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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혁 Apr 11. 2022

고정관념

대한민국의 여느 가정이 그렇겠지만 우리 집에서도 상당히 보수적인 기준으로 가정교육이 이루어졌다. 어른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어렵게 알게 된 지식들을 간략하게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외우고 보는 것이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상처를 덜 받고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가르침의 대부분이 내 마음에는 썩 들지 않았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백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난 후에는 인간이 모든 사실을 직접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며 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아직 방종과 자유를 구분하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보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느끼기에도 혹은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로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그렇게 선생님들에게 사랑받으며 별 문제 없이 몇 년간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지 큰 시련을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알고 보니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와 다르게 꽉 막혀있지도 않았고 공부도 썩 잘 하면서 호방함도 있어 불량한 학생들과 모범생들 사이에서 두루 인정을 받는 교내의 슈퍼스타였다. 그러한 친구가 나와 가까이 한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지만 부모님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한 가지 사건을 목격하게 된 이후로 그 친구를 대하기가 상당히 껄끄러워진 것이다. 흡연자라는 사실은 인식의 블랙홀처럼 그 친구의 모든 장점을 빨아들이고 내 마음속에 있어서 그를 악마의 형상으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여태껏 경험한 예의 흡연자들은 부모님의 말씀대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는 일말의 계획이나 고민의 흔적도 엿보이지 않는 부류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소위 말하는 불량 학생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큰 혼란을 안겼다. 그렇다 하여도 내 이성은 나와 그 친구 사이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게 담배를 핀다는 사실은 정서적인 문제였다.

 그 친구와의 관계는 더 이상 없었지만 이 경험은 내 양심의 밑바닥에서 매우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이가 들며 비슷한 감정을 수차례 더 마주하게 되었다. 사례들을 접할수록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정당한 증거들이 뒤섞여 나를 타일렀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적으로 시도해보아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근원적인 혐오감은 좀체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말보로를 샀다. 이후 나는 매일 한 갑의 담배를 피우는 헤비스모커가 되었고 이를 벗어나는 데는 4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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