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 가장 흔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의 소재이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소재이다. 남의 연애사를 보고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며, 원하던 주인공들이 해피 또는 새드 앤딩을 맞는 걸 보고 나도 저런 사랑이 있었나 혹은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등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인기 있는 주제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거라 본다. 그래서 이번엔 러시아 사람들의 연애, 결혼, 이혼을 아우리는 연애관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러시아에서 이 모든 걸 다 해보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불운하게도(?) 나는 러시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임을 밝히는 바이다.
연애
한국에선 나도 그랬지만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사귀자는 제안을 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되곤 한다. 내가 연애할 당시에는 사귄다는 건 암묵적으로 일정 스킨십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보통 사귀면 손부터 잡는 게 국룰이었다(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하지만 러시아식 연애는 조금 다르다. 사귀자는 말을 하지도 않고 스킨십도 제멋대로다. 요즘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문화를 접한 러시아 여자들이 많아져서 이러한 한국의 연애 개념을 알고 있는 여성들도 많이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러시아인들끼리 사귀자는 말은 어색하다. 또 한 가지 연애에 있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진취적이라 좋아하는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러시아 남성 혹은 여성들이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한다며 실실 쪼갤 것이 아니라 굉장히 주의를 해야 한다. 몇 번 받아주면 사귀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미혼 커플 성관계에 대해 많이 개방이 되었다고 러시아에 비하면 멀었다. 성관계에 아주 개방적이라 들었고, 러시아에선 아직 시간당 숙소에 쉬었다가는 "대실"의 개념이 거의 없기에 (있긴 있다고 들었다) 보통 모든 역사는 집(혹은 기숙사)에서 일어난다 한다.
러시아 남자들은 흔히 소파에서 티비를 보며 보드카를 마시는 뚱뚱한 대머리로 자주 그려지곤 하는데, 실제로 대략적인 이미지도 그러하다. 나폴레옹 전쟁과 세계 2차 세계대전 등 전쟁에서 많은 남자들이 죽었기에 아직도 남녀비율이 87:100 정도로 여자가 많고 이는 과거 남자들에게 여성 선택의 특권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대부분의 가정은 부부가 같이 벌지 않으면 모스크바에서 생활이 여의치 않기에 일은 똑같이 나가서 하는데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만 주로 한다는 (점점 남자들도 가사에 뛰어들도 있다 하는데, 글쎄)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렇게 여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사이, 할 일이 없는 남자들은 소파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과 이러한 러시아 남성의 모습들 때문에 그런지 요즘 러시아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가정적인 남자가 선호되기도 한다.
결혼
러시아에서 용돈벌이로 한국어 과외를 조금 했었다. 그중 한 학생은 과외를 시작할 때 이미 임신 중이었는데 수업을 서너 번쯤 했을 즈음 곧 결혼식을 하는데 와달라고 초대를 했다. 다들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따로 청첩장은 없었다. 결혼식은 작스라는 소위 동사무소에서 치러진다. 보통은 볕이 좋은 낮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작스에 간다(내 학생은 이즈마일롭스키 크렘린 내에 있는 작스에서 했는데 나름 작스 맛집이라 들았음). 한국에선 혼인신고와 결혼식은 별개의 것으로 취급받곤 하는데, 러시아에선 작스에서 부부가 함께 혼인신고를 하는 게 결혼식의 시작이다. 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생각해 보면 같은 날 법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부부가 된다는 게 어쩌면 더 의미 있을지 모르겠다. 보통 작스 맛집들은 일반 사무를 보는 장소 같지 않고 나름 내부가 잘 꾸며져 있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례(?)가 있기도 하고 내 학생은 작은 오케스트라를 고용해서 분위기를 더했다. 혼인선언문을 포함하여 30분 정도 되는 작은 행사가 끝나고 나면 손님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웨딩사진을 찍는다. 러시아 사람들의 산책사랑이 여기서도 보인다. 부부와 손님들은 각자의 속도에 맞춰 산책을 하고 미리 공지가 된 피로연 장소로 모인다.
피로연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케이크(이라기보단 빵에 가까웠지만) 커팅이다. 그리고 와인을 따라서 러브샷을 하고는 빈 컵을 뒤로 던져서 깨버린다. 아쉽게도 무슨 의미였는지 들었던 것 같지만 생각이 안 난다. 조촐한 커팅식이 끝나고 나면 피로연장으로 모두 입장한다. 우리가 간 피로연장에서 테이블에 미리 음료와 차가운 음식(빵, 샐러드 등)이 준비가 되어있고, 따뜻한 음식은 차례로 서버가 가져다주었다. 신랑, 신부의 부모들이 나와서 새 부부를 축복해 주었고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러시아식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두세 시간쯤 시간이 지나고 피곤하다면서 아내와 피로연장을 나왔는데 그때까지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먹거나를 반복했다. 밤늦도록 그렇게 새 부부를 축하(?) 해 준다고 하는데 참 재미있는 문화였다. 한국의 결혼문화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혼
러시아의 이혼율은 60-70퍼센트이다. 이혼한 커플의 수를 결혼한 커플의 수로 나눈 결과로 다행히도(?) 결혼한 세 커플 중 두 커플이 이혼한다는 건 아니다. 말이 조금 비슷한 것 같은데,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이혼을 해도 카운트가 또 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높게 체감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내 주변 러시아인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보더라도 이혼한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60-70프로가 아니라는 이야기지 한국에 비하면 엄청 많다).
어쨌든 러시아의 이혼율이 높다는 것까진 알았고 왜 이혼율이 높은지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첫째로 러시아인들은 독립심이 크고 나라에서 대학까지 공교육과 더불어 장학금까지 주는 경우가 많아 부모의 이혼에 그렇게 신경을 많이 안 쓰는 듯 보이긴 했다. 둘째로 결혼을 굉장히 이른 나이에 한다. 여성의 경우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보통 대학교나 대학교가 끝날 무렵에는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게 나쁜 것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이혼율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론 이혼을 하는 것이 굉장히 쉽다.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분한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다.
내가 듣기론 러시아에서 남자건 여자건 이혼을 했다는 건 그렇게 큰 흠이 아니라 했다. 한 번은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러시아인에게 영어과외를 3-4개월 장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의 아빠가 무려 이혼을 네 번하고 지금의 새엄마가 다섯 번째 아내라고 했다. 물론 새엄마도 재혼이라 한다. 처음엔 정말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평생 잘못된 배우자 선택으로 사랑 없이 고통을 받는 것보단 빨리 다른 사람을 찾는 것도 합리적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