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을 하면 좋은 점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 따로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통 크게 기부하는 간지 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른 살 가까이 나이 들어보니 그런 간지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스물아홉의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키다리 아저씨가 되려면 키가 컸어야 했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성장도 멈췄다. 나의 키다리 아저씨 프로젝트는 초장부터 조졌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내 삶이 많이 충족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충족되지 않은 지금,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내주는 것이 생각한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런 점에서 헌혈은 꽤 쉽다.
전자 문진부터 회복까지 30분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가능하며, 따로 ‘돈’이 들지도 않는다. 헌혈이 건강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나눔의 형태임을 인지한 순간부터 8주의 전혈 주기마다 하고 있다. 이렇게 헌혈을 자주 하는 것에 대해 혹자들은 왜 그렇게 자주 하냐, 피를 그렇게 많이 뽑으면 위험한 것 아니냐고 질문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헌혈을 꾸준히 하게 되면서 오히려 헌혈할 이유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우선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생각보다 헌혈을 하는데 필요한 건강 관련 조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저혈압, 고혈당이나 저혈당이면 안되고, 과도한 음주로 간수치가 지나치게 높아서도 안된다. 내 주변 20대 후반 남성들 다섯 중 적게 잡아도 세명은 복용하고 있는 탈모약을 복용 중이어도 안되며, 피부 미용 또는 바디 빌딩 목적으로 스테로이드성 약물을 복용하고 있어도 안된다. 수술이나 입원 등 특정 약물들이 포함된 치료를 받으면 당연히 안될뿐더러, 철분이나 단백질이 부족해도 하기 어렵다.
실제로 30대 이상부터는 남성 헌혈 비율이 급감하는 현상은 남성이 헌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오히려 헌혈을 주기적으로 함으로써 건강검진 주기보다 피검사를 자주 하게 되어 건강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는 선순환 역시 챠밍 포인트다.
생각보다 많은 사은품 역시 헌혈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혈액은 자연산 다금바리와도 같다. 싯가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매일 혈액 보유 현황을 통해 혈액형 별로 싱싱한 혈액이 얼마나 잡혔는지 공시한다. 따라서 혈액의 부족 여부에 따라 사은품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요즘은 싱싱한 O형 자연산 혈액이 꽤나 귀해졌는지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 영화관람권 2매까지도 나누어 주더라.
헌혈을 한 직후에는 반드시 15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있는데, 그때 주는 초콜릿맛 과자와 음료수 역시 꿀맛이다. 특히 당분 보충을 위한 Thin 다이제를 한입 베어 물고 함께 나눠준 철분 고함유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면 더할 나위 없다. 뽑힌 500ml의 혈액이 그 즉시 채워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쌈뽕한 기념품들을 받기 위해서라도 헌혈을 할 유인은 충분하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헌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고 싶다.
현재 도합 15회를 달성했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헌혈을 할 생각이다. 이렇게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히 하다 보면 30회 달성 시 주어지는 은장 유공패, 50회 달성 시 주어지는 금장 유공패까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츄릅
자신을 위해서도 또 다른 이를 위해서도 값진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헌혈을 해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