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백년손님 PART1]술 마시면 대리운전, 결혼 후엔 셀프효도
효도는 나를 낳아주신 분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만 해도 부모에게 감사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하자는 생각으로 셀프효도를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제 부모님께서 낳아주시지도 않았고 길러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시부모에게 효도하거나 두 분을 감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팩트입니다. ‘술 마시면 대리운전, 결혼 후 효도는 셀프효도’. 대리효도는 며느리의 승차 거부를 부릅니다.
셀프효도란, 자신의 부모, 즉 남편은 시부모, 아내는 친정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뜻입니다.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하는 것은 엄밀히 효도가 아닙니다. 효도는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는 대리효도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대리효도는 자식으로서 본인이 져야 할 책임을 타인에게 지우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남편은 처가댁에 잘하고 며느리는 시댁에 잘하는 맞효도로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교차로 대리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부모에게 셀프효도하는 것이 정이 없어 보인다고 해서 나온 방식입니다. 그러나 모든 가정에서 가능한 방법은 아닙니다. 시댁과 처가댁을 공평하게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쪽에 더 가깝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말입니다. 어린 자녀가 있어서 맡아주시는 경우라면 그쪽으로 더 자주 가고 뭐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게 되기 마련이죠. 저희만 해도 일정기간 아들과 딸을 장모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집도 장모님 소유의 다세대 주택에서 장모님은 3층, 저희는 2층에 살았습니다. 여러모로 혜택을 받았으니 장모님께 더 잘해 드리려 하는 게 인지상정이죠.
제가 선택한 셀프효도는 며느리는 시댁에 일체 전화나 방문을 하지 않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런 형태의 셀프효도를 2008년부터 현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지금까지 13년간 시댁과 연을 끊고 삽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셀프효도는 적당한 선에서 합의한 것이 아니라 저처럼 고부갈등으로 이혼에 처할 법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극단의 셀프효도입니다.
이쯤에서 궁금해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셀프효도의 장단점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 나름대로 13년간 셀프효도를 실천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셀프효도의 장점
1. 고부갈등이 사라지면서 나와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처음엔 부모님께서 인정하지 못하셨다. 가끔 며느리 얘기가 나올 때 살짝 스트레스가 생기지만 단호하게 말씀드린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만큼 변화할 생각이 없으시면 절대 기대하지 마시라고 말이다.
2. 아들로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원만히 유지하면서 동시에 아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아내와 시부모 문제로 싸우지 않아서 가정이 화목하다.
3. 부부가 싸우지 않으니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4. 부모님에 대한 효를 내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다. 부족해도 자식이라 이해해주신다.
5. 가끔 전화 드리고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효도다.
6. 건강하고 별문제 없이 지낸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효도다.
7. 이렇듯 효도가 쉬워진다.
8. 부부의 문제가 아니니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며 자녀를 내 철학대로 자유롭게 키울 수 있다.
셀프효도의 단점
1. 부모님의 선택이 아닌 나의 선택이므로 아무래도 부모님은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실 수 있다.
2. 주변에서 며느리는 왜 안 오냐고 물어볼 때 불편하실 수 있다(나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라고 한다).
3. 아내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지 않는 것을 특히 어린 자녀에게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큰 자녀들은 이해한다.
적어놓고 보니 단점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셀프효도를 하게 된 이유는 고부갈등이 있었기 때문이고, 단점 1, 2번은 부모님도 어느 정도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셔야 하는 부분이 라고 생각합니다. 3번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라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부갈등으로 인해 부부가 자주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느니 평화로운 휴전의 상태가 교육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휴전하지 않고 아직까지 전쟁을 했으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겁니다. 이제 남은 건 ‘평화통일’이죠. 고부갈등을 겪는 가정에서 셀프효도는 휴전이며 언젠가 ‘평화로운 만남’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고부갈등으로 심각한 상황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셀프효도를 요구하면 남편은 왠지 아내가 자신의 부모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거나 시댁에 소홀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부갈등이 극심한 상황이라면 남편 스스로가 현재 상황과 셀프효도의 장단점을 참고해서 주도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은 내 가정을 지켜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