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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혁 Apr 18. 2022

따뜻한 빛을 보고 싶은 다슬의 소망

햇볕을 쬘 수 없는 소녀

 "감독님 과장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전해들었습니다."


 그는 구세군 자선냄비본부에서 일하는 최상헌 대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른 비영리기관의 모금 담당자로부터 내가 무료로 온라인 모금콘텐츠를 만들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최대리가 영상이 아니라 콘텐츠라고 말한 이유는 경희 이후로 참여한 사례들에서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공짜로 바닷바람도 쐴 겸 촬영만 대신해줄 생각으로 시작한 봉사였지만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후원영상 편집, 사연 글 작성, 후원포스터 디자인까지 만들어주게 되었다. 기관에서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복지기관들이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나면 그럴 수 밖에 없게 된다. 일하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이랑 다를게 없었다. 인원이 몇 없는데다 업무분장도 잘 안되어 있어서 사회복지사 한 명이 전화 받기, 협력업체 관리, 홍보 마케팅, 프로그램 기획같은 기본적인 일부터 바닥 청소, 커피포트 관리, 구호물자 배송, 간담회, 캠프, 후원의 밤과 같은 행사 진행도 해야되며 거기에 혼자서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나 되는 위기가정에 대한 관리 책임까지 지어야했다. 내가 관리비 고지서 인쇄공장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보통사람들의 업무환경이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알기에 그들에게 동정심까지 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업무량을 미뤄보건데 내가 촬영원본 파일만 던져놓고 가면 모금 캠페인이 산으로 갈 것이 뻔해보였다.     


 온라인 모금함에는 세 가지 종류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첫째로 사연 글이다. 수혜자의 어려움에 대한 호소력있는 글 솜씨를 통해 네티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두번째로 후원 포스터이다.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현장 사진과 핵심적인 몇개의 문장을 포토샵하여 만든다. 모바일으로 보기에는 카드뉴스가 훨씬 편하기 때문에 요즘은 포스터가 아닌 카드뉴스로도 많이 한다. 마지막으로는 후원영상이다. 촬영해 온 원본영상을 스토리라인에 맞게 잘라서 배치하고 자막을 넣은 뒤 저작권이 해결된 배경음악을 얹어서 3분 내외로 만든다.      그렇게 완성된 콘텐츠들은 온라인 디지털 모금함을 개설하는데 쓰이는데 최대한 많은 네티즌들에게 노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두가지 플랫폼 중에 하나에서 진행된다.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해피빈과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같이가치이다. 하루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온라인 모금함이 개설되지만 잘만들어진 것은 네이버 메인페이지에 게재될 수 있고 카카오톡, 다음포털 메인페이지에 게재될 수 있다. 양대 포털은 상호배타적이라서 서로의 플랫폼을 넘나들 수는 없게 되어있었다. 온라인 모금함은 포털 메인에 실리지 못할 경우 그 한 단계 아래의 하위페이지에라도 노출이 되지 않는다면 목표 모금액 달성이 쉽지 않다.     


 "정말 뜻깊은 일을 하십니다."

 "아닙니다. 대리님께서 하시는 일이 정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죠. 저야 제 시간의 극히 일부만 할애하는건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전문가분들께서 하루면 더 멋지게 만들어주실 것을 아마 저는 일주일 내내 붙잡고 있어야 할겁니다."

 "아무래도 구세군에서 전문가를 채용하기는 어렵겠죠?"

 "네.. 그렇죠 복지사도 부족한데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죠. 또 윗분들이 잘 모르세요. 지금 온라인 모금 캠페인 진행하기로 한 것도 유니세프랑 월드비전에서 디지털 모금으로 전환한다 뭐다 하니까 그래도 명색이 구세군이라고 일단 걔네들하는거 따라가 보자고 하셔서 하는건데 영상 전문가 채용은 어림도 없죠."

 "그렇군요. 담당자분께서 어려움이 많으셨겠네요."

 "제가 글은 그래도 어찌저찌 써보겠는데 포스터랑 영상은 죽었다 깨나도 영 재능이 없나봅니다. 허허"

 "메일로 먼저 보내주신 사연 요약본 읽어봤는데 잘 쓰시던데요."

 "기운내라고 응원해주시는거죠? 허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요약본 읽어보셨다니 설명드리기가 좀 더 편하겠네요. 배경을 먼저 한번 쭉 설명 드릴게요. 다슬이는 원래 저희 사연은 아니고요 저희도 의뢰받은겁니다."

"어디서요?"

"청송군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요. 아시겠지만 아이 엄마가 베트남분이셔서 지역 다문화센터에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아이 수술비가 하도 많이 나오니까 센터에서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온라인 모금을 한번 해보자해서 네이버 해피빈에 모금함을 개설했대요."

최대리는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서 보여주었다.

"이것 보세요."

다슬이네 모금함이었다. 해당 모금함은 목표 모금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216만 9400원에 모금이 종료되었다고 찍혀있었다.

"애 간 이식에 최소 2000만원이 필요한데 이것밖에 안됐어요."

"엄청 부족하겠네요."


 해당 모금함에 적힌 사연 글은 몇 줄 안되었고 포스터는 커녕 사진만 달랑 한장있었는데 그마저도 구형 휴대폰으로 급하게 찍은 듯이 화질이 조악했다. 오히려 200만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인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대부분의 온라인 모금함들이 이런 상태였다. 온라인 모금 사례 당 평균 모금액은 300만원 정도였는데 인지도도 높고 자체 미디어 팀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구호단체나 초대형 비영리단체들의 모금함을 제외하고 나면 200만원 아래라고 봐야겠다. 그런데 그 200만원을 벌자고 3분짜리 영상 제작 외주를 맡긴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었다. 크몽에서 제일 싼걸로 포스터 디자인만 맡겨도 20만원은 들여야했다. 나같아도 내 기부금이 제작비로 대부분 쓰일거라고 한다면 기부를 할 리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담당 사회복지사가 모금 콘텐츠 제작 업무까지 떠맡게 되었고 그렇게까지 밖에 해내지 못한 것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저희한테 넘어온거에요. 구세군이 큰 기관이니까 그래도 뭔가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을까 기대한거죠."

"그런데 구세군에서도 해피빈 모금을 하시려는거에요?"

"아 네 저희가 자체 지원금도 있지만 워낙 필요 액수가 크고 온라인 모금이 적게 된 것이 아쉬워서, 한번 더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모금이 끝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동일 사연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네 그렇지 않아도 저희도 그 점이 걱정되어 네이버 쪽에는 미리 말씀을 잘드려놨습니다.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또 아동 사연이고 아이가 예쁘다 보니까 사진만 좀 잘 나으면 모금 잘 될거에요."


 현실은 그랬다. 수혜자가 어릴 수록 모금이 잘 된다. 연간 모금액 기준 10위권 내의 초대형 NGO는 두 가지 성격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하나는 종교 기반 단체이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컨페션과 같은 곳들이다. 두번째가 아동청소년 전문임을 표방한 기관이다. 세이브 더 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이들과미래재단 등이다. 그리고 종교 기반으로 분류된 단체들도 아동청소년을 전면에 내세우는 마케팅이 주를 이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굿네이버스의 깔창 생리대 캠페인이다.          



 청송 한 산골 마을에 있는 다슬이네 집은 참 아름다운 풍경에 둘러쌓여 있었다. 물안개 낀 호수가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호수로 빠져드는 시냇물은 귀를 기분 나쁘지 않게 간지럽히는 소음을 내며 다슬이네 담벼락을 반바퀴 둘러 흐르고 있었다. 집 뒤편으로는 밤나무가 열려있었는데 가을에 그것만 주워팔아도 벌이가 꽤 될만큼 풍성했고 주민들도 마음이 넉넉한지 이 동네 고양이들은 나같이 낮선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 곳 경치가 좋아서  한참을 사람 손 타는 고양이들과 놀다 다슬이네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한 중년 남자가 마루에서 이어진 사랑방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한쪽 문을 손으로 열어 인사했다. 다슬이 아버지, 율동씨는 한쪽 다리가 성치않은 장애인이었다. 게다가 신장암을 앓고 나은지 얼마 안되었다고 했다.

 "네 안녕하세요. 다슬이 아버님. 구세군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구세군 소속이 아니었지만 나와 구세군이 어떤 관계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그 편이 나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자 묘한 소속감이 들었다.

 "애 엄마는 아직 일에서 안돌아왔어요."

 베트남에서 온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몇시에 오시나요?"

 "이따 저녁에 올거에요."

시간상 어머니는 오늘 아무래도 촬영이 어려울 것 같았다.

 "네 그러면 아버님만 인터뷰할게요."

 "그러시죠."     

 "아프기 전에는 저는 용접기술을 했어요. 한쪽 다리가 이래도 용접 하나는 자신있었어요. 불러주는 현장도 많고 벌이도 꽤 괜찮았었고요. 그런데 제가 콩팥 하나 떼내고 애까지 이렇게 되니까. 좀 많이 힘드네요."

"아이고.. 그럼 다슬이는 언제 병이 시작된 건가요."

"2살 때 였을거에요. 뭐만 먹으면 토하고 그러니까. 동네 병원에 데려갔죠. 거기 의사 양반이 느낌이 안좋다고 하더라고요. 배운 사람이 무슨 느낌 운운하는지 원.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히 말해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자기는 모른대요. 뭔 검사 장비가 있어야 한다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랬군요."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하니까 언제 갈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 몸으로는 멀리 못가니 아내가 연차내고 그러고 가보겠다고 했더니. 그 의사 양반이 오늘 가보는게 좋겠다고 하는거에요. 아. 제가 그때 알았죠. 이거 씨발 좆됐구나."     


 다슬이의 병은 갈락토스 혈증이었다. 6만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아직까지 현대의학으로도 원인만 밝혀낼 수 있었을뿐 치료제는 없었다. 많은 음식들에 포함된 성분인 갈락토오스가 몸에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조기에 발견해서 관리하지 않으면 간부전, 신부전, 뇌손상, 백내장 등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슬이는 동네 병원 원장 덕분에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 전에 빨리 발견한 편이었다.

율동씨와 한창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도중에 다슬이가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

"아빠, 배고파"

"알았다."

"배고파."

"알았다니까."

 율동씨는 한쪽 다리로 몸을 지지하고 양손을 써 벽을 붙잡고 부엌으로 이동했다. 율동씨는 냉장고 문을 열어 젖병을 찾아꺼낸 뒤 물이 반쯤 차있는 냄비에 넣고 가스레인지불을 올렸다.     

"아버님 애가 4살인데 아직 젖을 못떼었어요?"

"이거 분유 아니고 물에 희석한 갈락토오즈 제거식입니다. 우리 애는 이것만 먹을 수 있어요."

"에고 그렇군요 한창 맛있는거 찾을 나이에.."


"다슬아 이리온나."

 딸에게 젖병을 건네는 아버님의 손은 투박했지만 듬직했다. 그는 넓은 어깨와 되게 다부진 상체를 가지고 있었다. 서류 상으로만 접했을 때에는 호리호리한 체격일 줄 알았으나 그것은 편견이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는 공사 현장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한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단단한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저거를 많이 비축해두셔야겠네요."

"네 갈락토오스 제거식으로 평생 살면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 좀 들어요."

"참 그리고 아버님 다슬이가 햇빛에 취약하다고 들었는데."

"애가 직사광선을 쬐면 실명한답니다. 뇌에도 안좋고요."

 이 집은 대낮인데도 모든 창문에 암막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촬영을 하기에 약간 어두침침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환기되었다.


"지금도 빛이 완전 차단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이 정도는 괜찮나요?"

"네 직빵으로만 안맞으면 괜찮습니다."

"그럼 외출은 어떻게 하세요?"

"못나가죠. 커서도 학교도 못갈거고. 꼭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잠시만요"

다슬이 아버지는 장롱에서 웬 보따리를 꺼내 들이밀었다.

"이게 뭐죠?"

"한번 열어보세요."

 보따리에 묶인 매듭을 풀어보니 아이 옷이었다. 두꺼운 벙어리 장갑부터 귀까지 가리는 꼬깔모자와 목도리, 마스크가 있었다.


"그게 다슬이 외출복이에요."

"완전 한겨울용 방한복이네요."

"여름에도 저거 입고 나갑니다."

"엄청 더워하겠네요."

"울어요. 덥다고."

"에고 그렇겠네요. 참 간이식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아무리 관리를 해도 조금씩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대요."     

"선생님 저는 원래 이런데 출연 안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그런데 간이식수술 그거 때문에 그거 때문에 이렇게.."     


그때 아빠의 어깨를 타고 다슬이가 올라왔다.

 "아빠, 아빠."

 "이 녀석아."

 율동씨는 어깨를 밟고 머리로 기어오르는 다슬이를 붙잡으려 손을 휘저었다. 그런데 아이는 어찌나 빠른지 쉽사리 잡히지가 않았다.

 "아빠. 아빠. 놀아줘."

 "아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아 내 코야. 이 녀석아."

 율동씨가 다슬이를 억지로 떼어내려고 하자 다슬이는 아빠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버텼다.        

       

 해피빈에서 개설된 다슬이의 모금함은 네이버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고 총 17,074,400원이 모금되었다. 그 중 300만원은 해피빈에서 다슬이 사연을 본 빙그레 사회공헌부서 담당자가 바나나맛 우유 매칭 기부 프로그램으로 선정해 준 것이었고 14,074,400원은 3327명의 이름모를 기부자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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