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무리
물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하늘이 도왔을까(?) 도착하자마자 홍수가 나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겨버렸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와서 역 근처의 숙소를 찾는 것에도 꽤나 애를 먹었다. 홍수 때문인지 거리에는 신발 덮개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별건 아니고 살짝 질긴 비닐로 만든 무릎까지 오는 모양이었는데, 덮개 없이는 어디든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약 8유로(만원)가 넘는데도 사서 신을 수밖에 없었다.
물의 도시답게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은 수상버스이다. 물론 바퀴 달린 버스보다 느리고 가격은 또 어찌나 비싼지 종일권을 끊지 않고서는 어디 돌아다니는 게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숙소 위치가 좋다면 걸어서 다리와 다리를 건너 다녀보는 것도 여행경비도 아끼면서 베네치아를 즐기는 방법 일 수 있겠다. 종일권을 샀다면 무라노, 부라노라는 작은 섬을 다녀오는 것도 좋다. 무라노 섬은 유리공예로 유명하여 공방에서 흔히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고 아이유가 "하루끝"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유명해진 부라노 섬에는 형형색색 색칠한 집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베네치아에는 그 외에도 마블(Marvel)의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니,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에 등장했던 리알토 다리 등의 명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직 홍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산 마르코 광장에 갔을 때 주변 식당이나 카페 등이 물에 반쯤 잠겨 있었다. 상인들은 익숙한 듯 의자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고, 간혹 발목까지 오는 곳에서는 정상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아직 바닥에 물기가 흥건하긴 했지만 물이 많이 빠져서 광장의 바닥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베네치아의 여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베로나라는 작은 도시였다. 밀라노라는 큰 도시를 못 가본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여행을 마무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도시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꽤나 이탈리아 여행에 익숙해진 듯 두오모를 찾고 두오모 앞의 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베로나의 여러 관광지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줄리엣의 집'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줄리엣을 향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다는 발코니와 마당이 있는 곳이고 그 앞에 줄리엣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대서 청동상이 금색으로 변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줄리엣의 가슴 부분이다. 줄리엣의 왼쪽 가슴을 만지만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는데... 사람들이 헷갈려서 그런지 오른쪽 가슴 또한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해 질 녘 조금 힘들더라도 베키오 성에 올라가면 훌륭한 야경도 구경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베로나를 뒤로 한채 우리를 실은 비행기는 이탈리아를 떠났고 많은 추억과 함께 또 새로운 학기를 맞을 준비를 하러 우리는 모스크바로 향했다.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너무나도 많은 걱정을 했었다. 꼭 한인 민박집에서 자야 하는지, 아니면 누군가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기차 시간은 제대로 예매를 한 것인지, 기차가 제시간에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유럽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으로 걱정거리가 많았는데, 아내와 여행을 하면서 하나하나 어려움을 풀어 나갈 수 있었고, 유럽 여행의 재미를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탈리아를 다녀왔고 인터넷에 무수한 정보가 있으며 책도 들고 갔지만 현장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계획은 물론 잘 세우되 너무 촘촘하고 빡빡하게 세우기보단 시간이 여유가 된다면 현장에서 정보 수집하는 시간을 두어 현지에서 효율적인 동선을 짤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고 나니 다시 돌아가서 공부할 활력도 많이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시험도 치고 나면 또 여행을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더욱더 공부가 잘 될지도... 열흘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열흘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은 책 등의 다른 사람들의 간접 경험과 우리 부부만의 추억이 결합되어 내 인생의 값진 보물로 남을 것이다. 이제 공부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