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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Sep 23. 2019

<스물셋의 인도> #5

스무 시간 꼬리칸 기차에서 살아남기



그러니까 내가 가진 티켓은 RLWL라고 하는, RAC라고 불리는 대기 티켓보다 한 단계 낮은 유형이었다. 객실에도 등급이 나눠진 것처럼 대기 티켓에도 등급이 나뉘어 있는 인도. 콜카타 호스텔에서 만난 인도인 스태프를 통해 기차표를 예약하면서도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해결했다 싶더니, 좌석번호가 아예 나오지도 않은 티켓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전에 좌석번호가 나와 있지 않은데 어떻게 하냐며 캐묻지 못한 내 잘못도 있었다.


기차역 직원과 영어를 꽤 잘하는 옆에 있던 인도인 남자의 말에 의하면, 내가 가진 티켓은 열차에 탑승한 후 차장이 검사한 후에도 좌석이 남아 있지 않으면 자동으로 환불되는 티켓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환불이 되면 티켓 값은 인도인 스태프의 지갑으로 들어가고, 나는 웃돈을 더 주고 다른 등급의 객실로 가야 한다는 거였다. 에어컨이 나오고 담요도 주는 한 단계 상위등급인 3AC는 갈 형편은 안 되고, 남은 건 무조건 제네럴. 제대로 된 좌석도 없이 입석으로 가야 하는 제네럴. 모든 이로 하여금 시선이 쏟아지고 인간의 한계선이 어디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야생의 제네럴. 그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며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우선 SL칸에 들어간 다음, 사람이 그나마 없어 보이는 한적한 칸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있는 곳으로 가 간단한 상황설명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여느 인도인에 비해 까만 피부인 것을 보아 남인도 사람처럼 보이던 이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나, 내가 앉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던 건 대부분 대기 티켓을 가진 이들이었다는 것을, 지정된 좌석이 있을 땐 그런 이들을 보고 화도 내고 정색도 했었는데, 이젠 내가 그대로 그 처지가 되었다.


다음 정차역이 좀 큰 역이었는지 하얀 옷을 입은 무슬림 일행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여느 인도인처럼 내가 먼저 앉았으니 내 자리다 할까 하다가도 그러기엔 쪽수부터 확연히 밀려서 조용히 일어나기로 했다. 실제로 인도인들은 자신의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있으면 비어 있는 다른 자리로 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들은 세 명이고 나는 한 명이다. 조용히 일어나 사람들이 다 앉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빈자리에 조용히 앉음이 맞다. 그래 봤자 처음 앉았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급행으로 가는 열차였는지 다음 정차역은 여기서 세 시간 거리였다. 지금이 오후 10시를 조금 넘겼으니 다음 역 정차 시각은 새벽 1시. 지난밤도 기차에서 보낸 탓에 피곤함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 염치를 불구하고 배낭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기로 했다. 세 시간 뒤 실리구리역에서 내 자리에 앉는 이가 오면 알아서 나를 깨우겠지. 아무리 비어 있는 자리로 가는 게 일반적이라 해도 모두가 자리를 깔고 누운 상황이라면, 당연히 염치불구를 깨우는 게 맞다.     


불안한 마음 탓에 중간중간 몇 번 깨긴 했지만 군에서 불침번을 자주 섰던 탓인지 깨어남과 다시 잠듦은 무감각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뜰 무렵인 오전 6시쯤, 자리엔 두 살배기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젊은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염치불구가 일어나야 할 때, 원래 이들의 자리인가 싶다가도 몇 시간 뒤 이들이 내리지 않음에도 또 다른 남자가 와서 앉는 걸 보면 또 그렇지도 않아 보였다. 내가 있던 자리는 그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돌보기 위한 공간이었던가. 여러모로 알 수 없는 인도.     





기차는 속도를 늦추다 서길 반복한다. 기차가 시속 100km/h 이상으로 달릴 땐 행복하다가도 다시 속도를 늦추어 어느 한적한 곳에서 마주 오는 기차를 비켜줄 때면 다시 우울해진다. 발전된 유심 카드 덕분에 기차에서도 인터넷을 쓸 수 있음에도 그마저도 덧없다고 느껴지는 건 도대체 어떤 이유인 건지. 열두 시간 정도 담배를 피지 못한 탓에 금단증상이 왔다는 것, 아니면 언제 쫓겨나 다른 자리로 이동하거나 아예 다른 칸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지치게 만드는 건 모든 기차는 정해진 정차 시각이 있다는 것.     


꽤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기차는 정해진 정차 시각이 있다. 그 말인즉슨 기차가 정해진 정차역에 일찍 도착하면 해당 시각에 맞출 때까지 여과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의 인도 기차는 항상 늦게 오고, 기차가 올 때까지 1시간이며 2시간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거였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그도 그럴 게 200km 채 떨어지지 않은 파트나 역에서 바라나시까지 6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는걸 보면, 애초에 열차의 지연을 막으려고 일부러 시간 조정을 길게 설정해놓은 거다. 그렇다 보니 큰 역에 정차하는 시간은 기본이 한 시간, 교행할 수 있는 간이역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바라나시까지의 거리는 가까워지는 듯한데, 시간은 여전히 흐르지 않고 있다. 그래 여긴 인도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한국 사회와 달리 여긴 모든 것들에 관대하고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인도다.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예민하게 받아들여 지는 건 순전히 큰일을 해결하지 못해서일 테다. 다른 건 다 버티고 할 수 있으며 아무 음식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나이지만, 유일하게 못 하는 일이 바로 쪼그려 앉는 자세였다. 그런 나에게 인도 기차는 쥐약이었다. 장거리 기차에 오를 때면 보통 전날 저녁을 먹지 않거나, 큰일을 유발하는 음식은 피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유별난 건지. 기차에서 파는 짜이나 물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속이 차오르는 것을 피하려 작은 음식만 먹은 일이 외려 악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좌석마다 있는 콘센트와 시골 동네에서도 잘 터지는 인터넷으로 화제를 돌릴 수 있다는 것. 덕분에 바라나시 바로 전역까지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정해진 목표지점이 다가올수록 힘들어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무갈 샤라이역, 바라나시에서도 웬만한 릭샤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역이었다. 그럼에도 정해진 목적지까지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면 즉시 내려 다른 교통수단이라도 타는 게 옳다. 검색해보니 합승 지프를 탈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역에서 나온 다음 길이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예상과도 같이 역을 빠져나오기 전부터도 릭샤꾼들이 들러붙기 시작한다. 대충 표정 보이면 눈치껏 비켜줘라. 지금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이라 대꾸할 힘도 없어 손사래만 칠 거니까. 여기서 터져 나올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오 그러냐는 알량한 동정과 함께 그럼 얼른 내 릭샤를 타라 바라나시까지 빨리 태워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거다. 그렇다.     


합승 지프는 아니지만 합승 릭샤로 바라나시 정션역까지 50루피, 그런데 이 양반이 여행자 거리가 있는 고돌리아까지 도합 120루피를 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역에서 고돌리아까지 그 3~4km 되는 거리가 70루피란 말인가. 그나마도 도합 200 달라는 거에서 깎고 또 깎은 가격, 정션역에서 고돌리아로 가는 합승 릭샤가 있다만 그러기엔 차마 내가 버티질 못하겠다. 보통 바라나시 역에서 고돌리아까지 150루피 줘도 나쁘지 괜찮은 가격이라고 보잖아? 이 정도면 선방한 거다. 값을 더 깎는다고 해서 무엇이 더 달라지겠나. 빨리 숙소부터 가서 큰일부터 해결하는 게 낫지.     





4년 만에 다시 찾은 바라나시, 열아홉의 마지막을 장식한 바라나시.

과연 스물셋의 나는 이곳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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