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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Oct 24. 2015

[부산] - 국제시장에는 국제시장이 없다.

2015 열아홉살의 일본 





대한민국 부산

2015.01.14











이제 열아홉살이 되는 예비 고3에게 겨울방학은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누군가는 지금 이 시기를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럴수록 FM대로의 수능공부가 아닌 여행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의 그릇을 넓히고 싶었다. -> 물론 생각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하게 된 첫번째 프로젝트가 국토대장정 히치하이킹 여행이었고, 두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이번에 포스팅할 일본 여행기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리고 포스팅을 시작하기까지도 두 달이 걸렸다) 비행기표 예약을 시작으로 난생 처음으로 가이드북을 구매하기도 했고 중간고사 노트정리도 아닌 여행정보 노트정리를 작성하기도 했으며 간사이 스루패스나 오사카 주유패스 같은 패스들과 이름이 어려워서 차마 외울 수가 없었던 교토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익숙해질때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기요미즈데라는 뭐고 호칸지는 무엇이며 네네노미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면서.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기본 바탕이 있었기에 지금의 2주간의 여행이 존재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부산이었다. 경기도에 사는 내가 말끔하고 큼직한 인천공항을 냅두고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려 한다니. 사실 그럴만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로 비행기값이 인천에 비해 부산이 훨씬 쌌다는 것, 두번째로는 히치하이킹 여행의 종착지가 강원도 고성이었다는 것 (아니 잠깐만 강원도에서는 인천이 훨씬 더 가깝잖아) 세번째로는 김해 사는 친구 수정이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는 것 -> 사실 이게 제일 크긴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행이 끝날때까지 여행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는 것. 귀국할 때 인천 도착으로 해버린다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하다보니 여행의 연장선을 어떻게든 길게 늘어뜨리고 싶은 내 마지막 발악이었다. 표 값 차이가 고작 1만원 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동네는 한겨울에도 비가 온다. 1월 중순에 비바람이라니! 여긴 부산이다. 알고 있다. 서울 사람들 눈 지겹다며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날릴 때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이라며 환호성을 지르는 부산이다. (물론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진 않을것이다) 그래도 비는..... 좀 더 많은 생각들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다가 무슨 북태평양 기단이 여섯달 일찍 들이닥쳤는지 덥기는 미친듯이 덥고 습도는 하늘 찌르는 줄을 몰랐다. 역시 남쪽이라서 그런가... 북쪽 패션입고 아무 생각없이 온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그냥 가만히 있기로 다짐했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남포동 근처였었다. 남포동. 남포동하면 국제시장이었고 국제시장하면 영화였다. (한창 국제시장이 흥행하던 때였다) 비도 오고 비행기 시간까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영화나 한편 볼까 했는데 이게 웬걸.... 안타깝게도 다음 영화의 시작 시간은 오후 3시였다. CGV도, 롯데시네마도, 믿었던 대영시네마 마저도. 그래도 일본으로 떠나는 날인데 영화 한 편은 볼 수 있을줄 알았는데. 상영 시작 시간을 제대로 알 지 못한 내 탓이다.  2주 있다가 다시 돌아오면 그땐 꼭 봐야지. 근데 그때도 상영하고 있을라나....











영화시간 따위 알지 못한 멍청이에겐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라고 말하니까 뭔가 벌칙같잖아. 영화를 보는 대신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더위도 식히고 히치하이킹 여행일지도 쓰고 생각정리도 할 겸 겸사겸사. 글쓰기와 사정없이 뿜어져나오는 설렘을 누르는데 집중하다보니 아무도 없던 카페에 사람들이 차기 시작하고 어느새 3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공항이다. 드디어 공항이다. 사랑과 설렘과 낭만으로 가득한, 그리고 오사카로 실어 날라줄 비행기가 있는 공항이다. 출발 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도착한 나는 일단 티켓팅을 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에 카페에 가서 글을 쓰든 태어나서 처음 와본 김해공항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카페는 어디에 있는지, 커피의 가격대는 얼마 정도 하는지, 핸드폰을 충전시킬 수 있는 콘센트는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열 댓번의 제주도로 점철된 나에게 있어 티켓팅은 더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운터 앞에 서서 "저...저기... 비행기표 예약했는데요..." 하면서 오들오들 떠는 초짜가 아니란 말이다. 누구보다 더 여유롭고 기품있는 표정으로 여권을 건넸다. 자 여권 여기 있으니까 알아서 티켓 좀 뽑아줘 (물론 저 정도로 건방지진 않았을것이다) 그럼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이다.


"저기 혹시 핸드폰에 있는 예약 내역 좀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 달 전에 바꾼 핸드폰에 문자내역이 있을 리가 없고 그나마 이메일함에 예약 내역이 남아있긴 한데 두 달 전에 받은 메일을 어느 세월에 찾으러 간단 말인가. 하지만 뭐 어떡해, 찾아야지. 쌓이고 또 쌓여서 끝도 없는 스팸 메일을 뒤지고 또 뒤지고 나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12페이지였나 13페이지였나.. 이대로 쌓아놨다간 도서출판 제의 메일같은 중요한 메일마저도 받지 못 할 것만 같았다.











(여권에 꼽아놓으면 꽤나 뽀대나 보이는) 국제선 티켓이라니! 맨날 영수증처럼 생긴 제주행 티켓만 받아봤었는데 국제선 티켓이라니! 내가 진짜 해외로 나가긴 하는구나 사실 남포동에서 커피를 마실때만 해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냥 일본으로 가나보다 했을 뿐 마음에 와 닿는다거나 오늘 내로 오사카 도톤보리를 활보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현실이라고!! 우후!!!!! 세번째로 가는 일본이지만 왜이렇게 설레는건지. 하기야 뭐 제주도 열여섯번 가도 맨날 설레했으니까 그럴만도 하긴 하겠다. 암튼 나 일본 간다고!!!! 우후!!!!


이젠 제법 익숙해질법한 수속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른건 다 좋아, 다 가지고 들어가도 좋아. 근데 물을 들고 가시겠다?? 폐기처분하거나 원샷을 하거나. 난 개인적으로 폐기처분하길 바랬었지만, 내 손은 이미 물병과 함께 주둥아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벌컥벌컥. 저 많은걸 진짜로 마시고 있을 줄이야. 뒤에 있던 아저씨는 천천히 마시라며 허허 웃었고, 내 목구멍은 마지막 물 한 방울까지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들리는 말이라곤 경상도 사투리가 전부였다.

이때만큼은 사투리가 진심으로 그들만의 언어로 느껴졌다.


비행기 이륙 30분 전, 사랑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전화 한 통씩 하기로 했다. 그렇게 먼 나라는 아니지만 14일이라는 시간동안 타지에 나가 있는데, 마지막으로 전화통화는 해야지. 엄마, 아빠, 할머니, 연지, 대광이, 수정이... 그리고 전화를 걸진 못했지만 페북으로 응원 댓글 남겨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여행자로서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이 있었기에 힘든 상황에서도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줄이 한 시라도 빨리 짧아지기를.

그리고 얼른 내 순서가 다가와 저 문을 통과하기를.











외항사답게 일본인 승무원과 일본어로 된 메인 안내방송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이미 일본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승객의 90%가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상도 사람들로 이루어진 여긴 일본이 아닌 부산이었다. 그냥 부산. 보라색 탈을 쓴 에어부산임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이 비행기는 오사카가 아닌 고향인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는 아닐까, 괜스레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한 시간 반 동안 구름 속을 달린 끝에 보이는 이곳은 오사카 앞바다가 아닌 부산 앞바다는 아닐까? 했지만

처음 보는 섬들과 낯선 풍경들이 보이는걸 봐선 다행히도 오사카였다.











그래도 위도상으로 남쪽이니까 조금은 따뜻하진 않을까 했는데 이게 웬걸..... 차라리 부산이 훨씬 더웠다. 여긴 무슨 한겨울의 서울 날씨였다. 간사이 공항으로 온 게 아니라 인천공항으로 온 것 같았다. 여기 오사카가 맞긴 할까? 공항을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까지는 이곳을 일본이라고 믿지 않기로 했다. 얘가 무슨 의심병만 잔뜩 늘었나 싶기도 하지만 진짜 그러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외의 다른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사는 어느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은 아닐까 하고 믿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작년에 두 차례의 해외여행으로 그 믿음은 사그라들긴 했지만, 가끔마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린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갇혀있는 트루먼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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