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오른발로 운전하게 되어 있다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똥 다 쌌으면 빨리 나오자
나는 매일 운전해서 출근하고 퇴근한다. 교통 흐름에 나를 맡기고 매일매일 똑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다양한 운전자를 만날 수 있다. 그중 도통 이해하기 힘든 운전 유형이 여럿 있는데 그중 속 터짐 1등은 "1차로에서 저속으로 주행하는 운전자"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가 대한민국의 운전자들은 지정차로제를 아무도 안 지키지 않냐며 차로의 의미가 없다고 한 장면을 보았다. 저속으로 주행하는 차량이 추월차로를 점유하고 있으니 무리하게 우측 차로로 추월을 시도하거나 많은 차량들이 해당 차량 뒤로 길게 늘어서 차량 밀도가 높아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정체가 발생하거나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1차로에서 꿋꿋이 주행하는 운전자 중 일부는 자신은 규정 속도를 지키며 주행하고 있으니 과속하는 차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과속을 한 운전자는 '규정속도제'를 지키지 않은 잘못을 한 것이고, 1차로를 점유한 운전자는 '지정차로제'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두 운전자 모두 원활한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의무를 지고 있으므로 1차로를 점유한 운전자는 주행차로로 복귀하는 것이 맞고 과속을 한 운전자는 규정속도에 맞게 추월을 시도하면 되는 것이다.
1차로는 추월차로이다.
물론, 몇 년 새에 많은 사람들이 지정차로제에 대해서 인식하고 최근에는 단속도 진행하는 도로들이 생겨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릴수록 우측으로 비켜나서 주행한다"는 기본 원리에 대한 운전자들 간의 약속이 잘 지켜질 때 교통 흐름이 원활해지고 사고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운전자들이 지정차로제에 대해 인식하고 교통 흐름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여, 많은 운전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지만 모든 차에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강력한 기능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동차의 조향을 담당하는 '스티어링 휠' 뒤편을 잘 찾아보라. 기다란 막대 같은 것이 있다. 좌측에 위치한 이 막대를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면 내 차에 주황색 등이 점등된다.
창문을 내려서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다른 운전자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줄 수 있다!
이 막대는 신기하게도 내 차를 조향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작하면 그 방향에 맞추어 주황색 등을 켜준다!!
스티어링 휠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막대를 올리면 오른쪽 등이 켜진다!!!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돌리며 막대를 내리면 왼쪽 등이 켜진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걸 바로 '방향지시등' 기능이라고 부른다.
방향지시등을 조작하는 레버의 조작 방향이 왜 지금처럼 설계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운전자는 운전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방을 주시한다. 그러나 운전석 주변에는 수많은 조작 장치가 있다. 아직 모든 게 어려운 초보 운전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운전할 때 뇌가 '자동모드'에 진입한 배테랑 운전자들은 별생각 없이 전방을 주시하며 수많은 장치를 조작한다.
운전은 고속으로 움직이며 실시간으로 수 없이 많은 정보를 포착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기에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행위이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상황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루틴화한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자동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동모드에 돌입한 인간은 생각을 깊게 하기 어려워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종의 관성 속에서 일상화된 행동을 반복한다.
이때, 자동차를 조작하는 각종 버튼과 레버가 조작할 때마다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내야 하고 그 위치에 닿기 위에 몸을 움직여야 한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조향과 관련된 장치들은 스티어링 휠 근처에, 공조와 관련된 장치들은 공조기 근처에, 문과 관련된 장치들은 문 근처에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그중에서 자동차의 조향 방향에 맞춰 조작 방향이 설계된 방향지시등 조작 레버는 사용자 경험(UX)을 충실히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만큼이나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또 다른 장치가 있다.
도로 위에서 만나는 이해할 수 없는 운전 중 적지 않은 운전자로부터 공감을 얻는 형태가 또 있다.
- 가속하고 있는데 브레이크등이 켜진 운전자
- 잔브레이크를 계속 밟는 운전자
주행 중에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켜지면 뒤따라가는 운전자는 액셀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생각을 시작한다.
"멈추기 위해 밟기 시작한 것일까?"
"단순한 감속을 위해 밟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 차 앞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앞에 있는 차들도 감속하고 있는 상황인가?"
"그렇지 않다면 추월을 해야 하는 상황일까?"
"옆 차로에 차가 있는가?"
"내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뒤차는 충분히 간격을 벌리고 따라오는 중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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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가정을 하고 검증하기를 반복하여 짧은 순간에 룸미러, 사이드미러, 센서 경고등을 살펴보며 상황을 판단한다. 그리고서 계속해서 주행을 할지 감속을 할지 결정하게 된다. 앞서 얘기한 방향지시등과 마찬가지로 브레이크등 또한 다른 운전자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브레이크등의 점등은 방향지시등과는 달리 발로 밟는 페달로 조작한다. 눈으로 힐끗힐끗이나마 보며 조작하기도 하는 센터패시아의 버튼들과는 달리 페달은 아예 시선이 머무르지를 않는 곳이다. 이는 의도된 디자인을 통한 사용자 행동 유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가 된다.
수동 기어 자동차가 많이 사라진 요즘, 처음 운전할 때부터 '클러치 페달'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수동 기어 자동차에서 클러치 페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운전자도 많다고 한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 보니 운전석에서 마주하는 페달은 단 두 개뿐인 상황이 된다.
자연스레 오른발 하나, 왼발 하나.
한 발로만 운전하면 피로감이 생기니 두 발을 각각의 페달에 모두 올려두고 필요할 때 밟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발을 페달 위치에 가져다 대보면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 둘 다 상당히 오른쪽 편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좌측 가장자리의 풋레스트에 올려두어야 할 왼쪽 발을 굳이 굳이 브레이크 페달에 올려두려고 해 봐도 왼쪽발만 쭉 뻗어야 한다. 불편하다.
페달을 설계한 디자이너는 오른쪽발로 두 페달을 조작하라고 그 위치에 가져다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운전자는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헷갈리지 않게 서로 다른 발을 올려두고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이 주장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안전'과 직결된 문제가 숨어있다. 잠시 군대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 부대에는 흡연장이 막사 밖에 두 군데 있었다. 원래는 쉼터로 활용할 수 있는 정자가 조성된 곳이었을 활용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수많은 병사들이 이용하는 이 공간에서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할 뻔한 일이 있었다.
일반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화재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흡연실에 소방수를 확충하는 등의 대처를 한다. 그러나 우리 부대에서는 흡연장을 폐쇄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부대에 단 두 개밖에 없는 흡연장을 폐쇄한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흡연장을 다시 개방하였지만 정말 황당한 대처 방식이라고 생각하였다.
군대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몹시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생각되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해결방법이다. 가능성을 0%로 만듦으로써 문제가 발생할 여지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기계공학이나 건축공학 등 많은 공학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을 응용하기도 한다.
자동차 페달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페달은 두 개인데 왜 한쪽발로만 조작하도록 디자인했을까?
액셀레이터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은 서로 완벽하게 반대의 기능을 지닌 장치다. 왼발로 밟기 어려운 위치에 페달을 설치해서 두 페달을 절대로 동시에 밟을 수 없게 하였다고 생각해 보자.
1. 액셀레이터를 밟으면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2. 반대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동시에 액셀레이터를 밟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두 페달을 헷갈리지 않게 서로 다른 발을 올려두고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설득력이 생겼다.
한쪽의 사건이 발생할 때 남은 하나의 사건은 절대로 동시에 발생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둔 것.
운전자라는 자동차의 사용자를 상정하고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고 통제하는 디자인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겠다.
결국 이 모든 디자인의 원리는 '직관성'이다.
처음 보는 물건이지만 손으로 어떻게 잡아야 할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용법이 적힌 매뉴얼을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기본적인 사용법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의 사용 흔적에 따라 적응된 디자인이거나 혹은 사용자의 사용을 유도하는 의도된 디자인이 적용된 것이다. 흔히 잘못된 디자인이라고 말할 때 드는 예시들의 대부분은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사용법을 전혀 알 수 없는 디자인인 경우가 많다. 사용자의 스펙트럼이 넓은 소위 대중적인 제품일수록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이 중요하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해야 하는 운전에는 그 어떤 제품보다 생각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직관성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트렌드가 되어버린 디지털 센터페이시아를 보며 몹시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브레이크 페달과 엑셀레이터 페달이 동시에 눌렸을 때 브레이크 페달이 우선 작동되도록 전자식 시스템이 제어를 하고 있는 차량들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두 발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두 가지 옵션이 동시에 동작할 수 있는 확률은 0%가 아니다. 아주 극단적인 예시로 몹시 위급한 도로 상황 위에서 당황한 운전자는 두 페달에 각각 올려진 두 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 페달 대신 엑셀레이터 페달을 꾹 누르는 일이 발생할 숟 있다. 이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자동차에는 페달을 비롯한 여러 장 치과 부속품에 이와 같은 의도된 디자인이 녹아있다.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들이겠지만 때때로 디자인의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 자동차와 교통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가끔씩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