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의 UI 디자이너 도전기
교사생활을 하며 해마다 몸이 아팠다. 내 몸이 점점 상해 가는 것이 느껴졌고, 매일매일 지겨운 학교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점에 갔다. 메모장을 켜고 서점을 훑으며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을 써 내려갔다.
'디자인'
'건축'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 건축을 제대로 한 번 공부해 보자. 매일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건물들이 왜 그런 생김새를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던 나는 건축공학사를 위해 사이버대학에 학적을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디자인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나는 정말 즐거웠다. 도시계획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지적편집도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건물의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보이던 도시의 모든 것들을 하나씩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순간들이 정말로 재밌었다.
그런데, 내가 이걸 공부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지적호기심을 채우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건축공학' 공부는 완전하게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으로서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5년제 건축과 학사를 취득하고 대학원까지 수료하며 각종 포트폴리오와 현장 경험을 쌓는 건축학과 학생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공부를 멈추기로 했다. 동료교사들이 죽어가는 이 현장에서, 매주 주말 교사의 권리를 위해 국회 앞을 찾으면서 나는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완전히 마음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직이 우선이었다.
건축보다는 현실적으로 더 가능성이 있는 대안으로 '디자인'을 떠올렸다. 평생 관심 있어했고 나의 예민한 감각을 잘 살려 일할 수 있는 분야. 수많은 디자인 분야 중 나를 완전히 매료시킨 것은 바로 UX 디자인이었다. 디자인으로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고 사용의 경험을 개선하는 데 몹시 흥미를 느꼈다. 생각해 보니 건축물의 원리를 궁금해했던 이유도, 도시의 구조를 궁금해했던 이유도, 인테리어 디자인에 흥미를 느꼈던 이유도..., 내가 그동안 흥미롭고 궁금해왔던 많은 것들이 UX 하나로 정리되었다.
내 손에 딱 맞는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었다. 사실 '사용자경험 디자인'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 개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UX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리하기 시작하자 많은 것들이 명료해졌다.
그렇게 나는 UX의 세계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에는 디자인이 담겨있다. 정확히는 사람이 만든 것에는 그 어떤 것이든 디자인이 있다. 내가 이해한 디자인의 의미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어떤 물건을 보고서 '왜 저렇게 생겼지?'라고 질문해 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 콜라병뚜껑의 톱니 개수도 이유가 있어서 21개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현대적 의미의 공산품 디자인의 개념은 영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하여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공장에서 물건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생산하기에 효율적이면서 사용자가 손쉽게 그 사용법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고안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품의 형태는 그 기능을 따른다.(Forms follow function.) 기능주의 디자인 철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초기의 기능주의는 건강하게 잘 작동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능주의 디자인의 중심이 생산자가 되어가면서 극한의 생산 효율화를 위한 디자인으로 작동하면서 시장에서 실패하기 시작하였다. 생산자와 디자이너들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무언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명확하게 설명은 할 수 없지만 그 '무언가'에 집중한 기업들이 우리 사회를 서서히 지배해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감성'이다.
제품과 상호작용한 경험의 총체
소비자의 선택을 단순한 물리적 합리성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기능적으로 아주 뛰어나지는 못해도 시각적으로 더 아름답다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조금 더 편안한 촉감을 제공한다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전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과 연속적인 일관된 경험을 제공한다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또 선택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제품을 사용하는 경험(Experience)을 바탕으로 그 제품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바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
정말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나는 이 불편한 맥북을 왜 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갤럭시를 쓰는 사람과 아이폰을 쓰는 사람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이니까.
사용장 경험 디자인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하고 있는 선택의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본능적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고 선택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을 '합리성'을 따져서 행하지는 않는다. 익숙한 방법을 찾아가기고 하고 좀 더 쾌적한 방법을 찾기도 한다.
UX디자이너는 이러한 선택의 과정들을 조금 더 정량화하여 이해하고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유지/보수할 때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소비자가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와 상호작용하면서 더 쾌적한 경험을 할 뿐만 아니라 기업이 의도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 자체에 대한 경험을 개선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게 할 수도 있다.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종류의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복잡/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가 점점 더 다극화되고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며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탄생을 가속화할 것이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UX 디자인은 앞으로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매력적인 UX디자인 분야를 선택한 다음, 나는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골라야 했다. 막연하게 "나는 UX디자인을 할 거야!"라고 한다면 그 분야의 범위가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건축 분야도 광의의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조금 더 빨리 이직에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했다.
UI/UX 디자인.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이다.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개념이 등장한 이래로 UI 디자인의 활용도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웹 환경이 구축되고 모바일 환경이 대중화되며 UI 디자인은 일상생활 틈틈이 스며들었다. 앞으로 또 어떤 신기술이 등장하여 새로운 규격의 UI가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어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화면과 스마트폰의 화면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자와 상호작용하는 매체가 대중화될 것이다.
시장의 잠재성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동시에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분야이다. 건물의 생김새 구석구석에 모두 이유가 있는 것처럼, 도시의 구조를 통해 인간의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웹 속의 세상에서 사용자는 UX 디자이너의 설계에 따라 행동하고 경험한다. 내가 이해한 UI/UX 디자이너는 웹 세상 속의 건축가인 셈이다.
디자인과 관련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비전공자로서, 최근 디자이너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다는 툴인 '피그마(Figma)'를 공부하기로 했다. 컴퓨터는 잘 다루니까, 그리고 한글문서로 표 하나 만들면서도 여백 포인트 하나하나 만지고 앉아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말로는 "너처럼 이것저것 여러 분야에 관심 많은 사람이 디자인까지 하면 그거야 말로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했기에 자신감도 생겼다.
"흥미"+"익숙함"+"자신감"+"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재능"
만약 적성까지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새롭게 시작하게 된 피그마 공부는 매일매일이 흥미롭고 흥미로웠다. 본격적으로 정형화된 커리큘럼에 따라 전문적인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구글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가며 유튜브에 올라오는 피그마 독학 영상들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툴을 익혔다. 기본 기능을 익히고 간단한 프로젝트를 따라 해 보는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었고 공부하는 시간은 순식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초과정이 끝나갈 때쯤 나는 난관에 부딪혔다. 더 이상 할 게 없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다시 말해서 이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디자인 직종의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혀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보니 막상 공부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그다음을 모르겠는 것이다. 너무 막막했다.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남들 하는 거 따라 하기라도 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볼 텐데,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접목을 시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부터 세어보면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머물렀던 교육직종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딛는 것부터가 너무나도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길잡이도 없고, 발자취를 따라가 볼 선배도 없다. 이것으로부터 느껴지는 막연함과 통제력을 상실한 느낌은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힘들다.
이렇게 큰 불안감에 빠져들어갈 때쯤, 어느 땐가 피그마를 공부하다가 추천받았던 'Daily UI'라는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아마 브런치에서 UI/UX 디자인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발견했던 것 같다. 매일 하나의 프로젝트를 과제처럼 만들어 주는 사이트이다. 내가 이걸 과연 할 수 있는 실력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어설프더라도 하나하나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새롭게 배우고 알게 되는 것이 나에게 큰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00가지의 Daily UI를 만들어 보고 나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해보려 한다. UI 과제 해결과정과 나의 생각들을 풀어서 써보려 한다.
부디 100가지 UI를 모두 완성할 때까지 이 기록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