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재 Jul 23. 2018

#11 인도 함피





1. 단지 무엇인가에서 비롯된 궁금어린 눈빛이 그들에게는 관심의 표현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자유롭게 쳐다볼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찰나의 스캔이 지나면 곧장 시선을 회피시킨다. 이를 테면 장사꾼, 음식팔이, 지도팔이, 창녀 - 기차 안을 오가는 이들이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괴상한 동물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들이 창녀인지에 관해선 알지 못한다. 허튼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 로부터 말이다. 우리가 시선의 자유로움을 보장받을 권리를 잃어버린 건 인도만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머리를 만지는 행위가 예의에 어긋나는지라 성감대인 귀를 만졌던 인도 남자도, 한국에서 2초 이상 시선의 마주침은 결투를 신청하겠다는 의미임에도. 인도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를 향해 쏠리고 있다.


인도인의 마인드도 마찬가지다. ‘헬로우 마이 프렌드?’ 하며 서슴없이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에 한국인 여행자들은 당황해한다. 우선적으로 친구의 정의부터 다르지 않은가. 나이가 같으며 동등한 관계, 위치에 마주한 사람을 보통 친구라고 표현하는데, 인도에서의 친구의 정의는 너무 광범위하지 않은가. 나이를 막론하고 단지 동등한 관계. 하지만 이마저도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다수가 아닌 지극히 일부의 이야기지만, 외국인과의 친구관계를 소소한 자랑거리로 이용해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동네방네 떠들어댐으로써 스스로를 을의 자리로 가게끔 자청한다. 을은 먼저 인사를 외치고, 먼저 머리를 조아린다. 상대방은 그런 을의 행동에 지쳐 자연스레 마음을 거두고 만다.


인도인과의 친구 맺기가 그리 매끄럽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단지 ‘사람’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들은 ‘신기한 외국인’을 만나고 싶어 했던 거였구나. 인도를 떠나는 날까지도 ‘신기한 외국인’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그저 우울할 뿐이다.





-





2. 새벽, 정월 밤의 어느 날. 개구리 울음소리. 여름에만 맡을 수 있는 풀내음. 오월의 포천과도 같은 곳이다. 여름날에 찾아오는 밤은 더위로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설렌다. 어떠한 이유 때문이라는, 정확한 요점을 짚을 수는 없지만 이유 없이 설레기 시작한다. 진실 되게 좋아했던 그녀가 옆에서 ‘야 너는 맨날 글만 쓰냐’면서 구박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하루다.





-





3. 아무 생각 없이, 좀 더 아무 감정 없이 격렬하게 가만히 있고픈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호스펫 역에 가서 티켓을 발권했다와 같은 큰일을 하고 온 나는 그 누구보다 더 가만히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 저녁에 헤마쿠다 힐만 조용히 갔다 오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하려한다.


문득 바라나시에서 들었던 어느 한 말이 떠오른다.

“어유, 바라나시 역이면 먼 길 갔다 오셨네.”





-






4. 여행이라고 해서 모두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초등학생 아들 둘과 함께 온 한 어머니를 보며 느낀 상념이었다. 어머니의 센 기와 부정적인 단어 가득한 언변에 아이들의 풀은 죽을 대로 죽어 함께 여행한다기보다는 통제에 이끌려 가는듯한 인상이었다. 기가 죽어서 그 누구보다 한국에 돌아가 또래들과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선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홀로 자랐던 탓에 여행만이 유일한 돌파구였지만, 저 아이들의 경우에는 충분히 다르지 않겠는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어른에 가까워져갈수록 이미 다 자란 어른들의 실수나 허점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허점들을 발견함이 못내 안타까워 얘기를 해야할까싶다가도 어른이라는 이유로, 나보다 손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짚고 갈 수 없음에 또다시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우리들의 묵인에,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을 눈치 채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업보가 되어 오랜 시간 등에 지고 살아간다. ‘사회’ 라는 폐부에 그러한 악순환은 종양이 되어 자리를 넓혀나간다. 실로 안타까운 일들의 연속이다.






-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에 심오한 곳인지라 때론 미치도록 좋아졌다가도 때론 미치도록 싫어지는, 떼쓰며 한바탕 난리를 치다가도 이내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는 어린아이, 끝없는 밀당에도 그저 좋기 만한 그녀와도 같은 곳입니다.


저는 인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리고 싶습니다. 그녀, 어린아이.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 끝나고 떠난 인도, 간략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