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I Travel
Jan 12. 2023
상트 페테르부르크
제국의 영광과 전쟁의 상흔이 공존하는 도시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3월 8일은 국제 또는 세계 여성의 날(어감상은 세계 여성의 날이 좀 더 좋아 보인다만, 짧게 여성의 날)이다. 러시아에 가기 전부터 아내는 여성의 날 러시아에선 모르는 여자들에게도 남자들이 꽃을 주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고 하여 첫 여성의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2015년의 여성의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이미 대체휴일이 시행되고 있었던 러시아에서 금요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해 주었기에 짧게라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다녀올 수 있었다. 3박 4일이었지만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 그리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기차에서 밤을 보냈기에 실제론 1박 2일이었다.
숙소 주인과 먼저 연락을 해보니 이른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하여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숙소부터 찾았다. 한 사람당 500불, 그러니 두 사람에 1000불(약 2만원)짜리 저렴한 숙소이긴 했는데, 방을 보자마자 그냥 나가고 싶은 정도로 끔찍한 숙소였다. 대체적으로 아주 찝찝하고 지저분하다고 할 수 있는 숙소였는데, 예를 들어 방은 아주 어둡고 침침했으며, 샤워실에는 커튼이 하나 있을 뿐 거의 개방된 공간과 다를 바 없었다. 한편 숙소 주인아주머니에 대해선 또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데, 우리가 퇴실을 하려 할 때,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여성의 날을 축하한다며 장미꽃을 하나 건넸다. 그러면서 자신이 플랫폼을 이용해서 손님을 처음 받아본다면서 피드백과 좋은 평점을 남겨줄 것을 요청했다. 위생의 기준이 다른 걸 어찌하겠나, 위생은 둘째치고 샤워실과 조명 정도만 이야기하고는 숙소를 나섰던 기억이 난다. 충격적인 숙소와 따뜻한 마음씨의 주인 때문에 그런지 저렴한 숙소를 선택해서 생긴 에피소드를 아내는 아직도 잊을만하면 (특히 세계 여성의 날 즈음) 종종 이야기한다.
짐을 풀고는 러시아의 황제들이 여름을 보냈다는 여름광장으로 향했다. 여름궁전은 알아주는 관광지라고 들은 적이 있고 그 옆에는 "기술자의 성(castle)"이라는 곳도 꽤나 근사해 보였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었고, 그저 휑한 기분만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나 날이 좋을 때 다시 방문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듯하여 다음을 기약했다.
모스크바에는 "바실리 성당"이 있다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피의 사원"이 있다. 바실리 성당이 러시아 건축물을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 우리는 피의 사원을 보고 정말 놀랐다. 딱히 건축 양식이니 뭐니 그런 걸 따지는 사람들도 아니고 딱 보았을 때, 피의 사원의 레벨이 하나 더 높다고 생각이 되었다. 물론 밖에서 관람했을 때 이야기이고 바실리 성당과 같이 내부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작고 러시아 정교회의 교인이나 유라시아 역사에 큰 관심이 있지 않는 한 볼 건 별로 없다. 피의 사원 옆에는 러시아 박물관이 있었는데 정말 많은 그림들과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고, 그중에 일부는 우리 교과서나 어딘가에서 봤을 법한 그림들이 있어서 (아닐지도 모름)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러 온다는 넵스키 대로(딱히 주목해서 볼 건 없었지만)를 따라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러시아인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3대 박물관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아직 이견이 분분하다. 여하튼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는 에르미타주에 도착한 우리는 박물관 앞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내부 관란에 나섰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주일 동안 내내 봐도 볼게 더 있다는데 역시 우리 부부에겐 한 시간 컷이었다. 이성주 아나운서가 설명을 녹음한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이 외에도 예전에는 감옥으로 썼다고 알려진 피터와 폴 요새도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이 요새는 네바강 위에 있는 작은 섬에 지어졌는데 따라서 죄수들이 쉽게 탈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어딘가에서 들어본 러시아 사람들이 이 감옥을 많이 거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죄질이 약간 안 좋은 사람만 이런 괜찮은 휴양(?) 감옥에 올 수 있었고, 죄질이 아주 나쁘면 시베리아에 유배를 당했다 하지만 막상 감옥 내부를 보니 어느 나라나 감방 생활은 쉽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틴(맞다 그 사람)과 그의 측근들이 졸업했고 크렘린 권력의 원천과도 같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와 그 앞에 유명한 등대(왜 유명한지는 모름)도 그냥 놓치기엔 조금 아쉬워 들렀다. 시간이 조금 더 남아서 알렉산드르의 정원과 표트르 1세의 동상, 성이삭 성당을 차례로 관람했다. 성이삭 성당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성당이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성(性) 박물관을 기차역 근처에서 보았다. 글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진귀한 여러 물건들을 구경하였고, 러시아인들의 취향(?) 등을 알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뭐 가서 직접 보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한 관광지에는 보이지 않던 거지들이 기차역에 다 몰려있었다. 푸드코트에는 다른 사람이 먹고 간 자리의 남은 음식을 가져다는 사람도 있었고,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선행을 베풀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어서 일반적으로 적선을 잘하는 편이라 하는데 (그래서 다른 나라 거지들이 라시아 사람을 좋아함) 그래서 그런지 정말 거지가 많았다.
글을 다 쓰고 나니 글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더러운 것들과 관련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작가들은 글을 하나하나 쓸 때마다 다 키운 자식을 내보내는 기분이라는데, 나도 아침저녁으로 변변치 못한 식사만 내어주고 내보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