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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Sep 04. 2019

<스물셋의 인도> #4

반나절 간의 부탄여행



하시마라는 부탄 국경도시 푼촐링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부탄은 정말이지 신비주의 국가였다. 그도 그럴 게 자유여행이 안 되는 건 물론 오로지 패키지여행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데, 4박 5일 일정에 100만 원 가까운 금액을 내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탄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가 아닌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왕의 정책, 바로 여행자의 수를 제한하는 거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여행자가 모여들면 모여들수록 해당 국가는 국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색이나 순수함을 잃어버린다. 특히나 경제 규모가 작거나, 물가가 저렴한 나라의 경우엔. 이미 인도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만 봐도 숙소나 상점, 릭샤만 봐도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가격의 몇 배는 뻥튀기된다는 걸. 그럼 이제 몇 배는 부풀린 값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행자들이 지불한다고 치자, 과연 이들은 그 값을 받고 만족해하며 살아갈까. 현대의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아무리 쌓이고 쌓여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돈이며, 통장 잔액의 ‘0’의 개수에 따라 울고 웃으며 돈으로부터 시작된 인간관계에 치이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이지 않은가. 돈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병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사회가 존속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히 대체할 새로운 경제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존에 자본주의의 대항마로 떠오른 체제는 모두 몰락의 길을 걸었으니.     


부탄이라고 하여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사실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입헌군주제 외엔 크게 들은 이야기가 없으니 나의 지식이 짧은 것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인도의 보호국으로 매해 인도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다 인구가 8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소국이다 보니 내수경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체제가 있다 해도 소규모라면, 국민 행복지수를 유지하는 데 큰 난관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인도 측 국경도시 자이가온행 버스를 타는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걸어서 10분 정도, 버스가 다닐 법한 큰 길가로 나오는 게 전부였다. 사실 그전에 자이가온까지 500루피에 가겠다, 릭샤 탈 거냐 하며 따라붙는 자본주의의 폐해들을 물리치는데 필요한 소모적인 행동들이 따르긴 했지만, 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향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터미널에 내려 부탄 게이트로 가는 일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터미널이 생각보다 남쪽에 있었다. 부탄 게이트 까지는 1km 정도 더 가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걷고도 남을 거리였겠다만, 배낭을 메고 있는 데다 여느 대도시를 능가하는 혼잡함과 시끄러움에 걸을 생각은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릭샤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또 소모적인 행동을 이어나갈 것인가. 인도에 온 지 채 3일밖에 되지 않음에도 이미 모든 걸 알아버린 듯 귀찮게 느껴지는 건 이전에 인도에 한 번 왔던 탓이겠다. 그냥 걷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때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 버스에서 내릴 때 잠깐 봤던 사람. 흙먼지 날리고 매연 가득한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사람. 확실한 건 그녀가 인도인은 아니라는 거였다. 인도인보다 좀 더 하얀 피부에 눈매가 짙지 않고 동아시아계 사람과 비슷한 외형. 그렇다. 그녀는 부탄 사람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녀와 같은 길을 가게 되었다. 경적이 끊이질 않는 혼잡한 상황 속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여간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되었든 푼촐링까지 같이 갈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나에겐 무지의 세상이 그녀에겐 그저 일상이겠구나. 합승 릭샤에 오르자 5분도 채 안 되어 부탄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별다른 출입국절차 없이 마주할 수 있는 부탄, 육로국경이 없는 한국이다 보니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 또한 생소한데 출입국절차가 없어도 그냥 들어갈 수 있다니. 물론 국경도시 푼촐링에 한해서만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고, 수도 팀푸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는 수속절차나 비자까지 일일이 확인한다고 하더라. 어차피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검사하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나라가 바뀌었고 분위기가 바뀌었으며 신기하게도 이 동네 차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시내 한복판엔 곰파(불교사원)가 있고 건물 한편에는 국왕 내외 사진이 걸려있는 게 영락없는 부탄이긴 한가 보구나. 새로운 나라에 왔다고 사진을 연신 찍는 내 모습이 이곳 푼촐링에서 직업을 가진 Princella의 눈에는 꽤나 신기하게 보이긴 하겠다.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고, 어디를 갈까 하다가 악어가 있는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동물원이라, 정말이지 현지인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를 소박한 동물원이었다. 좁은 통로 좌우로 철조망 밖의 연못이 여럿 있었고, 그 연못엔 악어가 여럿 살고 있었다. 진짜 악어가 있긴 있구나. 철조망 속의 악어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시민들의 힘으로 무너뜨린 독재정권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님이 왜 악어 보고 무서워하십니까… 님이 먼저 가자고 했잖아요… 얘네가 암만 움직이고 입을 벌려도 님 안 물어요….     



진짜 악어가 있긴 있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채소시장이었다. 여느 채소시장이 그렇듯 감자나 오이 토마토 같은 채소나 사람들이 오가는 정겨운 분위기는 한국의 것과 비슷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한국의 곶감처럼 채소나 과일 같은 걸 말려 줄에다 대롱대롱 묶어놓은 무언가를 샀는데 처음에 비주얼 보고는 호박엿 같은 건 줄 알았다. 시장에서 간편하게 사서 먹을만한 음식이라면 달콤한 맛이라도 나거나, 최소한 무슨 맛이라도 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무맛 무취 그 자체였다. 게다가 딱딱하긴 돌덩이 수준이라 녹지도 않고 쪼개지지도 않는데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냐.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자 비가 세차게 내렸다. 인도 측 자이가온으로 넘어온 다음 길거리나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비가 쏟아지는 거였다. 우선은 자이가온에 있는 Princella의 집에서 비를 피한 다음, 해가 좀 질 즈음에 나는 버스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알리푸어다르에, 그녀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가기로 했다. 부탄이 불교 국가라고 해서 모두가 불교를 믿는 건 아니었구나. 내 알량한 편견이 하나 깨지는 순간. 여하튼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지만 그보다 더 감사한 건 Princella 가족들의 따뜻함이었다. 예고되지 않은 이방인의 방문에도 반갑게 맞아주며 짜이 한 잔 내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람에 치이고 지치는 인도여행, 하지만 그를 치유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치이던 기억과 Princella의 집에서 잠시 쉬어갔던 기억 중 어떤 기억을 더 크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터미널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해는 이미 지고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과연 버스가 있을 것인가. 릭샤를 타야 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버스는 30분에 한대 꼴로 운행하고 있었다. 다만 로.컬버스의 상태가 좋지 않고 폭우를 동반한 습기가 가득 메운 데다 테이프로 대충 덧댄 창문 틈 사이로 빗물이 새어 옷가지가 또다시 젖긴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앉아 갈 수 있음은 물론 버스를 타기까지 도와준 이들이 있으니. 그마저도 좋을 뿐이다.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려 알리푸어다르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때 가서야 알았다. 내가 가진 기차표는 지정된 좌석이 없는 대기 표였다는 것을. 다음 목적지인 바라나시는 여기서 20시간 거리다. 어쩐지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싶더니, 오늘 밤 편하기 자긴 제대로 글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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