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지만 소설이 아닌 나의 이야기
그에게는 위로 형이 한 명, 아래로 동생이 넷이 있었다. 아들이었던 첫째는 가난했던 가족들의 기대를 받고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첫째는 온 가족이 쥐어준 기대를 내던지고 매일 사고를 치고 다녔으며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일찍이 술에 빠져 집에 들어오지 않기 일쑤였다.
큰형이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가족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의 어머니는 큰형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리고 넷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을 키워내기 위해 그를 데리고 광주역 앞 거리로 나섰다. 중학교도 보내지 않은 채 빨간 고무다라이에 물건을 가득 담고서 돈을 벌게 했다.
친구들에 비하여 유난히 땀이 많이 나던 그였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혼이 나서 방과 후에 교실 청소를 하기 위해 남던 날엔 줄줄 흐르는 땀으로 집에 일찍 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세상과 "나"에 관한 생각이 깊어질 때쯤, 그의 어머니는 전기 기술 현장으로 그를 내몰았다. 키가 크고 힘이 생기자 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시킨 것이다. 얼굴이 빨갛게 타고 주름이 가득한 잔뜩 인상 쓴 얼굴로 담배를 피워대며 알 수 없는 일본말을 주고받는 아저씨들은 유난히 땀이 많고 순하던 그를 데리고 다니며 일을 가르쳤다. 니빠와 뻰찌, 도라이바는 그의 필수품이었으며, 와리바시로 자장면을 비비며 다마네기와 다꽝을 찾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그는 아저씨들과 공구를 챙겨 일을 하러 담양으로 떠났다. 한낮의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몇 살쯤 되어 보이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아저씨들을 따라다니며 온몸에 갖은 풀꽃냄새에 땀냄새를 칠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광주는 아사리판이 되어있었다. 온 동네가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나타나 화순 파출소를 털었다는 무용담을 쏟아내던 셋째로부터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집에 남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셋째는 여자임에도 트럭을 타고나서 시민군이 되었었다. 어머니는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젊은이들을 위해 동네 어른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 그들의 사력에 보탬이 되었었다. 아버지가 만약 살아계셨다면, 자신의 종아리에 박힌 총알이 날아들던 오래전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셨으리라.
도통 집에 들어오는 날이 없었던 큰형을 위해 어머니는 사방으로 발품을 팔아 그럴듯한 일자리를 얻어왔다. 딱 일주일만 가보라고 하였다. 광주에서 가장 큰 자동차를 만드는 곳인데 큰형은 공장이라서 싫다고 했다. 그는 그날 아침, 월급봉투를 어머니께 드리고 일을 나섰다.
서른. 그는 선자리에 나섰다. 순천 주암면에서 살다가 광주에서 일을 하러 올라왔다는 여자였다.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위로는 언니 둘과 아래로는 여동생 하나 그리고 어린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녀의 가족 역시 어릴 때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고 어머니가 형제들을 키워오셨다고 했다. 그는 선을 보면 결혼을 해야 되는 줄 알았고, 결혼을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같은 일을 하며 친하게 지내는 형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유행하던 궁전같이 생긴 식장에서 폭죽도 터뜨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를 그대로 쏙 빼다 박은 아들이 생겼다. 1994년 3월 16일의 일이다.
"큰형은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처럼 집에 들어오는 날엔 술이 아주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하여 화를 내거나 동생들을 때린다. 엄마는 그런 큰형을 언제까지 어르고 달래며 데리고 있으려는 생각인지...
셋째는 여전히 거리에 나서서 장사를 하고 있다. 어릴 때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나오기 전에 동생 곁을 떠났다. 첫째 아들도 아직 어린데...
넷째는 요즘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멀끔하게 생겼고 키도 커서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잘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다섯째도 일찍이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벌써 애가 둘인데 모두 아들이다. 요즘 일이 힘든지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우리 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은 막내 동생. 큰형 잘 부탁해.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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