국은 카페보다 예쁘다. 그러니 드라마 촬영도 할만하다. 

오, 김밥? OK, 김밥. 앗싸, 김밥!




김밥이라면 단골 고객 셋을 만족시킬 수 있고, 간을 못 봐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당근과 어묵은 채 썰어 

살짝 볶고, 햄은 굽고, 계란은 부치고, 크래미는 찢어놓고, 우엉조림과 단무지를 준비하면 된다. 고슬고슬한 밥과 재료를 김에 돌돌 말면 끝. 어찌 생각하면 번거롭고, 다르게 생각하면 또 간단한 음식이다. 

김밥을 생각하고 보니, 맛을 못 느껴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더 있었다. 

수육, 부침개, 잔치국수, 볶음밥, 불고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더니, “감사합니다. “ 눈물이 흘렀다. 

우리 집의 요리사는 나다.

간의 감을 잡을 때까지는 간을 안 봐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나의 고객들에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이른 새벽 나는 김밥을 싸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방귀 냄새 못 맡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