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신호탄이 될 것인가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 시절에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떠돌곤 했습니다. 실제 스위스 은행은 세계적으로 독재자, 마약상, 마피아들의 자금의 은신처로 알려져 있죠. 스위스 은행에는 비밀계좌 또는 비밀금고가 있는데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비밀계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위기의 기업 두 번째로 소개할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가 바로 검은돈의 은신처로 알려져 있는 스위스 은행중 한 곳이며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은행이라고 합니다.
크레디트 스위스가 최근 경제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 급격한 재무상황의 악화 때문입니다. 며칠 전인 10월 6일에는 마지막 핵심 자산인 역사적인 취리히의 사보이 호텔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크레디트 스위스가 소유하고 있는 상징적인 스위스의 최고급 호텔이 한창 리모델링 중에 매각된다는 것은 경보등이 켜진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지난해 자사와 관련된 두 개의 헤지펀드인 아케고스와 그린실 캐피털이 파산하면서 직격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아케고스는 한국계 인물인 빌황(Bill Hwang)가 설립한 헤지펀드 회사로 그 파산 소식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케고스로 인한 손실액이 51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네요. 금년초에는 이사회장도 사퇴하고 지난 6월에는 불가리아의 마약조직의 자금세탁에 관여되어 스위스 법원으로부터 2천2백만 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 은행의 주가는 10월 4일 기준 주당 4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고 그 모양새가 과거 2008년 리만 브라더스, 베어 스턴의 파산 때와 비슷한 형상입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아직 리만 브라더스가 갔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경기침체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전혀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금년 2월에는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 46개 매체가 참여한 공동탐사보도 프로젝트(OCCRP)를 통해 크레디트 스위스가 지난 70여 년간 전쟁 범죄자, 독재자, 마약조직, 갱단, 인신매매단, 정치인 등 3만 7천여 명을 대상으로 비밀계좌를 운영해왔다고 폭로하였습니다. 크레디스 스위스의 내부고발자가 유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소 천억 달러의 돈이 이런 방식으로 운용되었고 소유주는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는 악명 높은 부패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추악한 돈을 대신 관리하고 있던 독재자의 청지기가 그동안 법의 심판은 피했지만 결국에는 하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인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