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여행
2025년 추석 연휴에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리머를 찾아 아내와 함께 마다가스카르로 향했다. 친구 부부와의 동반여행이었는데 50년 지기 내 친구는 조금 일찍 은퇴하여 세계 각국을 여행 중이다. 나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데다 여행을 좋아하는 점에서 우리는 많이 닮았다.
마다가스카르는 직항이 없는 관계로 친구는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고 나는 두바이 경유
후 케냐 나이로비에서 환승하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나이로비에서 환승직전 타나 현지의
반정부시위 발발 소식을 접하는 바람에 입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해야 했다. 현지사정에 촉각을 세운 채 여행을 진행했다. 몇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여행 고수인 친구와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뚜벅뚜벅 걸어 나간 결과 2주에 걸친 마다가스카르 자유여행을 큰 차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타나에 도착한 우리는 도심의 시위를 피해 근교에 소재한 여왕궁을 방문했고 2박 후에 국내선으로 모론다바로 향했다. 6박 7일의 모론다바 여정은 여유로운 일정이었지만 여행 인프라가 좋지 못한 칭기국립공원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바오밥트리 선셋과 선라이즈 투어, 주변 국립공원의 리머 투어 그리고 모론다바 바닷가의 일출과 일몰보기, 이웃 어촌 마을 방문 등 유유자적한 일정으로
일정표의 빈칸을 메워나갔다. 또 카페에 앉아 친구 부부와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기도 했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과 다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로 여정의 쉼표를
찍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마다가스카르 바닐라가
유명하다면서 바닐라 구입에 열을 올렸다.
알고 보니 세계 바닐라 생산량의 약 80%가
이 나라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아내 덕분에 이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화장품 등에서 바닐라 향을 맡게 되면 곧장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리게 됐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여행지나 여행 대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가봐야 한다는 사명감에 충만했겠지만 이젠 놀멍 쉬멍 여행을 이어갈 나이가 되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여행의 더 큰 가치를 찾는다. 여행은 곧 자연이자 사람이며, 문화이며 삶이다. 한 땀 한 땀 모이면 여행스토리가 되고 여행담은
곧 인생사가 될 터이니 말이다.
모론다바에서 첫 이틀 밤은 말라가시인 출신 안주인과 오스트리아인 남편이 운영하는 메종샬렛호텔에 머물렀다. 안주인으로부터 호텔을 지은 과정, 은행 대출 등 사업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네 사는 방식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또 그네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도 여행의 재미이자 진면목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음식 또한 뺄 수 없는 여행의 주요 레퍼토리
아니던가? 모론다바는 해변에 위치한 도시 답게 해산물이 풍부했다. 일인당 3만 원
정도면 랍스터 등 현지의 싱싱한 해물 요리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바닷가 예쁜 식당과 카페 들은 인도양의 시원한 바람 앞에 가슴을 열고 여행자를 맞아 더위를 식혀 주었다.
액자 같은 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풍경을 넋 놓고 보고 있자니 어느새 창틀이 사라지고 바다와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에 누군가 그림에 홀려 들여다 보고 또 보다 마침내 그림 속으로 들어 가 신선이 되었다고 하던가.
안타나나리보 시내에서 마주친 한국의 본죽 프랜차이즈점에 들렀더니 TV화면에선 케데헌의 골든이 울려 퍼졌다. 현지인들이 김밥, 돌솥 비빔밥 등 우리 한식을 맛있게 먹고 또 포장해 가는 손님도 있었다. K-culture! 새삼 그 위력을 느꼈다.
여태껏 삼성, 현대, 엘지 등 수출 대기업들이 우리나라의 위상을 끌어올렸지만 이제는
K pop에 이어 K food 등 K문화 세계화에 앞장서가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타나시 곳곳에는 쓰레기가 방치되고 또 수도 단수와 단전이 잦아 시위의 빌미가 되었다
물이 부족하다 보니 해 오염된 물에 헹군 빨래를 길가 풀밭 위에 늘어 말리고 있었다. 매연과 먼지에 노출된 남루한 빨래들을 보자니 세탁의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평균 월 10~20만 원의 월소득으로 살아가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문득 연민의 정이 솟는 한편 무능한 지도자들에 대해 원망이 솟구치기도 했다
왜 이 나라에는 유능한 지도자가 없을까? 지하자원도 풍부한 나라인데? 만약 불모의 땅 위에 외자를 끌어들이고 산업을 일으킨 우리나라의 박정희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있다면 과연 이토록 비참한 국민 생활상을 보고도 국가 경제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성공, 발전이 매우 특이한 경우고 거의 모든 후진국이 정치, 경제적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 대한민국이 정말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복 받은 나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계속되는 시위로 인하여 타나 시내에서는 여정이 자유롭지 못했다. 식동물원 방문 정도로 끝내야 했다. 안다시베 만타디아 국립공원 방문은 리머 관찰에 필수적인 코스로 여겨져 당초 우리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일치기의 시간적 한계를 고려한 친구의 대안 제시로 리머공원과 엠페피로 방문지를 변경했다.
간헐천, 케스 케이드 등 연계 관광자원을 가진 엠페피호수는 타나의 서쪽 약 130km 지점에 소재하고 있는데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그나마 이동에 불편이 덜했다
그러나 타나 시내를 벗어나는데 보통 1~2
시간의 차량정체를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 3박은 타나의 래디슨블루워터프롱에 머물렀다. 출국 시에 아내는 사놓고 잘 입지 않는 내 아웃도어 한벌을 러기지에 넣어 왔다. 누굴 줄까? 즐거운 고민 끝에 호텔 벨보이에게 선물했다. 받고 얼굴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더니 이내 서류 한 장을 들고 왔다. 기증물품명과 수량, 그리고 기증자의 사인을 요구했다. 아마도 호텔 고객의 소지품을 임의로 반출한 물품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의도 같아 보였다. 아내는 매번 후진국 여행 시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옷가지 한두 개를 챙겨 와서 현지인에게 선물하며 작은 기쁨을 나누고 있다. 6년 전 마사이마라 사파리 투어 때는 묵혀둔 채 잠자던 스왓치 손목시계를 고쳐와 소치는 목동소년에게 준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여행을 추억하면 그 소년의 미소가 환하게 떠오른다
마다가스카르를 찾는 여행자들은 동식물의
종의 다양성을 보고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다. 다른 대륙 어디에도 찾기 힘든 생명체의 신비를 보고자 함이다. 리머로 불리는 여우원숭이는 독특한 생김새에 약 130종류 이상이 된다고 한다. 바오밥 나무는 지구상에 8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여섯 가지가 이곳 마다가스카르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1년에 고작 2cm 내외로 느린 성장을 하지만 무려 2천 년에서 3천 년을 산다는 바오밥트리는 경우에 따라서 5천 년의 수명도 가능하다고 한다. 마치 나무를 뽑아서 거꾸로 땅에 박은 듯한 모양새가 신비롭고 크기 또한 우람하기 그지없다. 그 거대한 자태에 경탄하다가 그 속에 응축된 시간을 헤아리자면 절로 겸허해진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는 어린 새싹일 때 빨리 솎아내지 않으면 금세 자라나 어린 왕자의 행성을 찢어버릴 정도로 커버리는 나무로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은 매우 느리게 자라고 오래도록 사는 나무가 바오밥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에서 늘 경계하듯 어린 왕자 또한 자신의 작은 행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위험의 근원을 일찌감치 제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살면서 좋은 친구와 서로 믿고 의지하며 건강하게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인생 5복(壽, 富, 强寧, 攸好德, 考終命)중 3복을 누리는 축복이 아닐까?
수명과 고종명은 하늘에 달렸으니 제쳐둘
일이니까 말이다. 친구와 다음 여행은 내년 초 밀포드트레킹으로 정하고 여행을 마무리
했다. 한국에 도착한 뒤에도 뉴스에 마다가스카르 소식이 뜨면 왠지 관심이 커진다. 지리적으로 까마득히 멀지만 심정적으로는 이제 내 이웃이다. 들려오는 소식은 여전히 암울했다.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 군부가 시위대
의 편으로 기울고 있다는 소식, 대통령이 신변 위협을 느껴 프랑스로 피신했다는 소식
등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마다가스카르가
부디 좋은 지도자를 얻고 정치, 사회,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그리하여 그 땅에서 만났던 이들의 고단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그들이 좀 더 자주 미소 지을 수 있기를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