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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올신 Jul 20. 2022

생선장사에서 곱창집 3호점까지

꽃다운 나이에 생선장사를 시작하다.


내 나이 28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나는 생선가게에 취직했다. 졸지에 백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디자인 사무실에 근무하던 우리 부부는 IMF와 함께 실업자가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때마침 작은 아주버님이 생선장사로 큰돈을 벌고 계셔서 그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싫다고 했다. 형 밑에서 일을 배운다는 게 부담이 된다고 했다. 뭐 먹고 살 거냐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얼 것 같냐고 물으며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1년의 인천 생활을 끝으로 구리시로 이사를 했다.


남편은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아주버님의 지나침으로 불면증을 겪으며 새벽마다 가락시장으로 물건을 사입하러 다녀야 했다. 급기야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 전치 3주의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주버님은 이 사고를 계기로 가게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우리가 인수하기로 했다.


가게를 인수하고 남편의 불면증은 사라졌지만 우리 부부의 싸움은 잦아졌다. 디자인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다 생선장사를 시작하려니 쉽지 않았다.

생선은 다시 손보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손질해 팔았고 아주버님에게 배운 장사의 기술로 손님들 아이 이름까지 외우며 손님들을 맞았다. 그 덕에 최고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부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초짜 생선장사 부부의 행운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형 할인마트와 농수산물 시장이 오픈하며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장사비법 1]

손님보다는 손님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라.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으면 엄마들은 마음의 문을 열게 돼 있다.


장사 초짜였던 우리 부부는 그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게를 처분했다. 벌어 놓은 돈이 있으니 다른 일을 찾아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4개월 동안 생선장사 자리만 찾아다녔다.


4개월간의 자리를 찾아 헤매다 서울 아파트 지하상가 마트 앞자리를 세내어 수족관도 갖추고 오픈 준비를 끝냈다. 결과는 참담했다. 생선이 팔리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많은데 우리 가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마트 안 조그마한 생선코너에서 생선을 사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눈앞의 경쟁자를 이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우리가 찾은 방법은 싱싱한 생선은 기본이고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생선을 사던 안 사던, 경쟁자에게 생선을 사는 손님에게는 더욱더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우리의 정성이 통했는지 결국에는 경쟁자가 두 손 들고나갔다. 기쁨도 잠시 세 들어 있던 가게에서 쫓겨나 마트 안 생선코너로 자리를 옮겼다.


[장사비법 2]

경쟁상대를 이기는 방법!

나를 각인시켜라!

최고의 서비스는 미소와 인사다!

따뜻한 미소를 짓고 인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나를 한번 더 보게 된다.


경쟁상대와 경쟁을 하며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 6개월이 되니 몸도 무겁고 서있기도 힘들어 직원을 구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그것도 잠시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며 마트의 손님이 줄어들었다. 그로 인해 우리 생선코너의 매출도 자연스럽게 하락했다. 매출이 바닥으로 치닫고 손님이 없어 결국에는 문을 닫았다. 생활비를 꼬박꼬박 챙겨줘 유지는 되고 있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 생활비가 다 빚이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빚을 줄이기 위해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또다시 생선장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란 말처럼 우리 부부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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