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를 거닐다
아유타야.
태국이 태국다움을 갖추기 시작한 과거의 어느 즈음 존재했던 왕국
과거의 영광은
머리가 잘려나간 토르소 석상들의 이끼 낀 몸통과
그 위에 어색하게 이식된 머리로 현재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격려하려 아유타야, 태국의 역사 속을 거닐었다.
발음하기 벅찬 이국적인 이름의 사원들 안에서
가부좌 자세로 묵직이 들어앉은 수많은 부처 석상들이
보일 듯 말 듯 모나리자 미소로 방문객을 반긴다.
한낮의 땀을 식히며 사원 안 돌무지 한편에 앉으니
빌고 있는 이들과 빌고 있는 대상들이 얼기설기 얽힌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떠한 것
간절히 지키고 싶은 어떠한 것
명복을 비는 어떠한 것
소원하는 이들은 전지전능하다 ‘믿는’ 대상 앞에 선 이 순간 매우 간절하다.
형상화된 간절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저 빌고 있는 대상 또한 빌고 있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 아닌가.라고
종교, 사원, 석상, 그리고 믿음.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인간의 능력이 최고로 정교하게 표출되어 실재하는 것들.
빌 것들이 많아진 이들이 빌 것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만들어낸 창작품들이 아닌가.라고.
떠오른 생각이 그러할지언정,
종교 없는 내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떠한 빌 것이 생긴 까닭에
부끄러운 동전 하나 꺼내어
바람을 꾹꾹 눌러 담고는 거대한 와불상 발바닥에 붙이며 소원한다.
이루어지기를.
인종이, 언어가, 믿는 것이 제각기 달라도
어차피 우리는
지구라는 먼지 위에 탑승한 채 태양 언저리를 함께 돌며
순간의 ‘빌 것’들을 부여 안고 사는
지구인들일뿐.