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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리 Nov 02. 2024

동물실험의 3Rs 원칙

고통을 모른 척했던 우리들의 침묵

동물실험의 3Rs 원칙


 최규리



  아버지는 서울대학 병원에서 거의 살았다

  서울대학 병원이 아니면 죽어도 진료 안 받겠다고


  진료실 앞에는 도깨비시장처럼 붐비고 시끄럽다

  맨날 만나는 환자들끼리

  어느 의사가 잘 하네 못 하네

  대학병원 의사를 먹여 살리는 건 여기서 이루어진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하얀 침대에 누웠지

  의사들은 아버지를 실험실의 하얀 쥐를 다루듯

  아프실 텐데 정말 잘 참습니다 어르신

  의사 말에 엷은 미소로 답하는

  껍질뿐인 아버지

  자 이제 약 들어갑니다 한숨 푹 주무세요

  10. 9. 8.....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의 수의 빠른 증가와 함께 동물의 고통 관련 지표도 악화일로에 놓였다. 동물실험은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 정도에 따라 A에서 E등급으로 분류되는데 고통이 가장 큰 E등급 실험은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또는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 마취제나 진통제 등 사용하지 않는다. E등급 실험은 2015년 75만910건이었던 것이 2021년에는 218만1207건으로 6년만에 3배로 증가했다. 전체 실험에서 차지하는 비율 또한 2015년 30.0%였던 것이 2021년에는 44.7%로 치솟았다. 중등도 이상의 고통이나 억압을 동반하는 D등급 실험도 33.2%에 달해 D, E등급 실험이 전체 실험의 77.9%를 차지한다. 고통등급의 구분에 있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영국의 경우 2020년 시행된 288만3310차례의 동물실험(유전자 변형 동물의 번식 등 포함) 중 국내 기준 D, E등급에 해당하는 ‘Moderate’, ‘Severe’ 등급의 실험은 각각 13.1%와 3.0%로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동물 자유 연대 논평의 부분, 2022 06 23)


  음식 가리지 말고 마음껏 드세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어르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시겠어요 어차피 똑같아요 그냥 살아계실 때 드시고 싶은 거 많이 드시게 하세요

  (왜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포기 한 건가?)

  아버지는 뭐가 좋은 건지 활짝 웃는다


  그동안 신약이라고 비보험으로 비싼 돈 주고 먹던 약은 뭐지?

  새로운 의술이라고 미국에까지 영상을 보내고 처방받은 건 뭐지?


  결국 국내에서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으며, 동물이 받는 고통도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최대한 비동물 실험으로 대체하고, 사용동물의 수를 축소하며, 불가피한 동물실험시 고통의 완화하는 동물실험의 3Rs 원칙에도 역행하는 셈이다.

  (동물 자유 연대 논평의 부분, 2022 06 23)


  아빠, 정신이 좀 들어요?

  간호사 물 좀 줘요

  아빠 저예요, 큰 딸

  에이, 우리 딸은 맨날 바빠 여기 없어  

  아빠... 나라니까!

  어째 간호사가 물도 안 주고 영 별로야

  나 모르겠어? !이라고!

  고통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망각한다


  딸들은 비명을 지른다

  고통을 양도하는 연습은

  하얀 쥐도 하얀 아버지도

  아픔을 모른 척하는 우리들의 원칙을 가지고

  하얀 재처럼 흩날리는 연구실의 가운처럼

  완치를 위해 죽어야 하는

  엉터리 같은 논문 따위처럼 뭉클한 심장은

  어젯밤의 하얀 꿈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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