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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해용 Aug 10. 2023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행복이란 퍼터를 쥐고 그린까지 먼 거리를 걷는 것이다.   - 그렉 노먼

  박인비가 2016 리우하계올림픽 여자 골프 4라운드 18번 홀에서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확정 지으며 환호하고 있다.(사진=뉴스 1)


당나라 시인 두보는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 장부의 일은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정해진다.”라고 했다. 사람의 일은 관 뚜껑을 덮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괴테도 명작 ‘파우스트’를 60세에 쓰기 시작하여 82세에 탈고했고,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은 70세 이후에 이루어졌다. 미국은 2011년에 정년제도를 아예 없애버렸다. 능력이 있고 조직이 원하면 계속 일할 수 있다. 은퇴했다고 내 인생의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은퇴는 별로 의미가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인생 역전의 희망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정년 나이가 지나도 개인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청장년 때보다 탁월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 사회에 더 기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과욕을 부리다가는 노욕이라는 상처와 수치심만 남게 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미국 야구의 전설적인 뉴욕 양키스 포수 출신인 요기 베라가 시합이 끝날 때까지 선수들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해서 명언이 되었다. 농구의 쿼터 종료 직전에 날려서 공이 날아가는 중에 버저가 울린 슛을 버저 비터(buzzer beater)라고 한다. 쿼터 종료 버저가 울린 시점에서 선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 있었다면, 쿼터 종료 후라도 골대에 들어가면 득점으로 인정된다. 버저 비터뿐만 아니라 야구에서의 끝내기 안타, 축구의 골든 골, 각종 스포츠에서의 막판 역전으로 승패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고 그 짜릿한 극적 효과는 대단하다. 그래서 승자나 패자나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2021년 테니스 프랑스 오픈에서도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는 남자 단식 결승에서 4시간 11분 접전 끝에 스테파노스 치치파스에게 세트 스코어 3:2 역전승(6-8, 2-6, 6-3, 6-2, 6-4)을 거두었다.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첫 두 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내리 3세트를 뒤집어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조코비치는 “결승에서 먼저 두 세트를 내줬을 때 ‘이제 끝났다.’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직 안 끝났다.’라고 자신을 격려하면서 버텼다.”라고 말했다.


골프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2019년 KLPGA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도 조정민 프로가 7타 차 열세를 딛고 역전 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를 하여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2위를 1타 차로 이기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0년 8월 23일 KPGA GS칼텍스 매경오픈 대회에서 이태희 프로는 15번 홀(파 4)에서 4홀 남기고 선두에게 3타 뒤지고 있었다. 그린 주변 러프에서 칩샷을 버디로 연결하더니 16번 홀에서는 3.5m 버디 퍼트를 성공해 1타 차로 압박했다. 가장 어려운 홀인 17번 홀과 18번 홀에서 어렵게 파를 지켜낸 반면, 선두는 끝내 지키지 못하고 연속 보기를 하여 승부가 뒤집히고 말았다. 이태희 프로는 2019년 GS칼텍스 매경오픈 대회에서도 5홀을 남기고 2타 차로 지고 있다가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고서 3차 연장에서 이긴 경험도 있다.


2021년 LPGA 메이저대회 US 여자오픈 대회에서 역대 두 번째로 10대 챔피언이 된 필리핀의 천재 소녀 유카 사소도 마지막 날 렉시 톰프슨에게 1타 뒤진 2위로 출발했다. 2·3번 홀을 연속 더블보기를 해서 우승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5타 차 선두를 달리던 톰프슨이 후반 11번 홀 더블 보기에 이어 14번 홀과 17·18번 홀 보기로 스스로 무너진 반면, 사소는 16·17번 홀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역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하타오카 나사와 연장 3번째 홀에서 3m 버디를 성공시키며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 대회에서 통상 예선 첫날이 아닌 2일 차나 3일 차를 무빙데이(moving day)라고 한다. 선수들의 점수가 많이 이동하기 때문에 첫날의 상위 성적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선두로 우승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경마에서 유래된 용어로 부정 출발을 방지하기 위해 철사 줄(wire)을 출발선과 결승선에 설치한 데서 비롯)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골프에서는 마지막 홀에서 점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경기가 계속 진행되다 보면, 한두 타 차이로 선두였던 선수가 오히려 심적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짧은 거리 퍼트를 실수하는 등 난조로 역전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인생에서 관뚜껑에 못 박기 전까지, 골프에서 시합이 끝나는 마지막 홀 컵에 볼이 떨어지고 장갑을 벗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도중에 포기하지 말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여튼 끝까지 희망을 움켜쥐고 최선을 다할 일이다. 인생 1막에서 일단 은퇴했던 나는 지금 다시 2막을 지나고 3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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