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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 Nov 04. 2022

고양이 비

 구름 지고 어두워진 하늘이 보라색입니다. 하늘을 비추는 바닥의 물웅덩이도 보라색입니다. 안개에 가려 흐릿해진 나무줄기도 보랏빛을 띱니다. 온통 보라색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노란색의 나는 통통 뛰어다닙니다.


 비 오는 날은 좋습니다. 주변은 평소와 다른 색이 됩니다. 시원한 빗방울은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흘러내립니다. 웅덩이를 밟으면 사방으로 물방울이 튕겨 나갑니다. 방울로 가득한 세상에서 방울 같은 사람들도 바쁘게 뛰어다닙니다. 빗줄기가 우산을 건드리는 소리, 첨벙거리는 소리,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 모두 다 사람들이 내는 방울 소리입니다.


 비 오는 날 이렇게 재밌는 것이 가득하다는 거를 사람들은 모르는 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바쁘게 가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세상을 탐험하는 것보다 재밌는 일이 있는 걸까요?


 그런 재밌는 일을 혼자만 즐기다니 치사합니다.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요! 그치만 사람들은 저한테 관심이 없는 거 같습니다. 노란색이 눈에 안 띄는 색도 아닌데, 내가 있는 쪽을 도통 쳐다볼 생각을 안 합니다.


 됐습니다. 주위 한 번 제대로 안 보고, 비 내리는 날도 즐길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들에는 나도 관심 없습니다. 날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만 손해이죠. 바닥만 잘 쳐다봐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따라 가봤자 재미없는 사람일 게 분명합니다.


 나는 세상 최고로 재밌을 거 같은 사람한테 갈 겁니다. 같이 가서 그 사람이 즐기는 것들을 같이 즐길 거예요. 우산 너머의 풍경을 보고, 빤딱거리는 노란색 옷을 입어볼 겁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사라지는 지도 배우게 되겠죠.


 그치만 좀처럼 괜찮은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날 발견하고 조심조심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기왕 가는 거, 아무나 따라갈 수는 없지요. 노랑 옷을 입고 있고, 투명한 우산도 쓰고 있고, 주위도 둘러볼 줄 알고, 무엇보다도 나한테 친절한 사람한테 갈 겁니다. 예를 들어, 조금 전까지 하늘을 보고 있다가 방금 나랑 눈이 마주친 저 아이 같은 사람이요.




 아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습니다. 공중에 손을 뻗고 머뭇거립니다. 답답하네요! 나는 머리를 그 손에 가져다 댔습니다. 아이는 기쁜 듯 내 머리를 쓰다 듬습니다. 그 이상한 노랑 옷보다는 내 노랑 털의 감촉이 좋은지 한참을 그러고 있습니다. 아이 손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네요. 생각하지 못한 수확입니다.


 아이는 주변을 둘러보다 결심한 듯 날 한 손으로 안아 듭니다. 순식간에 몸이 높이 떠 우산에 가까워집니다. 비가 내리며 보라색이 된 하늘과 날씨가 더워지며 초록색이 된 나뭇잎이 투명한 우산 위로 비쳐 보입니다. 하늘에서는 반짝거리는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우산 위에 송글 송글 맺힌 빗방울이 파르르 떨리며 흘러내리는 모습이 나비 같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풍경이라니!


 저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사람인지 나는 모릅니다. 생각보다 지루하고 바보 같은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날 찾아올 사람이 아이보다 훨씬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나는 이 아이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이 아이가 어떤 것들을 느끼게 해줄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질지가 궁금하거든요.


 비 오는 날만큼 즐거운 인연이 됐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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