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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Jul 30. 2018

아메다바드, 제네럴칸. 인도

160118 아메다바드, 인도

  






야간버스를 타고 아메다바드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 4시 반, 이른 시각임에도 이미 장사진을 이룬 릭샤 왈라들에게 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탁월한 타깃이 분명하다. 고아로 가는 기차표를 끊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야하는 나에게도 이들은 절실했다.






기차역까지 50루피에 가기로 했다. 처음에 부른 값에 비하면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바이야!삡띠!기존에 불렀던 40은 아니었지만, 사실 200원도 채 안 되는 금액차이였지만. 뭐랄까, 일종의 자존심 싸움과도 같았다.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릭샤 왈라와 이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행자임을 증명하려는 이의 대립. 인도의 현실적인 물가를 알고 있다면 바가지가 쓰인 요금은 그리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싼 가격에 가려한다면 ‘가난한 나라의 장사꾼’ 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그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시킴으로써 이들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     






여느 기차역이 그렇듯 현지인들은 바닥에 모포와 이불을 깔고 커다란 짐과 가방을 두어 일종의 주거공간을 만든다. 그렇게 40여 가구가 넘는 이들이 모여 작은 군락을 하나 형성하는데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티켓을 끊고 기차를 타기 위해 모인 이들이라면 인도라는 나라엔 얼마나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유동인구 또한 어느 정도 되는지 쉬이 짐작이 갈 것이다. 한국의 명절이 매일같이 이어질 것임을,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의 허름한 기차역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섯 시 반, 공공기관이 직접 나서 그네들의 기상을 독려한다. 이를테면 티켓 창구가 문을 연다던가, 아니면 일시적인 작은 군락을 현 시간부로 해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던가. 그런 모습이 꽤나 우악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이다. 인도인들은 마치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일어나지 않고 있고, 새로 들어온 나는 눈치만 살살 보고 있다. 기차역을 나가라고 하진 않을 거 같으니 한 편으로 가 글이라도 쓰도록 하자. 동이 터 오르려면, 긴 새벽을 보내기 위해선 이만한 방법이 또 없으리라.     






짜이 한 잔으로 몸을 녹인다. 동이 터 오르자 어둠에 가려졌던 시내가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하늘 위를 비행하고 있었으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차는 큰 도로를 가득 메웠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크락-션 소리 또한 여전했다. 우다이푸르가 유럽 물 살짝 먹은 이상적인 공간이었다면, 아메다바드는 완연한 인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들른 외국인 티켓 창구에선 여전히 고아로 향하는 SL칸 티켓은 없다고 했으며 그 결과 제네럴 칸 티켓을 끊은 후 차장에게 웃돈을 줌으로써 SL칸에 하는 방법을 고안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자리는 한 두 자리 정도 남아있을 테니. 일종의 모험과도 같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속절없이 제네럴 칸으로 가야하는 위험한 모험.     






하릴없이 거리를 걷는다. 여행자가 없는 거리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기보다는, 아침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던 거 같다. 인터넷이 없어도 되는 지도를 켜곤 대략적인 시내의 중심과 그럴듯한 명소를 찾는다. 한 도시에서 봐야 할 진면모는 놓칠지는 몰라도 꽤나 일상적인 모습은 담을 수 있으리라. 이를테면 향신료 가득 뿌려진 수박 한 조각을 먹는다던가, 아니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푸리를 먹는다던가. 아메다바드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현지인들의 사소한 일상에 동화되는 거다. 수박에 향신료를 뿌린다고 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킬 게 아니라, 현지인들은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맛을 느낄까 하며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거다. 푸리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을 맞은 이들이 길거리에 앉아 푸리를 먹을 때 나 또한 마찬가지로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다. 여행자 하나 없는 도시에서 웬 생뚱맞은 한국인이 자기들과 똑같이 앉아 자기네들이 먹는 걸 그대로 먹고 있으니, 당연히 관심이 안 쏠리려야 안 쏠릴 수 없다. 친화력이 워낙에 좋은 인도인 앞에 카메라까지 든 여행자는 화제의 중심이 된다. 콜카타의 하우라 철교 밑 꽃시장이 그렇고 지금의 아메다바드가 그렇다. 인도에서 카메라만 있으면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음을.   

  





세간의 중심의 순회공연은 짜이집 4곳을 마저 돌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현지인들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건 아니었다. 해봤자 국적을 묻거나 나이, 여행 중임을 말하는 등 형식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하거나 오래도록 봐왔던 사람처럼 편하게 다가왔던 건 단순히 희소가치 있는 외국인이라는 호기심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정이라고 믿고 싶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든 외국인’ 이라는 당연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빈자리를 전전하며 SL칸에 머물기를 한 시간.

차장은 여전히 자리가 없다는 말로 매정하게 내몰았다.     






이전 여행지에서 만난 팝치는 제네럴 칸을 두고 시선강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평범한 거리를 걸어도 시선이 한 몸에 쏠리는데 하물며 좁은 공간에 욱여져 오랜 시간 가야할 기차에서 이들의 야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제네럴 칸과 SL칸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어 칸을 이동하기 위해선 다음 기차역에 내려야했다. 자본을 잣대로 객실의 계급이 나눠짐과 동시에 객실에 탄 사람 또한 신분이 나눠지는데 아직까지도 신분차별이 남아있는 인도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예상대로 출입문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 타려는 몸짓을 보이자 겨드랑이를 찌르거나 몸을 통째로 끌어내리기 시작하는데 좌석 모두가 입석으로 되어있어 빨리 자리를 잡지 않으면 꼼짝없이 서서 가야하는 객실의 특성상 꽤나 당연한 양상이라고 생각했다. 인크레더블 인도가 괜히 인크레더블이겠나. 앉을 자리는커녕 차마 서있을 자리조차 없는 곳이었지만, 세 시간 정도 지나고 큰 도시를 지나자 하나 둘씩 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 인도인이 내게 자리를 내준다. 본인이 충분히 앉을 수 있음에도 내게 자리를 내준 건 고아라는 도시까지 하룻밤을 꼬박 새야하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믿기로 했다.   

  





1. 생각해보니 나는 영어로, 앞좌석에 앉은 노인은 힌디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잘 통했던 건 과연 어떤 이유인건지. 이 안에는 언어를 초월한 인간애가 담겨져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주어진 같은 환경 속에서 똑같이 힘겹게 이겨내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나는 앞에 앉은 노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노인으로 하여금 야성 넘치는 객실에서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서로의 자리를 지켜준 것도 하나의 예시일 수도 있겠다.     






2. 영어를 못하는 인도인이 의외로 많음을 깨닫는다. 이로써 결론이 났다. 내가 만난 영어 잘하는 인도인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거다. 여행자 주변을 함께한 인도인은 진짜 인도의 모습이 아닌 꾸며진 모습이었음을. 인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해 인도라는 나라를 쉽게 본 나의 오만함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제네럴 칸의 야성을 진짜 모습이라 생각하며, 여행지에서 만나는 수려한 말재간의 이들은 거짓된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인도에 대한 오만함일 수도 있겠다.

    





3. 저녁 무렵, 기차가 뭄바이 시내를 지나자 느린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때, 자신의 집에 가까워졌는지 하나 둘씩 뛰어내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아무리 느리게 달리더라도 저렇게 뛰어내리면 위험하지 않나 싶다가도 여긴 인도라는 사실을 되뇌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맞다. 여긴 인도였다. 상식 바깥의 일을 보고도 ‘그럴 수 있어’하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나라. 정말이지 인도라는 나라의 매력은 끝도 없구나.     





4. 좁은 환경을 활용하는 사람들. 바닥에 드러눕거나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서로 합의를 본 후 다리를 뻗거나 선반 위에 올라앉거나 눕고 선풍기에 발을 뻗는 등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선반이 무너지거나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지극히 당연한 풍경처럼 느껴지는 건 도대체 어떤 이유인건지. 나 또한 마찬가지로 편한 자세를 위해 가방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하나 뿐인 가방을 사수하기 위함보다는 끌어 안을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한두 시간에 한 번 중간 역에 정차할 때 마다 새벽을 깨는 장사꾼들에 눈을 떠야했지만, 그래도 이만한 방법이 없으리라.     






동은 터 올라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 고아에는 예정 시각보다 30분 정도 늦은 여덟시가 지나서야 도착한다. 북인도와는 다른, 남인도만의 습한 공기가 올라온다. 바닷내음 또한 느껴진다면 고아라는 바닷가도시에 왔음을 말해주는 거겠지. 시내가 나올 때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차를 타라고 한다면, 고아라는 새로운 도시에서의 인연이 시작된 거겠지. 


* 책 <현실주의적 여행> 의 속편 <인도주의적 인도> 의 한 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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