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검은 구멍

by 이홍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마 팔 할이 열등감이지 싶다. 너를 미워하고, 너를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고. 또 다시 나는 너를 미워했다. 그렇게 "나"의 우주는 끝도 없이 공허한 블랙홀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 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러니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소꿉 친구라고 부르면 적절할 듯 싶다. 아주 어릴 때 뿌옇게 남아있던 기억부터 함께 했던 친구는 초, 중학교를 거쳐 외고에 갔다. 물론 나는 동네에 있는 여고를 갔다.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가 외고에 합격한 날, 내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며 건 전화에 선듯 축하를 건네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 내 안에 끝없는 블랙홀이 생겨났다.


그래도 친구와는 계속 같은 영어 학원에 다녔다. 바로 옆 동에 살아 절친이 되어버린 엄마들 덕에 매주 목요일, 강 너머에 있는 영어 학원을 다녔다.


나름 일타강사라며 매주 시험을 치던 학원에서는 실명제로 성적을 붙여놨었다. 역시나 나는 저 아래. 페이지 너머 또 너머에 내 이름 석자가 붙여져 있었다. 친구가 같이 성적을 확인하러 가자는 말에 화장실이 급하다며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 감정은 분명 열등감이었다. 같은 곳에서 나고 자라 점점 뒤쳐지는 내 자신의 모습이 저 에이포 용지들 속에 적혀있는 것 같았다. 매주, 매 시간이 아무런 빛도 빠져나올 수 없을만큼 괴로웠고, 우주 속 블랙홀은 점점 더 커져갔다. 친구는 학원 가는 차에서 연고전이 어떻다더라, 성균관대는 뭐가 유명하다더라 는 말을 끊임없이 건넸다. 내 성적으로는 충청도에 있는 어느 대학도 힘들다던 상담을 받은 때였다.




열등감이란 내겐 참 그런 감정이다. 홧홧하게 눈물이 올라오려다가도, 마음 저 밑부터 잠식당하듯 토기가 올라오려다가도. 멍 해지듯 주먹을 쥐며 바스라진 자존감이나마 지키려 애를 쓰는.


그래. 동그란 끝없는 구멍에, 끝도 없이 삼켜지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한 줄기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감정이다.


대학에 오고, 그 친구는 매일이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좋은 학교에, 예쁜 얼굴에, 매 순간이 빛으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내 안의 열등감을 양분 삼아 커진 블랙홀은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했고, 그렇게 나는 내가 되었다.


내가 나태해질 때, 모든 걸 포기하려 할 때, 내 우주의 블랙홀은 다시 나를 채찍질하곤 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어나고, 블랙홀은 다시 열등감을 양분 삼아 커져간다.


아무런 빛이 없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도 괜찮다. 어둠 속에서도 앞은 보이니까. 빛이 없는 열등감을 양분 삼아 또 다시 나를 일으켜 나아가면 된다. 꼭 빛 속에서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우주는 원래 어두우니까. 그러니까 블랙홀이 커져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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